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하라 칼럼] ‘자유 여성’ 마르셀라, 진실한 사랑을 거절할 권리를 외치다
[반하라 칼럼] ‘자유 여성’ 마르셀라, 진실한 사랑을 거절할 권리를 외치다
  • 반하라 인류학자·작가
  • 승인 2019.07.05 10:13
  • 수정 2019-07-07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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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돈키호테』속 마르셀라에게
사랑을 고백한 청년이 거절 당한 뒤
자살하자 여성에게 ‘악녀’ 낙인
“그의 집착이 그를 죽인 것…
나는 자유롭기 위해 고독 택해”
소설 돈키호테를 기념하기 위해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스페인 광장에 조성해 놓은 동상.
소설 돈키호테를 기념하기 위해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스페인 광장에 조성해 놓은 동상.

 

미투(Metoo) 운동 이전 여성들은 성희롱과 극복하기 힘든 성폭력을 당해도 입을 열기 힘들었다. 여성에게 가혹한 성 문화를 이용해서 피해자들을 ‘꽃뱀’ 등으로 역공격해 온 행태를 흔히 봐와서 였다. 심하게는 ‘사람잡는 나쁜 X’란 표현도 20세기 초중반 한버명작 단편들에서 드물지 않게 나온다. 반면, 매우 매력적인 남성에게 ‘사람잡는 나쁜 놈’이란 표현은 쓰이지 않고 여성들이 더러 그런 남성의 매력에 빠져 희생되더라도 ‘매력적인 남성’에게 사회가 ‘낙인’ 찍는 일은 거의 없다. 또 ‘바보같은 X’는 있지만 ‘바보같은 놈’이란 표현은 자제되는 면이 있다. 동서고금에 걸친 부당한 성의 불균형 때문에 1605년 출판된 『돈키호테』 첫 권에서 스페인의 대문호 세르반테스는 ‘사람잡는 나쁜 X인 마르셀라’를 등장시켜 무고한 여성에게 낙인찍는 남성들을 마르셀라가 어떻게 계몽하는지 정의의 기사 돈키호테의 관찰로 보여준다.

절세 미녀인 마르셀라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하자 그 마을 최고의 청년 ‘그리소스토모’는 자살한다. 고매한 성품은 물론, 시를 짓고 연극을 올리고 천문학에 정통하고 우정의 불사조라 여겨졌던 그리소스토모가 자살하자 그의 친구 암브로시오는 마르셀라를 ‘잔인함이 피를 뿜어대는’ 여성이라고 맹비난한다. 그리소스토모는 사랑과 존경만 바쳤는데 마르셀라는 증오와 멸시에 차서 관계에 희망을 돋우고 잔인하게 좌절시킨 ‘꽃뱀’이라는 듯 마르셀라를 악녀로 낙인 찍는다. 그러는 순간 마르셀라는 그리소스토모의 추모매장지에 나타나 당당하게 항변한다.

나의 ‘아름다움’은 선택한 게 아녜요. 독사에게 독을 준 건 하늘이지 선택이 아니어서 독을 독사의 책임으로 물을 수 없다고 말한다(독사에 물리지 않으려면 독사를 스토킹하지 말란 이야기!). ‘아름다움’을 사랑해서 아름다운 사람을 사랑하면 감사해서 사랑해야만 하나요?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같이 ‘추한 것’은 싫어해서 싫어할 상대라도 사랑을 고맙게 여겨서 사랑해야만 한다는 건가요? 내가 추하면서 사랑하는데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자 고마워할 줄 모른다고 내가 분노한다면 맞는 걸까요? 아니 양쪽 당사자가 모두 ‘아름답다’ 해도 반드시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아름다움’은 눈을 즐겁게 할 수는 있어도 마음을 사로잡을 수는 없답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함께 해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겁니다. 사랑은 우러나는 거고 누군가에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 ‘덕성’있는 여성의 아름다움은 ‘먼 불’이고 ‘날선 언어’여서 가까이 오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아요… 나는 자유롭게 태어났고 고독을 선택해서 자유로이 살아요…숲의 나무가 나의 친구요, 맑은 샘물은 나의 거울입니다… (질투할 상대가 없는 것은 자명한 것.) 나는 그리소스토모에게 어떤 희망도 부추키지 않았고 어떤 약속을 한 적도 없어요… 나의 ‘잔인함’이 아니라 그리소스토모는 자신의 부족한 인내심, 집착, 그리고 통제하지 못한 정념에 스스로 희생된 겁니다. 덧붙여 마르셀라는 자신은 부유해서 도움도 필요없고 자유로이 살고 제약받고 싶지 않다면서 자신을 따라다니며 구혼하려들지 말라, 경고하고 훌쩍 떠난다.

