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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공공보육기관에서 유아들이 교육받고 있다. <사진·민원기 기자>

우리 아이들은 학교 교육 시간만 따져도 외국 아이들에 비해 1.5∼2배 더 공부하고 있다. 여기다 학원이나 가정에서의 보습교육까지 치면 아마 서네 배 더 공부하고 있다고 보인다. 소비 중 교육비 비중도 외국에 비해 두 배 가량 높아 세계 최고이다. 이와 같이 공교육과 사교육 양쪽에서 가히 세계 최고라 할만큼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인데, 과연 이러한 천문학적 투자의 효율성은 얼마만큼이나 될까?

우리나라는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이 나가는 다양한 국제경시대회의 성적은 우수하다. 예를 들면, 1999년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IEA)가 38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수학·과학 성취도 비교 결과 우리나라는 수학 2위, 과학 5위를 각각 차지했다. 이러한 우수한 성적은 “외국에서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높은 학력수준 등에 대해 칭송을 아끼지 않는데 국내에서는 혹독한 비판을 듣는 것은 안타깝고 서글픈 일”(‘퇴임-신임 교육부부총리의 한마디’, 동아일보 2003년 3월 7일자)이라는 전(前) 교육부 총리의 발언처럼 우리 교육의 교육붕괴론을 반박하고 오히려 수월성을 입증하는 자료로 인용된다.

창의력도 잘 놀아야 키운다

7차 교육과정 예체능 축소

그러나 같은 조사에서 학생들의 긍정적 태도의 측면은 수학은 38위로 최하위였고 과학도 22위로 나타나 학생들의 자신감이 매우 낮게 나타났다. 지난해 교육개발원 조사에서도 아이들은 학년이 높아질수록 교과목 흥미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00년 국제수학연맹은 한국을 5등급 가운데 4등급 국가로 분류했다.

자료를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는 잘 하는 상위 학생들은 국제경쟁력을 지니지만, 전반적인 학습능력이나 선호도는 하위권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면 국제경쟁력을 지니는 소수 상위권 학생들로 인해 우리 교육이 국제경쟁력을 지닌다는 것이 말이 될까? 천만의 말씀이다.

올라가는 사교육, 떨어지는 학력

우리아이들은 어떤 교육적 근거에서 짜여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외국의 진도보다 3, 4년 앞선 수학을 배우고 있고 외국보다 1.5∼2배 긴 학교 수업 시간에다 방과후의 학원 수업시간까지 해서 두세 배 학습에 더 매달리고 있다. 수십 킬로미터를 뛰어야 할 마라톤을 100미터 달리기 식으로 초반부터 강 스피드로 뛰게 해놓고 마라톤 우승은 우리 것이나 다름없다는 논리다.

그래서 나는 이런 교육부 관리들의 단견을 접할 때마다, 국제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은 아이들의 10년 후, 20년 후를 조사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과연 그 아이가 그때 가서도 국가적으로 혹은 지구적으로 제대로 기여하고 있는 수재인가를.

한편, 분명한 것은 엄청난 사교육 투자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학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사교육을 인정하고 대충 가르치는 데 이골이 난 교사가 아닌 ‘소신 있는’ 교사들은 선행학습의 폐해를 줄곧 주장해오고 있다. 그 주장을 들어보면, 설사 선행학습을 하더라도 따라갈 수 있는 아이들은 전체에서 5% 이내에 드는 아이들이고 이 경우도 한 학기 이상 선행학습은 아이들의 인지 능력상 객관적으로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선행학습을 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원 숙제를 해갈 시간이 없어 노는 시간에 답을 베끼는 실태라는 것이 선생님들의 관찰이다.

죽어라 가르쳐도 결과는…

둘째로 온갖 사교육, 선행학습의 열풍에도 불구하고 애들은 더 똑똑해지고 있는 게 아니라 멍청해지고 있다는 것이 일선 교사들의 느낌이다. 교사의 이런 느낌에 의아해 하는 내게 초등학교 때 첫 아이 담임 선생님은 “학원 간다고 똑똑해지나요? 학교에서도 멍청, 학원에 가서도 멍청. 부모가 가라니까 학교랑 학원이랑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기만 하는 거지요. 어제 배운 내용을 말하라고 하면 제대로 말하는 애들이 하나도 없어요.” 교사의 말은 우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인들은 대체로 어린 시절 개구쟁이였다. 금세기 최고의 생물학자로 칭해지는, 노벨상을 수상한 여성 생물학자 맥클린 톡의 전기 <생명의 느낌>을 보면, 어린 시절은 온통 논 얘기뿐이다. 이런 위인들의 개구쟁이, 선머슴아 유년 시절 얘기는 창의력이 우리가 천문학적으로 퍼붓고 있는 교육 투자에 있지 않음을 말해준다. 우리는 이른바 정보화 혁명의 문턱에 들어섰다.

정보화 사회는 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도 창의력을 요구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너무도 안타깝지만, 자율적 생존 능력을 상실한 학교교육과 이 학교교육의 젖줄이 돼버렸다고 까지 느껴지는 블랙홀에 불과한 사교육의 올가미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 아이들과 부모의 모습이 아닌가? 일제 식민지 교육을 청산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식민지성 탓이거나 공교육과 사교육 간의 거대한 밀착 또는 이 둘 모두의 탓임을 느끼게 되는 전율스런 이 일상의 중심에는 ‘검인정’으로 국가적 권위를 인정받는 비정상적인 교과과정이 도사리고 있다. 심지어 7차 교육과정은 창의력 배양의 토대인 예체능 교육을 선택과목으로 전환하면서 수업시간을 주당 1∼2시간으로 축소했다!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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