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만 교수 10주기 추모 학술회의
북한전문가로 노무현 정부 초대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스승 와다 하루키 도쿄대 교수
“서 교수 논문, 고전적 가치 잃지 않아”

3일 서울 삼청동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대회의실에서 서동만 교수 10주기 추모 학술회의 ‘북한 연구의 마음’이 열려 와다 하루끼 토오꼬오대학교 명예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3일 서울 삼청동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대회의실에서 서동만 교수 10주기 추모 학술회의 ‘북한 연구의 마음’이 열려 와다 하루키 도쿄대학교 명예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동만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 나온 지 2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의 연구는 고전적 가치를 잃지 않았습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3일 서울 삼청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열린 고 서동만 상지대 교수의 10주기를 추모하는 학술대회 ‘북한 연구의 마음’에서 북한 전문가로 활약한 서 교수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서 교수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거쳐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이후 상지대 교수, 노무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분과 위원을 거친 뒤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을 지냈다. 국정원 개혁에 나섰지만 내부 반발로 부임 10개월 만에 그만뒀다. 2009년 6월 4일 53세에 폐암으로 별세했다.

와다 교수는 '초기 북조선사 연구에 있어 서동만 연구의 의의’ 발표에서 “서동만은 나의 유학생 1호였다”며 “나 자신도 막 연구를 했을 무렵이었기 때문에 나와 서동만이 공동으로 북한사 연구를 시작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3일 서울 삼청동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대회의실에서 열린 서동만 교수 10주기 추모 학술회의 '북한 연구의 마음'에서 토론자와 내빈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3일 서울 삼청동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대회의실에서 열린 서동만 교수 10주기 추모 학술회의 '북한 연구의 마음'에서 토론자와 내빈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 교수가 1995년 박사 학위를 받은 논문 ‘북한 사회주의체제의 성립 1945-1961’은 북한사 연구의 토대를 마련한 큰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검증된 방법론으로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성립을 명확히 규명했다. 북한의 공식 문헌과 노동신문 등 문서를 꼼꼼하게 읽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쓴 글이었다.

와다 교수는 “서동만의 논문은 제출 직후부터 한국의 북한 연구자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졌고 초기 북한사에 관한 한국 최초의 학문적 연구로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1998년 나는 북한이 ‘유격대국가’에서 ‘정규군국가’로 전환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한국 동료 연구자들은 반신반의했다. 이때 유일하게 내 생각에 동의한 사람이 토론자였던 서동만이었다”고 했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SSK남북한마음통합연구단장은 “북한 연구하는 분들은 전공이나 학교나 상관없이 공부할 때 입문서가 된 게 서 교수의 책이었다.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저를 비롯한 많은 후배 북한학 연구자들이 서동만 선배가 일본에서 하나하나 모았던 자료를 가지고 공부할 수 있었다. 늘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북한 연구의 새로운 접근과 외교안보정책에 개혁적으로 접근 했던 게 기억난다”고 했다.

사회를 맡은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와 토론에 참석한 최완규 신한대학교 탈분단경계문화연구원장, 백학순 세종연구소장, 최대석 이화여대 부총장,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김갑식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 안경모 국방대학교 교수는 북한 연구에 온 힘을 쏟은 서 교수의 열정을 기렸다.

서 교수의 부인인 김진영 연세대 교수는 “감격스러운 하루였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이렇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정말 애통하고도 아름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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