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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걸프전 이후 상수도 공급 시설 파괴로 오염된 물을 마신 사람들은 콜레라와 수인성 전염병에 시달려야 했다. <사진·Saul Bloom 녹색연합 제공>

생태여성주의자들의 연구 모임인 꿈지모의 시각을 통해 환경, 지구, 생명의 문제를 바라본다. <편집자 주>

1991년 걸프전 참전 용사 17%가 증후군

이라크전, 일상의 삶 빼앗긴 이들의 고통

잔인한 4월이었다. 미국의 최신예 무기들이 이라크의 공중에서 지상으로 투하되는 장면들을 매일 매일 TV 화면을 통해 전해 받는 것은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였다. 그리고 한달 여가 지난 지금, 사담 후세인 정부를 몰아내고자 하는 미국의 목표는 일단 성공한 듯이 보인다. 그렇지만 전쟁을 거치면서 해당 지역의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는 최첨단 무기를 동원한 현대전이 남기는 해악들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지난 걸프전 이후 발생한 일련의 상황들을 떠올려 보면, 해당 지역의 사람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상황은 지금보다 더욱 처절할 거라는 생각에 암울하다. 그리고 그 상황은 아주 오래 동안 보다 천천히 그러나 매우 심각해질 것이라는 점에서 또한 강한 연민과 슬픔을 유발한다.

1991년 걸프전에 참전한 미국 군인은 20만 명이었다. 그런데 전쟁 중 전사자가 140명이었던 것에 반해, 전후의 사망자는 만여 명에 이른다. 그리고 이들 참전자 중 다수가 암, 급성 백혈병, 근육 마비, 호흡곤란, 관절염 등의 증상을 호소하거나 기형아 2세를 출산하는 걸프전 증후군을 보였다. 영국 군인들의 경우에도 걸프전 당시 사망자는 49명이었지만, 그후 600여명이 암이나 자살 등의 원인으로 사망하였고, 걸프전 참전 군인 중 17%가 걸프전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증상은 코소보전에 참전했던 미국 군인들에게서도 나타났다.

걸프전 이후 이라크에서 발생한 상황들은 훨씬 더 심각했다. 백혈병이나 암에 걸리는 어린이들이 속출했고, 조산이나 유산 비율이 높아졌다. 기형아 출산 비율은 전쟁 전에 비해 4배가 높아졌다고 한다. 이라크뿐만 아니라 쿠웨이트에서도 가축이 떼죽음을 하는가 하면, 오염된 지하수가 논밭으로 퍼져 경작이 불가능한 땅으로 변한 사례가 속출하였다고 한다.

원자력 전문가들과 미국과 영국 참전자들 및 민간 의료진들은 걸프전 때 미국 측이 사용한 열화 우라늄탄을 걸프전 증후군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열화 우라늄탄은 일종의 핵폐기물인 열화우라늄을 주원료로 하는, 말하자면 핵 쓰레기를 재사용하여 만든 무기이다. 그러나 이런 논란에 대하여 미 국방부 측은 열화 우라늄탄이 불법무기가 아니며 건강상의 문제를 전혀 유발하지 않는다는 공식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다. 열화 우라늄탄이 국제협약상 사용이 금지된 대량살상무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문제는 미국 측이 이번 전쟁에서 또 다시 열화 우라늄탄을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걸프전 당시에도 미국 군은 70만발 이상의 열화 우라늄탄을 이라크에 발사하였고, 40여 톤에서 많게는 수백여 톤에 이르는 양의 사용하지 않은 열화 우라늄탄을 사막에 그대로 방치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 어느 정도 양을 사용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앞으로 해당 지역의 사람들이 어떤 해악을 겪을지를 예견하는 것만도 참으로 잔인한 일이다. 어쩌면 더 많은 이라크의 젊은 부부들이 기형아를 출산할 두려움에 떨어야 할 것이며, 더 많은 여성들이 빈번한 조산과 유산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가축도 경작할 땅도 잃어버린 채, 비싼 의약품을 구입할 능력이 없는 수많은 어머니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고통 속에서 천천히 죽어 가는 것을 애끓는 슬픔으로 지켜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또 다른 어머니들은 가족들을 위해 보다 덜 오염된 물과 더 귀해진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만 할 것이다. 일상의 삶터를 파괴당한 이들에게는 앞으로 남은 삶이 더 심한 고통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현대의 최첨단 무기는 그것의 적법성 논란과는 상관없이, 불특정 다수의 삶터와 그 곳에 거주하는 존재들의 현재와 미래를 천천히 그러나 너무나도 참혹하게 파괴하는 대량살상무기이다. 이번 전쟁을 통해 미국의 군산복합체들이 무기와 핵 쓰레기를 공식적(?)으로 처리할 기회를 가졌다는 점에서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도 가장 부유한 층에 속하는 이들이 무기 생산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욕망을 지속하는 한, 그리고 지금과 같은 에너지 수급 체계에서 이권을 가진 이들이 그것을 유지하려고 하는 한, 이들은 또 다른 이라크를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이라크 공습 소식이 뜸해진 지금이야말로, 우리 자신의 삶터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전쟁 반대를 다시금 생각해 볼 때이다. 아니 전쟁 없는 세상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다. 이를 위해 우리들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꼼꼼히 챙기고 따져볼 일이다.

에코페미니스트들의 모임 ‘꿈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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