모험길에 부상 당한 방랑 기사 돈키호테가 산양지기들을 만나 대접을 잘 받고 그들을 따라서 그리소스토모의 매장지에 구경가서 들려주는 이야기다. 살라망카대학교(당대의 옥스브릿지)에서 수학하고 고향에 돌아온 ‘지식 청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급 옷을 던져버리고 목동 복장인 지팡이와 가죽 옷을 걸치고 돌아다니다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자살했다고 하니 돈키호테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소스토모를 따라 그의 친구들도 목동 복장을 하고 다닌다고 하자 필자는 그리소스토모와 그의 무리들은 19세기 중반 러시아 도시에서 불었던 ‘나로드닉스’의 수백 년 전 전례인가 생각했다. 바로 나로드닉스는 농촌으로 가서 농민들의 옷을 걸치고 농민들을 따라 살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페인의 ‘황금 시대’(16세기 중반에서 17세기 중반)를 구가했던 지식 청년들의 ‘낭만적 사치’를 이해 못한 무지의 소치였다. 그리소스토모와 친구들이 목동 행세를 하고 나선 건 아름다운 마르셀라를 모방하고 그에게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가 전부였다. 부모를 일찍 잃고 거대한 유산을 상속한 마르셀라는 비싼 드레스 대신 목동 복장을 하고 다른 여성 목동처자들과 산과 들로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갖은 노력으로 마르셀라의 환심을 사려했지만 ‘자유 여성’ 마르셀라의 마음을 돌릴 수 없자 그리소스토모는 상상의 질투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자신의 망상에 소모되어 희생된 것이었다. 세르반테스는 거절된 사랑 때문에 모두가 존경했던 남성이 목숨을 끊는 일이 생겨도 그가 사랑했던 여성에게 죽음의 책임을 물어서는 안되고, 더욱이 여성이 자유를 선택한 삶을 선언했을 때는 반드시 존중해야 한다고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여성이 자유를 선언할 수 있는 조건을 꽤 까다롭게 보여준다. 생활을 위해 구혼을 받을 필요없이 마르셀라를 부유한 상속녀로 만들었다. 거절 당한 구혼자들이 자해하면서 쏟아지는 낙인으로 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사유 능력과 적시에 방어에 나서는 행동력을 갖추도록 했다. 그리고 마르셀라가 선택한 자유는 자연과 함께 하는 ‘고독’ ? 목동들과 함께하는 고독 아닌 ‘고독’이었다. 세르반테스가 그린 ‘자유여성의 이상향’은 자연에서 자유롭게 방랑하는 부유한 목동 마르셀라였다. 오늘날 여성 각자에게 그려지는 이상적 자유 여성의 이미지는 무엇이며 현실에선 어떤 장애물들을 어떤 전략으로 역경을 극복해서 자유를 쟁취해야 하는지 그리소스토모와 같은 망상에 빠져서 자해를 하거나 그의 친구 무리들처럼 여성들을 ‘잔인한 꽃뱀’으로 모는 남성 주류 문화가 팽배한 현실에서 미투는 여성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첫 걸음을 확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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