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에움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평범한 일상에 초점
왁자지껄한 모습 담아

 

‘에움길’에 등장하는 할머니들. 영상 속 할머니들은 그림을 그리고 꽃놀이도 간다. ⓒ영화사 그램
‘에움길’에 등장하는 할머니들. 영상 속 할머니들은 그림을 그리고 꽃놀이도 간다. ⓒ영화사 그램

화창하고 따뜻한 공기가 흘러 마음이 훈훈해지다가도 풀리지 않은 문제가 떠오르는 순간 몸은 위축된다. 20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에움길’을 보는 기분도 이와 비슷하다. 웃음꽃이 핀 할머니들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나지만 마음 한 구석은 무겁다. 역사의 세월이 긁어간 아픈 역사의 자국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일상을 담은 이 영화가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에움길’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왁자지껄했던 시절을 담았다. 연출한 이승현 감독이 할머니들의 공동생활공간인 ‘나눔의 집’에서 받은 1600개의 비디오 테이프와 CD를 토대로 제작했다. 할머니들의 다양한 삶이 담긴 기록물이다. 2017년 4월부터 9월까지 한 추가 촬영과 인터뷰를 더해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특별한 줄거리가 있지는 않다. 옛 비디오 화면도 어딘가 투박하다. 그럼에도 눈을 떼기 어려운 건 할머니들의 굴곡진 삶 중간중간 펼쳐진 행복의 기억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옥선 할머니의 내레이션까지 더해져 차분하게 전달된다.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을 다시 만나는 반가움도 있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총 30명이다.

문필기 할머니가 종이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그 뒤 의자에 앉아있던 어느 할머니가 종이를 파리채로 내려친다. “아이고 참 나” “파리 잡잖아” “아니 파리를 잡으면 어떡해 물칠 해놨는데...” 등의 대화가 오간다. 월드컵이 한창일 때는 할머니들은 붉은 악마로 변신한다.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TV 앞에서 응원봉을 잡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한국을 응원한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꽃구경을 하러 가고 때로는 선글라스를 낀 할머니들에게 평범한 노년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영상 속 장면의 시기나 할머니들이 어디에 방문했는지는 추측으로만 알 수 있다. 화면에 비춰지는 할머니들의 모습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이유다.

할머니들의 일상이 즐겁게만 비치진 않는다. 할머니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끔찍한 기억을 꺼낸다. 할머니들을 외면하려고 하는 공권력의 불의한 태도, 일본의 사죄와 법적 배상을 받지 못하고 한 명씩 세상을 떠나는 할머니들을 보면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다. 영화 제목인 멀리 둘러 간다는 에움길처럼 할머니들은 힘겨운 길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몰라서 불안하다. 이걸 해결 짓지 못해서”라는 어느 할머니의 외침이 머릿속을 쉽게 떠나가지 않는다. 전체 관람가. 7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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