[‘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다 (상)] “살아났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다 (상)] “살아났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 심재혁
  • 승인 2019.07.11 09:00
  • 수정 2019-07-10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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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 간의 항암 치료 뒤
올레·히말라야 거쳐
드디어 산티아고로

[필자 심재혁은 GS칼텍스 상무, 인터컨티넨탈 호텔 사장, 레드캡투어 사장, 태광산업 부회장 등을 지낸 기업가다. 은퇴한 뒤에는 여행을 즐기며 자유인으로 살고 있다. 2018년 4월 40여일 간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 여행기 두 편을 연재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카미노 프랑세스 ©구글
산티아고 순례길-카미노 프랑세스 ©구글

 

10여년 전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노인과 바다』의 노인 산티아고와 『연금술사』의 양치기 산티아고, 『순례자』를 떠올렸고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40여일의 휴가를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서 내 버킷 리스트에 올려 놓았었다.

예수님의 열두 사도 중 한 분인 성 야고보는 이베리아 반도로 복음을 전파하러 갔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AD42년 헤롯 왕의 명으로 체포되어 순교했다. 그 제자들은 시신을 수습하여 이베리아 반도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에 매장했다. 이 지역은 AD711년 이래 이슬람교도인 무어족이 침략하면서 가톨릭교도와 유태교도들이 투쟁하며 살아온 지역이다.

그 후 AD820년경 성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되자 알폰소 국왕이 추모성당을 건립하고 AD1189년 교황 알렉산더 III세는 산티아고를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세계 3대 가톨릭 성지로 선포하였고, 12세기부터 유럽 각지에서 추모순례가 이어졌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후에는 매년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명상, 수련, 도전과 모험을 좋아하는 30만명 이상의 순례객들이 찾고 있다.

국내에서는 제주도에 올레길이 조성되면서 전국에 둘레길들이 생기며 산티아고가 알려지고, 산티아고 관련 책들도 수십 종이 출간되었다. 또한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는 산티아고 순례가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지난 2015년, 7개월 간의 항암 치료와 양성자 방사선 치료를 마친 후, 나는 살아났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고, 또한 그 동안 앞만 바라보고 바쁘게 살아온 내 삶을 뒤돌아 보고 싶었다. 이제 산티아고 순례길을 나설 때가 된 것이다. 나는 제주도 올레길과 전국의 산을 다니며 체력을 단련했고, 2017년 5월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왔다. 그리고 2018년 4월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를 시작했다.

매일 메고 다닐 배낭의 무게는 자신 체중의 1/10이 적절하다는데 줄이고 줄여도 8.5kg이었고, 물과 간식거리를 채우면 9~10kg에 달했다. 내가 준비했던 물품들은 다음과 같다.

배낭(50리터), 방수커버, 침낭, 스틱, 우의, 등산화, 깔창, 양말, 샌들, 바지(겨울용+여름용), 패딩조끼, 방풍점퍼, 내복, 반팔셔츠, 반바지, 모자, 장갑, 선글래스, 물통, 헤드랜턴, 주머니 칼, 스패츠, 세면도구, 손톱깎이, 세제, 비상약, 스포츠타월, 빨래집게, 옷핀, 머그잔, 웨이스트백 등.

스페인의 면적은 대한민국의 약 5배, 인구는 우리보다 적은 4600만명이다. 유럽 각지에서 산티아고를 향하는 순례코스는 크게 12개 가량이나, 내가 걸었던 대표적인 코스인 카미노 프랑세스(Camino Frances)는 프랑스 남부 국경도시 생장피드포르(St. Jean Pied de Port)에서 출발하여 산티아고까지 800km, 대서양 연안 땅끝마을 피니스테레(Finisterre)를 거쳐 무씨아(Muxia)까지는 900km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펼쳐진 유채꽃밭. ©심재혁
산티아고 순례길에 펼쳐진 유채꽃밭. ©심재혁

 

산티아고 순례길 – 카미노 프랑세스

나는 2018년 4월 12일 생장피드포르 순례자협회 사무실에서 순례자 증명서(Credential)를 발급받았다. 이 증명서가 있어야 순례자 전용 숙소인 알베르게(Albergue)에 묵을 수 있고, 매일 도착하는 알베르게나 교회에서 스탬프를 받아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에 제출하면 순례 확인서를 받을 수 있다.

드디어 4월 13일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de Compostela)을 걷기 시작했다.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서 스페인으로 접어들었다. 파란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하늘 아래로 지평선 가득히 진초록 밀밭, 카놀라유를 만드는 노란 유채꽃밭, 막 싹이 트기 시작한 포도밭, 야생화들이 만발한 들판, 양 목장 등 시야에 들어오는 풍광은 놀랍도록 아름답고 공기는 맑고 상쾌했다. 주위는 고요하고 간혹 들리는 새소리 이외에는 적막, 정적의 순례길이었으며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찬송가가 절로 나왔다. 아침 길에는 지렁이와 조약돌처럼 보이는 달팽이들이 무심한 순례객들에 밟힌 사체로 눈에 띄어, 산 달팽이를 볼 때마다 풀섶에 옮겨주곤 했다.

