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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향미>

직업적 성취도 어찌 보면 결혼과 같은 것일지 모른다. ‘두 남녀는 결혼하여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대요’하는 식의 결혼 이야기가 허구이듯이, 직업적 성취도 마찬가지. 원하던 직업을 가지게 되는 때부터, 혹은 어느 수준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부터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된다. 그것이 자기와의 싸움이든 외적인 조건들과의 싸움이든 말이다. 여자들의 경우 더 심한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육아와 가사, 그리고 성차별적인 노동관행과 불공평한 처우라는 힘든 고비를 모두 넘겼다고 치자. 아, 이제 한숨 좀 돌리고 일 좀 제대로 해볼까나… 하고 주위를 돌아보며 여유를 피워보려는 찰나, 또 하나의 복병이 도사리고 있으니, 바로 늙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노화의 신호는 우선 신체적인 것에서부터 온다. 읽어야 할 것은 점점 많아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눈이 침침해진다든지, 기억해야 할 것은 더 많아지는데 기억력이 없어진다든지, 오는 감기마다 걸려 고생하는 나를 보고 “연세가 있으셔서...”하며 놀리던 친구가 자신도 심한 감기몸살에 걸려 직장에도 못 가고 모기소리 만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을 때…. 참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할 일은 많고 갈 길은 먼데 이렇게 늙어야 하다니.

하지만 다행히도 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인생은 길고 긴 여정이다. 막다른 골목인가 하면 모퉁이를 돌아 또 다른 길이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여정이다. 이제 막 나이 드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한 당신은 인생의 또 하나의 출발점에 서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각종 통계를 보라. 우리에게 남아있는 날이 얼마나 많은지. ‘이 나이에 어떻게...’ 라는 말은 하지 말자. 이 나이니까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설사 당신이 그동안 한 번도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는 경우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여자들의 평균수명이 80살에 가까운 이 시대에 50살에 시작하면 어떻고 60살이면 어떤가. 늦게 시작한 사람일수록 남들이 다 지쳤을 때 더 신나게 일하는 경우를 보았을 것이다. 혹은 제2의 직업을 준비하거나 시작할 수도 있고, 또 다른 경력을 개발해볼 수도 있는 일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일에 대한 느낌과 의지가 아닐까? 이제야 뭘 좀 알 것 같고 뭘 좀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면, 이제부터 일을 좀 더 잘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일하는 것 자체에서 재미를 느낀다면, 노화로 인한 신체적, 기능적 상실과 쇠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성공적으로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골몰히 연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어떻게? 이에 대해 발트스(Baltes) 부부는 흥미있는 전략을 제시한다. 일명 SOC전략으로도 불리는 이 전략은 바로 선택하고 최적화하며 다양한 보상방법을 활용하라는 것이다. 먼저 선택이란 일의 영역을 제한시켜서 우선순위가 높은 영역에 집중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대신 일단 선택한 일에 대해서는 양과 질을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 즉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한 훈련과 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화로 인한 손실을 보충하고 아직 남아있는 능력을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기술적 보상방법을 사용한다. 때로는 목표나 기대를 조정함으로써, 때로는 안경이나 보청기를 사용하여 능력의 손실을 보상해야 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마라토너로서 계속 달리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는 달리기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기 위해 다른 행위를 줄이거나 포기해야 하며(선택), 일상적 리듬을 유지하기 위한 훈련과 다이어트를 계속하며(최적화), 좋은 신발을 고르고 부상에 대비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보상).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루빈스타인은 말년에도 피아노 연주를 계속하기 위해 레퍼토리를 줄이는 대신(선택) 더 많이 연습했으며(최적화), 빠르게 연주해야 하는 소절 앞에서는 일부러 천천히 연주함으로써 청중이 속도감을 두드러지게 느끼도록 연출했다고 한다.

결국 나이와 상관없이 오래, 그리고 성공적으로 일하고 싶은 사람은 선택과 최적화, 그리고 보상을 적절히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이끌어야 하지 않을까? 마치 작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이라는 파트와 각각의 파트가 가지고 있는 고유하고도 다양한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수 있어야만 올바른 순간에 가장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모든 일에 의욕을 부리는 건 한마디로 과욕이다. 우선 몸이 반란을 일으킨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몸과의 대화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 “오늘은 어때? 어디 불편한 덴 없고?”하며 자상하게 관심을 기울이며 달래야 한다. “그 일은 좀 미뤄두고, 나와 좀 놀아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몸의 요구를 묵살하지 말아야 한다.

또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한 내면적 탐색과정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필요하다. 인생에서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의 장점밖에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나라고 나 자신의 많고 많은 단점들을 고쳐보려는 야무진 꿈을 왜 가져보지 않았으랴. 하지만 이제는 설사 노력한다 해도 낮은 역량밖에 발휘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기로 했다. 내 한계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일에 드는 에너지와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노력할 뿐이다.

대신 마음으로부터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나를 지배해왔던 외적인 기준들, 경쟁에서의 승리나 명예, 남들의 이목에 더 이상 마음을 뺏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할 때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제야 분명히 느낀다. 해서, 나이가 들면 일을 할 때에도 이성이 아닌 마음에게 먼저 물어봐야 할 것 같다. 과연 이 일을 놀이처럼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이 일은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일까 하고 말이다.

한혜경/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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