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스타 노영희의 부엌 찾은
캐나다 셰프 수잔 바르

“세계50대 식당 중 여성 셰프는 4명
서로 존중하는 일터돼야“

“먹방이 아니라
식문화 보여주고 싶다“

한국의 노영희 셰프와 캐나다의 수잔 바르 셰프가 24일 서울 삼성동 노 셰프의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의 노영희 셰프와 캐나다의 수잔 바르 셰프가 24일 서울 삼성동 노 셰프의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가정에서 요리는 여성의 몫이다. 반면 요리사라는 전문직은 남성의 영역이다. 요리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셰프의 성별뿐만이 아니다. ‘미식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세계 50대 최고 식당(W50B)’으로 2018년 선정된 곳 가운데 여성요리사가 이끄는 식당은 단 4개에 불과하다. 칼과 불, 무거운 주방 도구와 식재료가 가득한 식당 주방은 남성의 전유물인 것처럼 이미지화됐다. 여성 셰프는 강인한 체력은 기본이고, 험악한 조직 분위기를 견딜 수 있는 배짱에다 일·가정양립까지 요구받는다.

한식의 품격을 높여온 노영희(57) 셰프의 음식 스튜디오 ‘철든 부엌’에 캐나다 글래드스톤호텔 전속 셰프 등을 역임한 수잔 바르(43) 셰프가 찾아왔다. 수잔은 캐나다의 유명한 셰프이자, 여성세프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영화 ‘부엌의 전사들’의 주인공이다, 주방장의 독불장군 행세와 인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관행이 일상화된 식당 주방 문화에서 여성 셰프들이 일으키는 변화를 담았다. 서울환경영화제 상영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기회에 한국 여성셰프를 꼭 만나보고 싶다는 요청으로 만남이 성사됐다.

노 셰프의 음식 스튜디오 ‘철든부엌’은 벽면을 가득 채운 무채색과 흙빛의 그릇, 텅스텐 조명 아래 원목 식탁으로 품격과 편안함을 함께 선사한다. 한련화와 가우라꽃 활짝 핀 초여름의 야외 베란다 정원을 보면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꽃을 따 식탁을 장식한 노 셰프는 아시아를 처음 방문한 캐나다 셰프에게 게살잣수란을 시작으로 가지말이냉채, 전복찜, 떡갈비, 현미밥과 나물반찬, 약과와 오미자젤리 한식 코스를 순서대로 선보였다. 따뜻하거나 찬 요리 그대로 먹을 수 있고 과하지 않은 분량으로 남기지 않는 새로운 방식과 음식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그릇으로 한식 문화의 변화를 선도했다.

수잔은 캐나다 유명 레스토랑과 호텔의 주방장을 지내면서 지역공동체, 식량안보, 성소수자 권리를 옹호하는 등 사회 현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 캐나다에서 존경받는 셰프 중 한명이다. 토론토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자메이카에서 이민을 왔다.

노영희 셰프는 기자로 음식 코너를 담당하다가 푸드스타일리스트로 변신해 요리도 직접 하고 있다. 그의 한식당 ‘품’은 3년간 미쉐린 1스타를 받았다. 요리를 전공하지 않았고 강인희 선생으로부터 5년간 반가 음식을 배웠지만 한식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았고 밥상문화에 변화를 줄 수 있었다.

한국의 노영희 셰프와 캐나다의 수잔 바르 셰프가 24일 서울 삼성동 노 셰프의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의 노영희 셰프와 캐나다의 수잔 바르 셰프가 24일 서울 삼성동 노 셰프의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유명 식당에서 일하던 수잔 셰프가 토론토에서 자기 소유의 식당을 처음으로 연 것은 4년 전이다. 명성이 있다고 해서 선뜻 도전하기란 쉽지 않았다. “북미 지역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데는 권력과 부가 좌우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도전했던 것은 흑인인데다 성에서 오는 역할에 대한 차별이 컸고 다른 주방 문화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주방장으로 일했던 그의 아버지는 딸이 셰프가 되겠다고 했을 때부터 걱정이 앞섰다. “아빠한테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셰프가 됐다고 말했을 때 어찌나 걱정을 하셨는지 학교에 전화해서 ‘내 딸이 셰프가 될 수 있겠느냐’며 물어볼 정도였다”고 했다.

“주방에서 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일한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나의 식당 주방만큼은 소리 지를 수 없게, 밀치는 행위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성차별 없이 공평하게 역할을 분배합니다. 안전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라고 팀원들에게 말합니다.”

노 셰프는 푸드스타일리스트로 독자적으로 일하다가 음식점을 운영해왔기 때문에 성차별 문제에서는 자유로운 특수한 편이라고 했다. 안전에 관해서 엄하게 하고 나머지는 자율에 맡긴다고 했다. “영화 ‘더 셰프’에는 주방에서 엄청나게 소리 지르는 셰프의 모습이 나온다. 반면 여성 셰프들을 중심으로 일하는 공간은 확실히 다르다”고 덧붙였다.

“중요한건 여성의 비율 이전에, 구성원들이 서로 존중하는 주방문화가 우선돼야 하는 것 같다”고 수잔 셰프는 강조했다.

