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함 주는 언동
모두 성희롱은 아냐
형사범죄화 이전에
오·남용 막으려면
사회적 합의부터

박찬성 변호사. ⓒ본인 제공
박찬성 변호사. ⓒ본인 제공

 

조만간 불혹의 나이를 맞게 되건만, 필자는 아직 미혼이다. 몇 년 전까지도 ‘혹시 결혼은 하셨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결혼은 하셨지요?’라는 내용으로 금세 질문이 바뀌더니, 이제는 ‘아이는 몇이나 있으세요?’라고도 묻는다. 멋쩍은 듯 웃으며 ‘아이고, 아직 제가 결혼을 안 해서’라고 얼버무리긴 하지만, 속내야 편할 리가 만무하다. 솔직히 불쾌하다. 속으로야 ‘금자 씨’가 되고플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 거 왜 물어. 너나 잘 사세요.’)

왜 이런 시시한 소리나 한가하게 늘어놓느냐고? 어느 기관에서 자문 요청을 받았다. 성희롱 사안으로 조사된 내용에 관해서 의견을 달라고 했다. 그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누나 올해 나이가 ○○세 아니세요? 어 그러면, 누나도 결혼적령기시네요!’ 다른 맥락이 있던 것도 아니고 달랑 이 뿐이었다. 조사자의 판단은? 성희롱이란다. 경악을 금할 수가 없어서 이게 왜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는지를 잔뜩 설명해서 회신했다.

저 말을 들은 당사자로서는 기분이 좋지 않았을 수 있다. 누군가가 필자에게 ‘형, 올해 서른아홉이에요? 어우, 결혼적령기 훨씬 지나셨네!’ 운운하고 있다면 필자도 속으로 부글부글 했을 터. 한데, 주관적 불쾌감이 성적 굴욕감이나 성적 모욕감과 곧장 등치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설령 누군가가 성적 굴욕감을 느꼈더라도 그 자체만을 가지고서 성희롱이 논리필연적으로 곧바로 성립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업무상 부적절한 발언임은 인정하면서도 성적 언동은 아니라고 보아서 성희롱의 성립을 부정하는 경우가 때때로 있다.

저 발언을 했던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만일 저 말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최종적으로 인정되어 가해자로서 조치를 받았다면? 필자가 그 당사자였다면 아마도 죽을 때까지도 억울한 마음을 다 풀지 못했을 것 같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가 객관성과 합리성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호두과자가 없을 때 그 대신 호두모양과자를 먹더라도 세상에는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지만, 성희롱이 아닌데 ‘성희롱 모양’이라고 섣불리 단정 지어 버린다면 반드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성희롱을 규제하는 까닭은 1차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에 있지만, 부차적으로는 가해자의 행위 태도와 인식을 개선함으로써 우리 사회 전반을 보다 나은 곳으로 변모시켜 나가고자 하는 데에도 있다. 태도와 인식의 개선은 잘못에 대한 인정과 뉘우침을 전제한다.

그런데 성희롱이 아닌 것 또는 성희롱으로 보기에 모호한 점이 있는 언동을 일단 성희롱으로 단정해 버리고는 그 잘못을 인정하라고 한다면? 태도와 인식의 개선은커녕, 불신과 혼란이 이어지지는 않을까? 혐오는 어떠한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고, 그 혐오가 잉태되었던 원인에 나름대로는 참작할 만한 사정이 없지는 않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부주의하게도 성희롱 가해자 아닌 어떤 사람을 가해자라고 함부로 낙인찍어 버렸던 것인데, 만일 그 사람이 혐오적인 방식으로 울분을 표출하고 있다면 이러한 경우에도 그 개인에게만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있다고 하기에는 주저되는 점이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고용노동부에서 직장 내 성희롱을 형사범죄화 하는 내용의 정책 제안을 준비한 모양이다. 범죄의 구성요건을 마련할 때에는 사람의 어떤 행위가 처벌대상에 해당하는지를 모든 법 규정 가운데에서도 가장 엄격한 수준에서 명확하게 미리 정의해 두어야 한다. 그 내용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어떤 행위가 범죄인지를 미리 분명하게 알 수 없다면 국가의 형벌권이 자의적으로 오·남용될 가능성을 막을 수 없고, 때때로 누군가는 억울하게 범죄자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른바 ‘막연하기 때문에 무효’라는 법 원칙이 일반적으로 인정된다.

그런데 성희롱은 그 해당 여부 자체가 문제될 수 있는 언동이 굉장히 다양하다. 성희롱 성립 여부가 모호한 경계선 상의 사안도 적지 않다. 과연 이를 깊이 있게 고려해 누가 보더라도 구체적이고도 정확한 판단 요건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 만한 내용으로 성희롱을 정의하는 데에 성공했을까? 솔직히 의심스럽다. 수많은 사건들과 그에 대한 처리 과정상의 실무적 고민들을 현장에서 접하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성희롱을 형사범죄화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제재의 사회적 필요성이 있다고 하여 모든 원칙사항을 세세히 따져보기 전에 형사범죄화부터 하려는 시도는, 이를 통해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클 수도 있음을 지적해 보고자 함이다. 차분하고 냉철한 토론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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