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진 변호사
박수진 변호사

20대는 대체로 진보적인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세계적인 통념이다. 세계적인 정치적 사건이었던 프랑스의 68혁명과 미국의 반전운동은 모두 20대 이하인 학생이 주체였다. 학생운동이 현실정치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한 축이었던 한국 정치사를 통해서도 이런 사실은 쉽게 확인된다. 4.19와 6.10 항쟁의 시작 역시 학생이었다. 그런데 최근 문재인 정부에 대한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급격히 빠지면서 20대 남성이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떠올랐다. 언론은 앞 다투어 20대 남성의 보수화를 거론하고 나름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

최근 시사주간지 ‘시사인’은 20대 남성을 둘러싼 억측과 풍문의 진상을 규명해보고자 대규모 설문조사를 했다. 208개에 이르는 질문 항목 중에 20대 남성이 나머지 연령대와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젠더 관련 항목들이다. 그 중에서 필자가 특별히 주목한 것은 여성의 현실에 대한 인식은 20대 남성과 나머지 연령대의 남성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남성의 현실에 대한 인식은 큰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예컨대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는가?”, “여성이 취업에서 차별받는가?”, “여성이 승진에서 차별받는가” 등의 항목에 대해서 남성들은 연령대에 관계없이 여성 응답자보다 여성 차별이 심각하지 않다고 인식한다. 그런데 정부의 양성평등 정책,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에서 20대 남성은 다른 연령대 남성에 비해 매우 부정적이다. 나아가 “남성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는 68.7%가 동의했고, “여성에 대한 차별은 심하지 않다”가 60.8%에 달한다. 이런 조사 결과만 보면 20대 남성이 적어도 여성문제에 대해서는 훨씬 보수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결론 내리기에는 뭔가 석연찮다. 적어도 내가 일상에서 만난 다양한 20대 남성은 기성세대 남성에 비해 전혀 가부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는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이런 가설은 어떤가. 한국 남성은 연령대와 상관없이 가부장적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다면 연령대가 높을수록 가부장적일 것이다. 과거로 갈수록 여성주의에 대한 사회적 수용은 미미했으니까. 그럼에도 기성세대가 여성주의에 대한 반감이 크지 않은 것은 그들 세대에게 그들 세대의 여성은 현실적인 위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비록 실질적인 삶은 마초적일 지라도 공적으로는 여성주의에 대한 옹호의 제스처를 취하는 것까지 가능했다. 지금도 여전히 기성세대 남성들은 가부장적이고 반여성적이지만 굳이 드러내지 않고 있을 뿐이다. 반면 20대 남성은 기성세대에 비해 사회화 과정에서 여성인권에 대한 교육을 더 많이 받았다. 이들이 성장하던 시기에 여성주의는 사회적으로 점차 확산됐다. 따라서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도 기성세대 보다 진보적이다. 적어도 이 세대는 주부 아닌 직장 여성을 배우자의 기준으로 공유한다. 여성을 직장 내 경쟁자로 생각하는 것도 역설적으로 차별 없는 인정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한국 역사상 가장 예민하고 강한 여성주의 의식을 가진 20대 여성들과 마주보면서 여성들의 문제제기를 최전방에서 받아야 하는 처지이다. 요컨대 이들은 기성세대에 비해 덜 가부장적이지만 훨씬 여성주의적인 같은 세대의 여성들과 사회적 인정투쟁을 벌여야 한다.

20대 남성은 기성세대 남성이 행사했던 가부장 권력에 대한 부채상환을 자신의 것처럼 요구받고 있다며 부당함을 느낄 수 있다. 20대 여성이 마치 기성세대 여성의 피해를 자신의 것처럼 여긴다며 과도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여기까지가 필자가 20대 남성을 최대한 호의적으로 이해하는 한계이다. 물론 이런 감정은 이해할 순 있어도 용납하긴 어렵다. 최소한 20대 남성이 성평등의 가치에 기성세대보다 더 전폭적으로 동의한다면, 정작 문제 삼아야할 것은 문제제기를 하는 여성들의 예민한 태도가 아니라 거기에 무심하게 대응하는 기성세대 남성의 여전한 가부장적 의식이어야 한다. 그 간단한 발상의 전환이 안 되고 반페미니즘에 열을 올리는 것은 아버지 세대가 누리던 가부장적 권리와 작별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여성보다 남성이 유리한 사회구조가 공고한데도 남성차별이 심각하다고 느끼는 것은 가부장적 권리의 상실에 대한 일종의 피해의식이니까. 20대 남성이 이런 피해의식을 느끼는 것은 현재 한국 사회 젠더 갈등의 구조 탓이 크다. 20대 여성을 주축으로 한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여성들의 권리 주장이 그간의 공고한 가부장적 구조를 두드리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여성주의의 문제설정은 20대 남성이 아니라 한국의 남성이다. 이 배치에서 20대 남성들이 취해야 할 바람직한 정치적 입장은 여성주의와 연대해서 가부장적 권리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권위주의 기득권 구조를 개선하는 주체로 나서는 것 아닐까. 싸워야 할 것은 20대 여성이 아니라 20대 남성 보수화 프레임에 내재된 ‘20대 남성에게 젠더갈등의 부담 전가하기’같은 기성세대의 몰염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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