순례길은 포장도로 구간을 지나기도 하나 대부분 비포장길로 흙길, 자갈길이나 산길이다. 시골 마을을 지날 때면 소나 말과 가축들의 배설물들이 널려있어 해가 날 때는 피해 걸으면 되지만 비가 오면 진흙과 분뇨가 범벅이 된 진흙탕길로 변해 발목이 긴 등산화가 필요하다. 또 산길을 가다 보면 손바닥만한 납작한 돌들이 깔린 너덜길을 한 시간이나 걸을 때도 있는데 발목이 삐끗하지 않도록 스틱을 주의하며 짚고 다녀야 한다.

눈 덮인 피레네 산맥 ©심재혁
눈 덮인 피레네 산맥 ©심재혁

날씨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나 4월 중순 피레네 산맥 1450m 고개를 넘을 때는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넘느라 스패츠를 착용해야 하는 구간도 있다. 스페인의 첫 마을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부터는 800~900m 고도의 봄 날씨 같은 메세타 지역을 지나며 점점 초여름 날씨 지역으로 접어들게 된다. 어떤 날에는 하루에 4계절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새벽녘 동이 트면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봄기운을 느끼다가, 해가 뜨면서 작열하기 시작하면 한여름이 되어 자켓을 벗고 반소매와 반바지로 걷다가, 구름이 해를 가리면 가을 소슬바람이 불고, 그 와중에 바람이 불면서 비라도 쏟아지면 우박으로 변해 한겨울처럼 추워져 패딩조끼를 꺼내 입어야 한다.

매일 하루의 일과는 새벽 6시 전후에 기상, 세면과 간단한 조식을 마치고 7시경 출발한다. 도중 마을의 식당이나 우리네 주막집 격인 바르(Bar)에서 점심을 들게 되는데 땀을 흠뻑 흘린 참이라 생맥주 맛이 그만이다. 오후 2~5시경 다음 행선지의 숙소인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침대를 배정받은 후, 샤워와 세탁을 마치고 휴식을 취한다. 알베르게는 마을마다 상황이 다른데 지역 교구, 수도원이나 수녀회, 지방자치단체 또는 민간이 운영하는 숙소들이 있다. 요금은 수도원처럼 무료인 경우 기부금 박스가 있어 5유로 가량 넣기도 하며, 일반적으로 5유로부터 12유로까지 다양하다. 시설 구조는 침실, 거실, 샤워실, 화장실, 세탁실, 식당 등으로 되어 있다.

밀밭과 유채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심재혁
밀밭과 유채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심재혁

 

알베르게의 침실

알베르게에서는 도착순으로 침대를 배정받는데 늦게 도착해서 침대가 마감되고 나면 다음 마을까지 가야한다. 다음 마을까지가 2~3km라면 다행이지만 5~10km를 더 가야 한다면 낭패다. 침실은 물론 샤워룸과 화장실은 남녀 공용이라서 처음엔 불편하지만 곧 익숙해진다. 침실은 벙커식 2층 철재 또는 목재 침대인데 오르내리거나 몸을 뒤척이면 삐걱소리가 나기에 조심스럽고, 사방에서 코고는 소리, 잠꼬대 소리도 들리지만 워낙 고단하다보니 그러한 소리도 자장가 삼아 눕기가 무섭게 곯아 떨어지게 된다.

도착 후 침대를 배정받고 나면 샤워후 세탁을 하는데 기능성 의류들은 곧 마르지만 양말은 잘 마르지 않아 아침에 옷핀으로 배낭에 매달고 걷기도 한다. 화장실이 부족해 새벽부터 줄을 서야 하기에 남들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야 한다. 순례길 도중에는 화장실이 없어 용변을 보려면 길가의 나무그늘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 대부분 알베르게는 밤 9시면 출입문을 닫고 완전 소등한다.

11월부터 3월까지 동절기에는 문을 닫는 알베르게가 많아 4월부터 10월까지 순례객들이 많이 찾게 되는데, 6~8월엔 동절기 의류나 장비가 줄어 배낭무게가 가벼워지나 방학과 휴가철 성수기라 알베르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4~6월, 또는 8~10월이 좋은 시기이다.

알베르게 내부 침실. ©심재혁
알베르게 내부 침실. ©심재혁

저녁식사는 알베르게마다 달라서 구내식당이 있으면 여러 순례객들과 함께 순례자 메뉴로 식사하게 된다. 메뉴는 보통 야채수프, 딱딱한 바게트 빵, 까페 콘 레쩨(Café con Leche, Coffee with Milk), 버터, 쨈, 오렌지와 물 또는 와인이며 요금은 보통 10유로, 아침은 간단식으로 3유로다. 식당이 없고 인덕션 조리기구등이 있으면 동네 슈퍼마켓에서 바게트, 야채, 과일, 요거트, 냉동닭 등 식재료를 사다가 조리하거나 마을 식당으로 간다.

스페인은 포도의 재배면적 기준으로는 세계 최대국가이다. 가성비가 좋은 와인들이 많고, 마을마다 레이블없이 병입한 와인들도 훌륭하다. 식당에서 식사주문을 하게되면 웨이터가 물을 마시겠느냐, 와인을 마시겠느냐 묻는 경우가 많다.

순례를 시작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마침 내 생일이 되었기에 알베르게 주인의 추천을 받아 일행과 함께마을에서 제일 근사한 식당으로 향했는데 낮 1시부터 4시 사이에 낮잠(siesta)을 자는 그곳 사람들은 식당을 8시 반부터 오픈한다기에 그냥 간이 식당에서 단출한 생일 파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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