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3000일 생리하는 여성들
1인 당 1만2000개 생리대 필요
한국 생리대 개당 331원
OECD 회원국 중 가장 비싸
여주시·강남구, 여성 청소년에
무상 생리대 지급 결정

서울 지여 공공기관 화장실에 비치된 공공생리대 자판기를 사용하는 모습. ⓒ서울시
한 여성이 서울 지역 공공기관 화장실에 비치된 생리대 자판기를 사용하고 있다. ⓒ서울시

서울 강남구가 지난 3월 지역 내 초·중·고등학교 34개교 등 82개소에 159대의 생리대 보급기를 설치했다. 한 발 더 나가 경기 여주시는 올 하반기부터 11~18세 여성 청소년 모두에게 생리대를 무상 지급한다. 전국 최초다. 지난 2016년 이른바 ‘깔창 생리대’로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의 생리대 부담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며 “안전하고 건강하게 생리할 권리”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생리대 무상 지급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생리대는 화장실 휴지 같은 필수품입니다.” 율리사 페레라스-코프랜드 뉴욕 퀸스 시의회 의원은 뉴욕 관내 모든 공립학교와 교도소, 노숙자 쉼터에 무료 생리대와 탐폰을 제공하는 법안을 발의하며 이 같이 말했다. 뉴욕 시의회가 이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면서 뉴욕에 사는 11~18세 여성 약 30만명, 보호시설에 거주하는 여성 23만명이 무료로 생리대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당시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 역시 “생리대는 화장지나 비누처럼 필수품이지만, 값이 비싸 가난한 이들에겐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같은 시기 스코틀랜드와 영국에서도 ‘생리 빈곤(period poverty)’가 떠오르면서 무상 생리대 논의가 촉발됐다. 이후 2018년 스코틀랜드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영국은 올해부터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생리용품을 무료 지급하고 있다.

2016년 한국에서도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을 생리대로 사용했다는 ‘깔창 생리대’ 사연이 알려졌다. 한국소비자원 발표를 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생리대 가격은 개당 331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비싸다. 일본·미국은 181원, 캐나다 202원이고 물가가 비싼 덴마크는 156원으로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 정부는 2017년 12월 ‘청소년 복지 지원법’ 개정을 통해 11~18세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에게 한 달에 1만500원의 생리대 구입용 바우처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저소득층 중심의 선별복지는 낙인과 차별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무상 생리대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28일 세계월경의 날에는 여성환경연대, 참교육학부모회, 아이쿱 등 25개 단체가 모여 ‘서울시 여성청소년 생리대 보편지급 운동본부’를 창립했다. 여주시의 3배가 넘는 재정자립도를 가진 서울시가 청소년 복지확대와 여성건강권 실현을 위해 앞장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발 맞춰 권수정 정의당 서울시 의원은 11~18세 여성 청소년에게 생리대를 무상 지급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시의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현재 서울시 성평등 기본조례 제25조의 2, ①항에는 “시장은 가임기 여성의 성건강을 위하여 보건위생에 필수적인 물품을 지원할 수 있으며 긴급한 경우를 대비하여 공공시설 등에 비치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권 의원은 이 부분을 일부 개정해 조례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공공기관과 학교 등에 비상용 생리대를 비치하는 시범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책정된 예산은 5억원에 그친다. 이 조례안이 통과한다면 연간 411억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저소득층 생리대 지원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은 21억원으로 약 20배 가량의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이번 “불쌍한 여성청소년을 도와주겠다가 아니라 청소년도 성적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 담론의 시작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은 “생리는 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없는 문제이며, 생리대는 여성에게 생활 필수품”이라면서 “충분하고 안전한 생리대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여성 건강권의 기초”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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