엄마로서의 수잔은 어땠을까. 임신한 상태로 일하다가 아기를 낳을 뻔 했고, 결국 식당을 닫았다. 출산 후 주방으로 돌아왔으나 첫 아이라 각별한 마음에 한달 간 아이를 등에 업은 채로 요리를 한 적도 있다. 가족들도 적극적으로 아이를 돌봐준 덕분에 1년 반 동안 키우다가 어린이집에 보냈다. 지금은 두 번째 식당 개점을 앞두고 있다.

수잔 셰프는 ‘요리업계 차세대 여성리더 교육프로그램’을 4년째 운영하고 있다. 정부나 단체의 위탁 사업이 아니다. “내 주방에서 여성 후배들의 성장 발판을 마련해주기 위해 혼자서 시작한 일”이라고 소개했다. 난민과 이민자가 늘고 있어 나이를 확대할 생각이다. 그러나 한계도 토로했다. “여러 사회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계속 하지만 실행 단계까지 나아가기가 어려워 답답함과 한계를 느낀다”고 했다.

노 셰프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후원해달라는 복지재단의 광고를 보고 사람들을 모아서 요리를 가르쳐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돕고 싶다고 몇 번 제안했는데 연락이 없었어요. 1991년부터 푸드스타일링을 시작했고 이제는 사회에 되돌려줄 때가 됐다고 생각하는데 같이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실행단계로 가는데 혼자서 하기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셰프들은 TV요리프로그램에 대해 어떻게 볼지 궁금했다. 노 셰프는 콘텐츠의 빈곤을 지적했다. “먹방(먹는방송)이나 예능화된 프로그램이 게 대부분이다. 게걸스럽게, 많이 먹는 모습을 중요하게 비춘다. 집에서도 우리는 시켜먹고 1인 가구가 늘면서 혼자 먹는다. 어렸을 때 밥상머리 교육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제는 문화적인 게 가미되면 좋겠다. 제대로 잘 차려서 먹는 밥상 문화를 보여주는 프로그램 하나쯤 만들었으면 한다”고 제시했다.

노 셰프의 얘기를 귀담아 듣던 수잔 셰프는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을 봤느냐”면서 “이 공간을 무대로 당신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찍고 싶다”고 했다. 한식문화의 새 지평을 열어온 노 셰프에 대한 다큐영화 주인공의 찬사였다.

다큐 영화 ‘부엌의 전사들’의 주인공 중 한명인 캐나다 수잔 바르 셰프 ⓒ‘부엌의 전사들’의 한 장면
다큐 영화 ‘부엌의 전사들’의 주인공 중 한명인 캐나다 수잔 바르 셰프 ⓒ‘부엌의 전사들’의 한 장면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상영된 ‘부엌의 전사들’ (마야 갈루스, 2018)

2004년 처음 시작한 서울환경영화제는 영화를 통해 환경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고 미래를 위한 대안과 실천을 논의하는 페스티벌로, 전 세계의 시급한 환경 문제를 다룬 국내외 우수 작품들을 소개해왔다. 인권을 다룬 영화의 비중도 늘고 있다.

‘부엌의 전사들’(원제 The Heat: A Kitchen (R)evolution)은 식당 주방 문화의 규칙을 다시 쓰는 여성 셰프들의 이야기다. 기존의 주방은 영역 구분이 엄격하고 유명 주방장의 익숙한 독불장군 행세에, 서열이 낮은 사람은 부당한 대우를 감내하는 일이 흔했다. 이같은 관행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이같은 노동환경을 힘들어 한다. 여성들이 주방의 지휘권을 잡기 시작하면서 주방 문화도 변화한다.

아름다운 요리가 펼쳐지는 셰프 영화

더 셰프 (감독 존 웰스, 2015)

미쉐린 스타를 향한 도전을 그린 영화. 미쉐린 2스타라는 명예와 부를 거머쥔 프랑스 최고 셰프 아담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마지막 미슐랭 3스타에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아담은 각 분야 최고의 셰프들을 모아 경쟁을 시작한다. 주방에 감도는 뜨거운 열기와 압박감을 볼 수 있다.

셰프의 테이블  (제작 데이빗 겔브, 2015~2019)

넷플릭스에서 2015년 4월부터 2019년 2월까지 방영한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시즌 6까지 나왔다. 국제적 명성의 유명 스타 셰프들을 조명한다. 이들이 재창조하는 고급 요리와 주방 그리고 요리에 대한 독특한 생각과 철학을 들려준다.

사랑의 레시피  (감독 스콧 힉스, 2007)

오직 1등를 위해 달려온 한 여성 요리사가 요리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담은 로맨틱 코미디다. 하지만 언니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서 9살짜리 조카를 떠맡게 되고 자유롭고 낙천적인 성격의 부주방장 닉을 만나게 되면서 칼같이 정확했던 일상이 변화한다.

엘리제궁의 요리사 (감독 크리스티앙 벵상, 2015)

프랑스 여성 셰프 라보리의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 송로버섯 농장을 운영하던 평범한 중년 여성 라보리가 우연히 프랑스 대통령의 개인 셰프 일을 제안 받아 관저인 엘리제궁에 입성하게 된다. 엘리제공의 유일한 여성 셰프와 화려한 정통 요리와 따뜻한 홈쿠킹을 볼 수 있다.

노영희 셰프 요리 ⓒ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노영희 셰프의 한식 코스요리 중 가지말이냉채, 전복찜, 현미밥과 나물 반찬 ⓒ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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