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중 학생들에게 한국과 연관지어 생각나는 사람이나 기업을 적어보라고 한 적이 있다. 이 조그만한 여론조사에서 엄청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50명이 수업에 참가하는 학급에서 BTS(방탄소년단)를 알고 있는 학생은 37명이나 되었다. 최근 영국과 프랑스를 거쳐 세계 투어 공연에서 비틀즈와 비교되는 아티스트로 소개되고 있으니, 그들의 인기는 북유럽까지 확산된 듯 하다. 70%가 넘는 학생이 BTS를 알고 있으니 말이다. BTS 다음으로 삼성(55%)이 뒤를 이었고 LG(42%), 기아(31%), 싸이(29%), 현대(23%) 순서대로 이어졌다. 여기까지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다음 이름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0%가 되는 10명의 학생이 ‘김정은’을 언급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 대통령 이름을 기억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강대국 지도자 이름을 물어보면 당연히 나라와 함께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아베도 일본 수상으로 기억하고 있는 학생이 과반을 넘는다. 그 다음으로 독재자들의 이름은 비교적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마두로 베네수웰라 대통령, 사담 후세인, 가다피 등의 독재자 이름들은 주저하지 않고 반응한다. 왜 그럴까?

국가 지도자의 이름은 국가 위상만큼이나 언론에서 언급되는 순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강대국 지도자들은 하루에도 몇 번이고 등장하니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이상할 정도다. 그 다음으로 전쟁 국가들이나 국가 소요 등을 겪고 있는 나라들의 지도자들이 등장하는 횟수가 높다.

강대국의 선거는 세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초미의 관심사다. 일본 선거를 뉴스에 꼭 다루면서 한국 대통령 선거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스웨덴 언론을 보면서 한탄한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 이유를 알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강대국이 아닌 국가들은 대개 부정적 뉴스에만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대홍수, 대기근과 전염병, 난민, 폭력집회, 정치부패 등이 단골 메뉴다. 북한의 핵 이슈는 여기에 해당된다. 이러니 김정은이 언급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과 북한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씁쓸하기만 하다.

다행히 최근 들어 언론에서 한국을 다루는 횟수가 늘면서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인 보도를 더 많이 하는 추세다.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이 앞서 가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잘 알고 지내는 스웨덴 교수는 꼭 한국에 가봐야 하는 이유로 게임스포츠를 들었다. 게임의 메카인 한국에서 직접 게임을 해보고 싶다고 저명한 대학교수가 이야기 할 정도니 얼마나 한국이 이 분야에서 앞서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어로 인사하는 중동 및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태권도를 좋아하고 드라마와 케이팝(K-POP)을 수시로 듣는다면서 언젠가 국기원에 가서 꼭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고 하는 한국 마니아들은 이제 넘쳐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한층 더 쌓아 올린 듯 하다.

지난 주 스톡홀름 외곽 살트쉐바덴을 찾은 우리나라 대통령과 스웨덴 총리의 만남을 보도한 스웨덴은 우리가 지금까지 이룬 것을 극찬하고 있다. 우리가 이룬 경제 기적과 기술 발전, K-POP과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은 우리의 얼굴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고 한국을 고도의 민주주의 국가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정치와 노사문화, 관료의 능력, 국민의식 수준 등을 기반으로 한 국격은 아직 세계적 수준에서 한참 멀었다고 본다.

스웨덴의 외교사문건을 보관하고 있는 국립자료원에서 한국에 관한 자료를 찾아 조사연구한 적이 있다. 그 때 대한제국과 일본 합병 원본의 영문 번역본을 일본 주재 공사가 스웨덴 외교부에 보고한 자료를 본 순간 심장이 멎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아직 햇빛을 보지 못한 한국에 관한 자료 중 한국민을 게으르고, 지저분하고, 나라를 빼앗길 수 밖에 없는 민족으로 비하하고 있는 당시 열강들의 인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문서도 있다. 세계사, 세계문화사, 세계예술사, 세계지리 등에서 우리나라는 주권이 없는 중국의 속국으로 다룬다. 중국이 오만하게 우리를 대하는 이유다.

지금 우리나라는 과거 실패의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고, 현재를 이룬 과거의 행적과 미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고민하는 지식인이 많이 배출되어야 할 때다. 진정으로 대한민국을 업그레이드 시키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구한말의 운명을 맞이 할지 모르는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는 우리나라를 위해 이렇게 기도했다.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질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모르고 묶여 있는 것이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한민족을 위해 절규한 선교사 언더우드의 기도가 지금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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