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남학생들 여혐 언어
뜻도 모르고 친구친구·교사·엄마에게
외톨이 될까봐 가해 합휴

 

초등학교 학생들이 콩주머니 던지기 경기를 하고 있다.(사진은 해당 기사와 관련없음)
초등학교 학생들이 콩주머니 던지기 경기를 하고 있다.(사진은 해당 기사와 관련없음) / 뉴시스

“선생님, 제 조카가 초등학교 1학년인데요, 남자애가 조카한테 ‘보이루~’라고 했대요. 조카가 저한테 보이루가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는데,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아득하더라고요”

제가 지금까지 받은 질문들 중에 단연코 가장 답하기 어려웠던 질문입니다. 왈칵 눈물이 나려고 해 참느라 힘들었어요.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에게 보이루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보이루는 유명 유튜버 보겸이 자신의 이름 앞자와 안녕이라는 의미의 하이루를 합해 만들어낸 인사말입니다. 그러나 처음 의미와는 달리 보이루에 여성 성기를 지칭하는 비속어를 섞어 쓰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여성혐오 표현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여자 아이에게 보이루의 의미와 쓰임에 대해 설명을 해줘야 하는 걸까요? 보이루라고 인사했던 남자 아이도 보이루가 여성혐오 표현으로 변질되었다는 사실을 알면서 쓰지는 않았을 테고요. 하지만 이 사례를 통해 학교에서 여성혐오 표현이 얼마나 만연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이루뿐 아니라 ‘기모띠’, ‘야마테’, ‘레알 밥도둑’, ‘니 얼굴 실화냐’ 등의 말을 여자 친구들과 여선생님에게 일상적으로 하고 있고, 상대방의 엄마뿐 아니라 본인의 엄마에게도 ‘느금마’, ‘느큼(느금마 김치녀)’, ‘엠창’ 등의 패드립도 서슴지 않습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서 놀랍지도 않다고들 합니다. 청소년들이 여성혐오 표현을 일상적으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017년 서울시교육청이 중3 학생 258명(여성 53명, 남성 2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비하표현, 패드립을 사용하는 이유는 ‘친구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기 때문에 48.9%’, ‘별 뜻 없이 습관이 되어서 40.1%’,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표현이기 때문에 14.1%’,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 같아서 9.9%’, ‘실제로 비하하기 위해서 7.3%’ 였습니다(중복응답).

‘친구들이 쓰니까’, ‘유행이니까’, ‘별 뜻 없이’가 대부분의 이유를 차지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는 청소년들이 이 표현들을 재미, 농담, 문화로 간주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성희롱, 성폭력이 명백한 이 표현들을 듣는 여성들도 재밌는 장난이나 농담이라고 생각할까요? 왜 혐오표현의 내용도, 대상도 여성인 걸까요? 남학생에게 욕을 할 때 ‘미친놈’이 아니라 ‘미친년’이라고 하잖아요. 여기에는 여성보다 남성이 우월하다는 믿음에 기반해, 여성을 비하하고 성적으로 모욕하는 것을 통해 또래들에게 ‘남성다움’을 인정받는 잘못된 남성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많은 남학생들이 ‘또래 친구들한테 인정받으려고’, ‘튀고 싶어서’ 재미와 농담이라고 주장하며 성폭력 가해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남학생들이 외톨이가 될까봐, 괴롭힘을 당할까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동참하거나 묵인하고 있을 겁니다. 나의 친구, 선생님, 어머니, 그리고 친구의 어머니를 여자라는 이유로 성적으로 모욕하고 비하하는 것이 정말 즐겁고 재미있지 않을 테니까요. 이렇게 얻은 남자라는 우월감과 또래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소속감이 자신감과 자기애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고요.

가수 정준영과 승리의 대화방에서 여성혐오로 연결된 사람들은 성폭력의 수위를 경쟁적으로 높여갔습니다. 이들은 ‘친구’가 아닙니다. 서로의 몸, 마음, 미래 그리고 주변인들을 파괴할 뿐이었죠. 우리 주위에는 여성/여성성은 열등하고 남성/남성성은 우월하다는 믿음과, 여성 혐오를 통해 남성성을 인정받는 문화를 비판하고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친구, 선생님, 어머니를 모욕하면서 센척할수록 외면하고, 왜곡된 남성성에 들어맞지 않는 모습을 드러낼수록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바로 여러분의 친구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그런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만연한 여성 혐오에 당장은 힘들어 보이겠지만, 지금까지 3회에 걸쳐 살펴보았듯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폭력적인 성별이분법과 성별 권력 관계를 성찰하고 있잖아요. 이분화된 성역할, 기질, 능력, 그리고 그것에 부여된 우월과 열등은 만들어지고 강제된 것에 불과하니까요. 셀 수 없이 많은 차이가 우월과 열등이 아닌 다양성과 개성으로 존중받는 세상은 멀게 느껴지긴 하지만, 생각만 해도 신이 납니다. 먼 길 지치지 않도록 함께 손잡고, 신나는 상상을 차곡차곡 현실로 바꾸어나가요.

김고연주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젠더자문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고연주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젠더자문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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