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고한 여성정책연구기관으로 거듭나라.”

개원 20돌을 맞은 한국여성개발원(원장 장하진) 안팎에서 일관되게 나오는 목소리다. 보수적이고 안일했던 정부산하기관에서 국제적으로도 경쟁력 있는 정책연구기관으로 삐걱대며 힘겹게 방향을 돌리는 모습. 스무 살 여성개발원의 오늘이다.

여성개발원은 1983년 여성문제를 전담하는 유일한 정부출연기관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20년 동안 여성개발원은 우리 사회 여성문제를 연구, 법제도 제정과 개정 등에 정책 제언을 해왔다. 더불어 교육과 시범사업 등을 활발히 펼치는 등 여성 역사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정부산하기관이란 한계로 연구 주제와 내용의 보수성, 조직의 관료집단화 같은 문제점이 나오기도 했다. 98년 정부출연기관에 대한 경영혁신 조치 이후 여성개발원은 여성전담 종합기관에서 정책연구기관으로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았고 현재에 이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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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진 원장

연구원 다수가 노장(?), 연구주제 선정도 모호

“1년이란 프로젝트 기간이 너무 길어요. 예산을 내고 사업을 진행하는 전형적인 정부시스템이죠. 시의성이 중요한데 그때그때 정책 제안을 못하는 거죠.”

여성개발원의 한 연구원이 지적하는 개발원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정부출연기관으로 1년 전에 다음 년도 사업 계획을 세우고 1년 동안 한 주제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다보니 시의적인 정책 제안이 이뤄지지 못했다.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여성정책 역시 시급한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대통령의 의지나 정부 방침에 따라 급격히 정책이 도입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여성개발원의 연구 관행은 변화의 속도에 비해 너무 늦다는 게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 부처 실무자들의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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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심의위원회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연구심의위원회는 개발원 안에서 연구 수행을 사전 심의하고 예산을 책정하며 결과에 대한 평가를 맡고 있다. 연구원들은 “50대 이상의 나이 많은 연구원들이 주로 참여하고 심의 기준도 모호하다”며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주제의 연구가 통과되지 못해 비슷한 주제를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연구원은 “하고 싶은 연구는 외부에서 수주해 진행했다”며 “조직이 기본과제를 대충 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성 문제도 제기됐다. 개발원의 한 관계자는 “교육을 담당했던 인력들이 일부 연구 인력으로 전환됐다”며 “교육 인력은 충분히 전문적이지 못해 연구 생산성을 떨어뜨린다”고 밝혔다.

지난 98년 정부출연기관 경영혁신 조치로 개발원은 연구를 제외한 교육 등 사업 활동이 금지됐다. 정책연구기관으로 전환하기 위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부 교육을 담당했던 박사급 인력이 연구 인력으로 전환돼 연구 전문성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시대 변화에 따른 전문성 보강 역시 강조되고 있다. 그동안 여성들의 참여가 저조했던 분야에 대한 개발원 내 전문인력이 부족한 것이다. 정보화 등 시대가 요구하는 분야와 국방 등 여성 참여가 늘어난 분야 등 새롭게 연구 영역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다른 연구기관에 비해 낮은 연봉, 무분별한 임대사업, 구조조정에 따른 노조와 원장의 갈등 등이 지적받고 있다. 특히 우수한 개발원 시설이 여성단체나 여성관련 활동에 쓰이지 않고 단란주점협회 등에 무분별하게 대여되고 있어 비난을 샀다.

98년 연구기관 전환 조치 이후 100% 정부 예산으로 충당됐던 개발원 운영이 외부 연구 수주를 통한 자율적인 운영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 문제다. 또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간 정산한 퇴직금 등이 상당한 채무 부담을 안겨주었다. 자연 개원 때부터 낮았던 연봉을 현실화시키지 못하고, “가진 게 연구 인력과 시설뿐이니 충분하지 않은 외부 연구용역을 대신해 시설 임대사업을 펼칠 수밖에 없다”는 게 개발원 관계자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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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거품 빼고, 전문 연구기관 돼야

여성개발원 역시 20년 역사를 되짚고 한계를 극복하고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더욱이 최초로 공개모집을 통해 임용된 장하진 원장이 개발원에 전문연구기관의 위상을 강조하고 있다.

가장 많이 지적받았던 연구기간의 유연성을 위해 개발원은 올해부터 사업비의 일정비율을 수시과제비로 정했다. 긴급하게 수행해야 할 과제가 있을 경우 사용하기 위함이다. 전문성 확보를 위해 연구 이외의 사업이나 교육 등 부서는 직제에서 없애고 교육과 연구를 겸하던 인력도 완전히 정리했다. 임대사업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에 꾸준히 문제 해결을 요청하는 한편 외부 연구 수주를 확대해 예산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방침이다.

여성단체연합 김기선미 정책부장은 “정부산하기관인 만큼 여성개발원은 보고서 양식의 형식적인 연구가 많았다”며 “문제의 핵심을 짚지 못하고 보수적인 판단을 많이 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책에 대한 세밀한 연구로 실제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많이 제공한다”고 말했다. 전문연구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한 여성개발원의 노력이 조금씩 변화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정책집행 환경을 고려하지 못한 연구, 전문연구기관으로서 상대적으로 많은 행정직 비율, 국제 동향이나 새로운 개념 등에 대한 개발원 내 원활한 소통, 연구원들의 연구 자율성 등이다.

여성개발원 정숙경 박사는 “여성 ‘개발’이라는 말이 더 이상 맞지 않는 시대”라며 “전문연구기관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갖는 게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애경 부장은 “책상 위에서 그치지 않고 정책활용도가 높은 연구물을 내야 한다”며 “국제적으로 알려진 이름에 걸맞은 기관으로 성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원에서 연구원을 지내기도 한 여성부 서명선 대외협력국장은 “연구하는 사람들이 정책이 진행되는 과정을 잘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라며 “시군구 단위에서 집행하는 정책의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해 정책 연구의 현장성을 강조했다.

이화여대 여성학과 이재경 교수는 “여성개발원 20년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여성에 관한 기초 연구와 자료는 충분하지 않다”며 “당장 내년에 필요한 연구도 중요하지만 여성정책연구기관으로서 10년 후 한국 사회 여성이 어떻게 변하고 어떤 연구가 필요한지 예측할 수 있는 기초 자료와 데이터를 축적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선희 기자sonag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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