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조영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2018년 1월 이후 한반도는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다.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두 차례의 북미회담. 한반도에서 종전이 선언되고 평화협정이 체결되기를 바라는 기대가 무르익었다. 분단 이래 최초로 남북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났고, 세계사적으로 최초로 북미의 정상이 한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실질적인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군사적 합의가 2018년 9월 이루어졌다. 2019년 2월 두 번째 북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더 큰 진전이 이루어지길 기대했으나 회담은 큰 성과 없이 끝이 났고, 아직까지 남북관계, 북미관계는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노력이 2018년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는 남아 있다.

지난 1년 반 동안 여성들은 그동안 단절되었던 남북한 여성들 간의 교류를 재개하기 위해 애썼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과정에서 성평등이 실현될 수 있도록 여러 노력들을 도모해왔다. 작년 9월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민간단체 중심의 여러 행사들에 남북한 여성이 참여하여 앞으로의 남북여성 교류를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와 번영을 위한 여성 선언’을 통해 남북여성교류의 정례화와 남북여성협력을 통한 남북여성의 삶의 질 개선을 요구했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해 대북제재를 신속히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 그 외에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성인지적 개입을 위한 공론의 장을 다양하게 마련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관련한 여성들의 노력은 분단이 사회구성원의 위치와 조건에 따라 다르게 경험된다는 인식과 앞으로의 평화 과정이 한반도 전역에서 성평등을 실현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고민에서 출발한다. 특히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남북한 사회 내에 존재하는 성별 격차, 남북한 사회 간에 존재하는 격차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남북한 사회 각각에서는 성별 격차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고, 남북한 간의 젠더 이슈에 대한 인식의 간극도 적지 않다. 그리고 대북 제재 하에서 북한 여성들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위한 대화와 접촉은 북한 여성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과도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민간 차원에서는 최초로 방북을 하고, 남북관계가 경색된 국면에서도 여성들 간의 만남이 성사되었던 역사적 경험은 지금 현재 한반도 정세에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여성들의 지속적인 만남은 그동안 축적해 온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의 국면을 타개하고, 진전된 논의를 위해서는 남북한 여성 간의 대화가 지속되어야 한다. 지금 당장 남북여성 교류를 추진하기 힘들다면 국제사회의 장에서 교류와 협력을 추진하거나 성평등 관련 국제적 의제를 함께 논의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예를 들어, 유엔안보리 1325호 결의안은 한반도 평화와 매우 밀접한 의제다.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여성·평화·안보 의제는 한반도 성평등 실현에서 중요한 과제이자 목표가 될 수 있다. 남한은 이미 2기 국가행동계획을 수립한 경험이 있고,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어떻게 성평등 의제를 포함·현실화시켜나갈 것인가를 남북한이 함께 논의해 간다면 성평등한 한반도의 평화를 실현시켜나가는 토대를 만들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그 외에도 현재의 북한 상황을 고려하여 북한 여성의 건강지원 사업 등 대북제재 하에서도 추진할 수 있는 인도적 사업을 여성의 입장에서 발굴하고 구체화해가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2018년 평화와 발전에 관한 스톡홀름 포럼에서 보고된 바에 따르면, 여성이 참여한 평화협정의 경우 체결 후 10년 간 현저하게 높은 실행률을 보였다고 한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과정에 대한 성인지적 개입은 성평등의 실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한 시작이 될 수 있다. 과거보다 더 진전된 교류와 만남, 논의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준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남북한 여성 간의 만남을 준비하는 것과 함께 남북한 여성의 삶을 평등하게 꾸려나가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마련하는 의제를 발굴하고 개입하는 작업들에 대한 지혜와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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