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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 잔을 마셨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아직 그 술기운이 온 몸에 남아있다. 슬펐다. 마음 속 아주 깊은 곳에서 찌릿찌릿 날 울렸다. 오랜만에 아니 솔직히 처음으로 내 어미와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하고 난 후라서 그럴 것이다.

내 어미는 충청도 칠갑산 자락 밑 아주 작은 시골마을에 사는 촌부이다. 비록 몰락하긴 했어도 양반집 김진사댁 둘째딸로 태어나 어려움 모르고 살다가 장사꾼인 내 아비와 결혼해 딸 셋을 내리 낳았다. 아들이 꼭 있어야 한다는 할아버지, 할머니 고집에 소박맞고 쫓겨나야 했고 다른 부인을 맞이한 아비는 아들을 보게 됐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히 내 어미는 날 세상에 내 놓게 되었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조강지처’란 자리에 복귀했고 집안에서 대우받고 살아갈 수 있었다. 그 어미에게 난 얼마나 소중한 아들일까?

정말이지 내 인생 통틀어 내 어민 내가 갖고 싶다는 모든 걸 다 해주려 애썼던 분이시다. 그런 그 분에게 아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를 사랑한다는 얘길 했을 때 얼마나 충격이 크셨을까? 내 어미는 정말 많이도 울었다. 소리내지도 못하고 꾹꾹 입으로 되새김질하며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어제 어미가 서울에 마실 나왔다. 누나 집에 볼일이 있어서였는데 실은 연휴동안 여행가게 된 누나의 식구들을 돌보기 위함이다. 난 어미와 데이트 약속을 한다. 먼저 내가 경영하는 이태원 레스토랑에서 맛난 음식을 먹고 동대문에 가서 여름옷을 한 벌 사고 영화를 본 후 인사동 내 단골 한정식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 이만하면 괜찮은 데이트 스케줄 아닌가?

그러나 내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는 어미는 자꾸만 그냥 집으로 들어가자 하셨다. 아마 많은 사람 앞에 게이 아들과 나서는 게 좀 걱정된 듯 싶다.

난 어미의 손을 끌고 동대문으로 향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어, 홍석천이다.”

“아저씨 사인해 주세요.”

“오빠 멋져요. 어머 옆에 계신 분 어머니시죠? TV에서 봤어요.”

사람들의 이런 반응에 어미는 점점 기분이 좋아지셨나 보다.

“우리 아들이 TV에서보다 훨씬 잘 생겼죠? 원래 모범생이었어요. 학교 다닐 때 못하는 게 없었죠. 평생 속 썩이는 걸 못 봤어요.”

옷을 사면서는 별 얘기를 다 늘어놓으며 가게 주인과 한참을 수다 떨었다.

영화를 보재도 “비쌀텐데” 하며 싫다 하시다가도 내가 “아들 돈 많이 버니까 걱정말고 이 영화 꼭 보고 싶었는데 같이 보자”며 표를 사니 “원래 영화 같은 거 안 좋아하는 데 …” 하신다.

영화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평생 영화관이란 곳을 못 가봤으니 그런 거지. 난 미안해 죽는 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어미가 간간이 서울에 왔어도 영화관 한번 가 본 기억이 없었다. 바쁘다는 핑계가 있었지만 죽일 놈이다.

아무튼 <선생 김봉두>를 보면서 나와 어미 모두 웃다 울다 정말 즐거워했다. 큰 봉투에 든 팝콘과 콜라를 들고 극장에 들어섰을 때 뒷 자석의 고등학생이 “오빠 사인해줘요” 라고 했을 때 어미의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방송에서 쫓겨나고 주위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살지는 않나 늘 걱정하던 어미가 이젠 마음이 좀 놓이다 보다.

인사동에서 한정식을 먹을 땐 늘 그랬듯이 생선뼈를 발라 내 밥 위에 얹어주시며 말한다.

“아무리 바빠도 밥은 꼭 챙겨먹어야 한다. 엄마가 옆에서 다 해줘야 하는데 미안하다.” 미안한 것도 참 많으시다. 아들이 어미에게 미안한 그 많은 것들은 어쩌라고.

일이 있어 데이트는 그 저녁으로 마무리하고 누나집인 일산 쪽 전철을 태워드렸다. 어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게 전화해서 피곤하지 않았냐고 돈 많이 쓴 거 아니냐고 묻는다. 사랑스럽다. 내 어미지만 너무도 사랑스럽다.

“엄마, 사랑해”

“응 그래, 나도 아들 사랑해”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언제부턴가 전화말미에 하게 된 우리들만의 대화다. 어미는 꼭 그 얘기를 해야만 전화를 끊는다. 언제부터였더라? 아, 내가 커밍아웃하고 힘들어 했을 때부터 였구나. 그땐 어미나 나 모두 울고 있었는데 오늘은 참으로 크게 미소지으며 사랑한다 했다. 다음 데이트는 더 멋진 걸로 준비해 봐야 겠다. 이번 어버이날엔 모든 사람이 부모님께 “사랑합니다” 라고 얘기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몇 자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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