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여우들의 파티> 관람 후 ‘취중방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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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의 그녀들. 좌로부터 심영희, 정양진, 윤진영. <사진·민원기 기자>
진영:왜 여성들의 연극은 저렇게 말이 많은 거야. 왜 저렇게 수다스러워야 돼?
양진:남자들이 왜곡할 수밖에 없어.
진영:그런데 여자란 자기 감정을 드러내고 솔직하게 마음을 나눠야만 정서가 순화되잖아. 그저 수다스럽게 느껴지는 거라 생각해. 참, 극중에 하이틴 로맨스 즐겨 읽는 애 있잖아. 양진이가 딱 그래. 성에 대해서 굉장히 개방적이고 탐구하려는 정신이 엄청 강했지.
양진:내가 그랬냐? 예를 들어봐라. 사실 영희랑 나는 이제 성을 무의미하게 봐. 이론적 지식이 많으니까 실전에 들어가면 상당히 두려워 하구. 진영이야말로 알면 더 깜짝 놀랠 걸. 소개팅에 나가서 바로 키스를 하고 온 거야. (부러운 듯 탄성을 지른다.)
진영:하하하. 그게 왜?
양진:난 말은 그렇게 할 수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진 못해. 아니 아직까진 키스 충동을 느껴본 적이 없어. 모르는 남자랑 키스를 하거나 그걸 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영희:난 아닌데. 넌 비정상이네. 그런 생각하는 건 자연스런 거야.
진영:그게 어디 판단만으로 되는 거니? 끌리는 거지. (눈치를 보며) 근데 야, 너 이런 거 남자친구가 들어도 되냐?
영희:솔직히 요즘 대학생들이 연극처럼 다 그런 생각을 한다면 우리가 너무 고리타분하게 살았던 거 아냐. 그게 대세라면 나도 20대 마지막에 불꽃을 태우고 싶다 이거지. (다들 뒤집어진다.)
진영:그래, 현실에 참여해. 이제 참여정분데… 대학 땐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늘 고민했잖아. 난 갑갑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그게 이 바닥까지 오는 통과의례였다고 해도 답답한 정체성을 찾는 건 힘들었어.
양진:지금은 나름대로 소속감이라는 게 있잖아. 9시면 출근하고, 근데 대학은 나를 틀어 매어줄 그런 곳이 못 됐어. 그런 게 싫었어.
영희:난 대학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꼭 뭘 안 해도 되고 뭔가에 쫓기지 않아도 되고.
진영:“난 매력이 너무 많아. 그런데 그게 천박함과 혼돈이 돼. 그런 내 가치를 흔들리고 싶지 않아.” 그 대사 맞는지 모르겠어. 늘 아랫도리에 관심 있는 남자들의 생각에 얽매일 필요가 있냐? 나보고도 회사 언니들이 회사 안에서 말 나오지 않을까 조심하라는데 걱정하진 않아. 이미 25, 6살 때부터 겪어 온 건데. 여전히 역겨운 문제지.
영희:난 “대학 졸업을 하면 이렇게 돼 있을 거야.” 그 대사. 실제 겪어보면 무의미한데도 또 이제 30대가 된다니까 30대에 대한 준비를 해야 되지 않을까 걱정돼.
진영:나는 길게 뭘 위한다는 건 싫더라. 그냥 짧게 짧게, 당장 서른을 바라봐야지.
영희:어제 애 낳은 친구를 만났는데 낳기 전엔 무섭지만 애를 낳으면 또 달라진대.
진영:그래, 그걸 한번 경험해 보고 싶어. (야유를 보내는 영희와 양진)
양진:난 뭔가 딱 떠오르는 대사가 없었어. 공감한 건 다들 성공지상주의에 찌들려 가지고 사는구나 하는 거. 마지막에 사감 선생님한테 “나는 뭔가 돼 있을 거예요.”라고 하잖아. 한 게 없으니까 미래를 얘기하는 거야. 늘 남들과 비교하면서. 고등학교 때 학교에 성적표가 붙으면 제일 먼저 달려가 친구와 내 성적을 비교해 봤어. 말로는 우리 열심히 하자고 해 놓고선 난 항상 그 친구보다 성적이 좋아야 했거든.
진영:여자는 항상 자기에게 위협적인 존재와 가까운 건가.
양진:그런데 대학 들어가면서부터는 남과 비교하는 게 아니라 내 자신과 비교하는 거지. 난 동창회가 너무 싫거든. 아이러브스쿨에 들어가지도 않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어색함. 그래도 반갑게 오버를 한다, 오랜만이라구.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면서 쟤 옛날에는 이랬는데 지금은 이 정도구나 비교나 하지.
진영:남들과 비교해서 자기가 어느 정도에 와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거야.
양진:근데 동창회 자리에서는 남자들이 더 심해. 얘기는 안 하지만 그 스파클이~장난이 아니잖아. ‘너 멋져 보인다. 건강해 보인다.’ 이 한마디만 툭 던지고 바로 술을 마시지. 그걸로 끝이야. 하지만 집에 들어가서 생각한다.
영희:여자애들 대화 중에 학벌 얘기 굉장히 많이 나왔잖아. 대한민국 사회에서 학벌을 빼놓곤 대화가 안되지? 남들 공부할 때 걘 뭐 했냐는 거지. 하나를 볼 때 열을 안다는 생각이야.
양진:레벨이란 연고대 이상이 아니야. 어느 정도 말은 통해야지. 며칠 전에 전동칫솔을 샀는데 그게 전자기 유도의 원리로 움직이는 거래. 전자기 유도 알지? 학벌을 따지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어. 대화가 되기 때문이지.
진영: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고단하게 노력했을 과정을 대단하게 봐.
양진:아르바이트건 직장을 들어가건 어느 집단에서건 항상 난 막내였는데 어느새 모임에서 날 보고 시집갈 나이라고 하잖아. 스물아홉, 서른이 되는 게 너무 싫어.
진영:스물아홉은 스물아홉대로 서른은 서른대로 그 나이에만 느낄 수 있는 게 있어 좋아.
양진:그래서 요즘 어떻게 하면 화장을 안한 것처럼 깨끗하게 피부 표현을 할까 생각해. 아무리 화장을 공들여 찍어도 5년 전 사진과 비교하면 화장을 안 한 그 때가 너무 이쁜 거야. 과거에 집착하는 건 아닌데 다가올 나이에 대해 두려움이 있어. 스물아홉 마지막 날에는 정말 멋지게 ‘셀러브레잇’하던가,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데 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보낼 거야.
현주 기자soon@wome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