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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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펫숍에서는 D백작이 산다. 이 펫숍에서 다루는 펫을 중심으로 여러 에피소드가 펼쳐지는 게 matsuri Akino의 만화 다. 그런데 동물가게 주인이 웬 백작? 실제 그는 백작이 아니고 백작은 할아버지인데, 그는 현재 여행 중이시고, 그 대신 가게를 보는 손자가 주인공이자 이 펫숍의 주인이다. 아무튼 그를 D백작으로 부르기로 하는데, 그가 또 참 묘한 인물이다. 일단 너무 잘생겼다. 이렇게 잘 생긴 펫숍 주인 봤나? 아무렴 만화책이니 그렇지 하고, 다른 만화책에선 나왔는지 모르지만, 현실에선 난 한 번도 못 봤다. 일단 본 분 있으면 나에게 꼭 소개시켜 주기 바란다. 아무튼 기막히게 잘 생긴데다 분위기도 알싸하다 못해 묘한 게 비 오는 날 발견한 한 떨기 매화 같은 꽃미남 D백작이 운영하는 펫숍은 보통 펫숍이 아니다. 보통 펫만 취급하는 것도 아니다. 뭔가 특이한 것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서, D백작이 특이한 휘장을 척 들추고 가게 안쪽으로 안내하면 그 다음 일은 벌어진다. 말이 펫이지 눈으로 보기엔 딱 인간인데, D백작은 극구 펫이라고 우기는 펫을 손님에게 안겨주는 것. 손님은 하나 같이 눈물을 줄줄 흘리거나 입을 스모 선수 밥그릇 만치 쩍 벌리고 좋아라 펫을 데리고 돌아간다. 물론 그냥 돌아갈 순 없다. 돈도 돈이지만, 백작은 꼭 그에게 세 가지 주문 같은 금지사항을 안겨준다. 이 사항을 어길 시엔 절대 책임지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첫째, 누구에게도 보이지 말 것. 그리고 그 다음은 펫에 따라 제 각각이다. 눈을 보지 말라거나, 과자를 주지 말라거나, 항상 신선한 과일만 먹이라거나 등등. 아무튼 주문도 요상하고 해괴한데, 문제는 꼭 펫을 데려간 사람들이다. 어쩜 그리 약속이나 한 것처럼 금지사항들을 척척 어긴다. 그리고 어긴 금지사항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참혹한 대가가.

제목에 붙은 것 마냥 약간 호러 느낌도 있는 이 펫숍 이야기는 그러나 그렇고 그런 만화책으로 보기엔 뭔가가 있다. 일단 그림부터 판타스틱하리만치 예술이지만, 스토리도 그냥 심심풀이 땅콩으로 취급했다간 목에 딱 걸린다. 어린 시절 아역스타였으나 지금은 한물 간 영화배우가 마지막 기회마저 날아간 상태에서 겪는 이야기나, 죽은 자식대신 펫을 데려간 부모가 D백작의 금지사항을 어기고 펫에게 과자를 먹였다가 벌어지는 이야기 봐라. 먼저 죽은 자식도 마약 중독이었으나, 자식에 대한 사랑이란 이유로 계속 마약을 달라는 딸에게 마약을 건네주던 부모는 결국 자식이 죽고나서도, 펫에게도 주지 말라는 과자를, 단지 너무 먹고 싶어한다는 이유로 건네주고야 만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이 독은 다시 또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

친구가 얼마전 고양이에게 거세 수술을 해줬다. 나이가 찼고 파트너가 그리운 고양이가 자꾸 밖으로 뛰쳐나가려 들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내 측근 홍모씨는 이상하단 듯이 말했다. “그게 동물을 사랑하는 거야?”나도 잘 모르겠다. 아파트에 사는 개에게 성대 수술은 필수다. 도대체 사랑이 무엇일까? 수술을 해줘서라도 그의 고통을 제거해주는 것? 아니면 나와 함께 살도록 해주는 것? 사랑이란 이름의 독은 지독하다.

영화배우의 죽음을 조사하다 펫숍에 찾아온 레옹 형사에게 D백작은 말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 종은 그 옛날 암살용의 병기로서 키웠었다고 합니다. 이 매혹적인 자태로 상대방을 방심하게 만들어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을 때 눈가리개를 풀어 그 눈동자로 적을 째려보면… 그녀의 눈을 본 사람은 순간 돌이 되어버린다고 하는, 마치 고대 그리스의 전설에 나오는 메두사처럼.”

레옹은 항당하단 듯이 말한다.

“도… 도대체가 도마뱀이 인간인 여자의 모습으로 보였다니… 약이라도 맞고 정신이 나갔던 거 아니야?”

글쎄. 인간은 원래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존재 아닌가?

조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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