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출간
출판사들 출판 난색에
1인 출판사 차려 출간
미투 촉발한 시 ‘괴물’
포함 48편 수록

최영미 시인이 25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신작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최영미 시인이 25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신작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최영미 시인이 6년 만에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을 출간했다. 지난 2017년 10월 고은 시인의 성폭력을 고발하고 2월 고 시인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에서 승리한 지 4개월 만이다. 시집에는 미투 운동을 확산시킨 시 ‘괴물’을 포함한 48편의 시편들이 실렸다. 

6월 25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한 카페에서 최영미 시인은 밝은 표정으로 기자들을 만났다. “저는 제 글에 자신이 있어요. 터무니없는 자신감이 지금까지 저를 이끌었습니다. 지난해 고립무원에서 ‘그의 사람들’ 속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지금까지 온 것은 자신감 때문입니다.” 

이번 시집은 그가 직접 차린 1인 출판사 이미출판사의 첫 책이기도 하다. “지난해 시집을 내고 싶어 여러 출판사에 문의했지만 답이 없었어요. ‘한국 문학 출판사에서 내 시집을 내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구나’ 깨달았습니다. 1인 출판사 생각은 오래 했었어요. 하지만 나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 생각했어요. 이번을 계기로 출판사를 차리게 됐죠. 너무 힘들어서 온 몸의 피를 갈아 바꾸는 것만 같았어요.”

수록작 중 ‘등단 소감’은 등단 후 1993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보에 기고했던 시로 26년 만에 시집에 수록됐다. 몇 번이나 기고처를 밝힐지 말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기고처와 논란을 빚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시에는 등단초기 그가 문단에서 겪은 성폭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내가 정말 여, 여류시인이 되었단 말인가/ 술만 들면 개가 되는 인간들 앞에서/ 밥이 되었다, 꽃이 되었다/ 고, 고급 거시기라도 되었단 말인가” 

최 시인은 등단 초기 문단에서 겪은 성폭력이 그를 중심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기회를 잃게 만들었다고 회상한다. “처음에는 문인들의 술자리에 자주갔지만 갈 때면 만지고 성희롱을 하니 자연히 술자리에 안 나가게 됐어요. 나가면 불쾌한 일을 당하니 서서히 멀어진 거지요. 멀어지지고 자주 안 나타나니 기회가 덜 오게 됐어요. 원고청탁도 뜸해지고 문단계 입지가 아주 좁아졌어요.”

그는 시 ‘괴물’을 발표하기 전 오랫동안 ‘EN’을 쓸지 ‘N’을 쓸지 고민은 했지만 발표한 것만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젊은이들과 여성들에게 미안해요. 2016년 문단계 성폭력 고발은 여고생이 시작했어요. 시를 쓰면서도 미안했어요. 내가 너무 늦게 썼다, 그런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썼어요.” 

최 시인은 “왜 이제껏 침묵하다 뒤늦게 폭로했느냐” 는 질타도 받았다고 한다. 그는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고발 운동 당시 관련 문제를 물은 한 언론사 기자에게 고 시인의 실명을 말하고 취재까지 응했던 사실을 전했다. 그럼에도 문단 내 성폭력이 드러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그는 “문단 내 남성권력”이라고 꼬집었다. 

“평론가, 교수, 심사위원 등 권력을 쥔 이들은 모두 남성이이에요. 그들은 아주 오랫동안 문단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여성 평론가들도 있지만 남성 평론가들이 더 세요.”

이번 시집에는 재판을 준비하며 쓴 시 ‘거룩한 문학’, ‘바위로 계란 깨기’부터 비롯해 여성의 힘을 믿고 나아가기를 기도하는 시이자 여성신문 30주년 축시 ‘여성의 이름으로’ 외에도 고요한 일상을 살아가며 느낀 소회를 쓴 시들이 실렸다. 섬세하고 회화적인 어조로 사랑에 대해 쓴 시들과 인지증 어머니를 간병하며 쓴 시편들도 여럿 실렸다. 

“밥물은 대강부어요/쌀 위에 국자가 잠길락말락/ 물을 붓고 버튼을 눌러요/ 전기밥솥의 눈금은 쳐다보지도 않아요/ 밥물은 대충 부어요 되든 질든/ 되는대로 대강, 대충 살아왔어요/ 대충 사는 것도 힘들었어요/ 전쟁만큼 힘들었어요”

최 시인은 해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의도적으로 이런 글을 써야겠다 보다는 닥치는 대로, 나오는 대로 써요. 재판이 일상이니까 그땐 그런 시를, 어머니를 간병하는 시기에는 간병에 대한 시를 쓴 거에요. ‘밥을 지으며’는 밥을 짓다가 지었어요. 한 번에 쭉 나온 좋은 시라 아주 맘에 들어요. 좋은 시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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