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를 비롯한 K-pop 그룹들의 세계적인 인기가 놀랍기만 하다. 빌보드와 유튜브의 기록이 자고나면 새로 세워지고, 세계 곳곳에서 젊은이들이 거리에 모여 한국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는가 하면, 밤을 새고 줄을 서서 한국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에 들어가고, 그들을 보러 무슨 성지순례 하듯 한국으로 몰려온다. 그들에게 반해 한국어를 배워 노래를 따라 부르고, “사랑해요” 소리치고, 웬만한 대화도 한다. 외국에 있는 수많은 한국문화원과 한국학과들이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신기하고 또 신기하다. 하도 궁금해서 유튜브에서 BTS를 검색해 하루 종일 들여다보았다. 멋지다! 멜로디는 금방 머리에 남고, 춤은 힘이 넘치면서 세련되고, 뮤직 비디오는 환상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가사는 대개 못 알아듣지만 자막을 열심히 읽어보니 젊은이들의 마음을 표현하고 위로도 하는데, 그 안에 철학이 있다. 음악의 스타일은 달라도 그 매력이 전설적인 비틀스 못지않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예전에 우리 세대는 외국 팝송에 젖어 살았다. 나는 비틀스, 제임스 테일러, 로드 스튜어트, 스팅을 좋아했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 동기의 일부는 그 노래 가사를 알고 싶어서였다. 양희은, 송창식, 정태춘, 강산에의 노래도 아름답고 깊이 있고 우리의 마음을 울렸지만, 그 노래들은 우리만 사랑했고 아쉽게도 외국에서는 거의 몰랐다.

그런 음악에 비해 아이돌 그룹의 음악은 예쁜 아이들의 훈련된 재롱 정도로 여겼는데, 편견이었다. BTS는 이제 노래에 철학과 심리학을 깊이 있게 담아내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앨범의 제목, ‘맵 어브 더 소울: 페르소나’는 저명한 분석심리학자 칼 융의 이론을 소개한 스타인 교수의 책 제목을 따온 것이다. 영국 BBC의 음악 기자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자는 노래 가사에서 자아, 집단 무의식, 페르소나 등 융의 이론을 풀어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스타인 교수도 젊은이들은 자신의 페르소나가 부족하고 자신이 사회에 부적합하다고 느끼기 쉬운데, BTS가 음악으로 이렇게 긍정적이고 건강한 이야기를 수백만 명의 팬들에게 전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고 평했다. 이 앨범 덕에 30년 된 그 대학 교재가 갑자기 엄청나게 팔려나간다고 한다.

BTS를 열심히 보다가 나는 뜬금없이 김구 선생님 말씀이 생각났다. 내가 생각해도 좀 별난 연상이지만, 의식의 흐름이란 원래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 나는 우리 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중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귀국에 대한 감회를 쓰신 것)

김구 선생님이 보신다면 BTS의 성공을 무척이나 기뻐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앞으로 더욱 성숙해서 더 큰 일을 이루기를 바라실 것이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문화는 문화예술을 넘어 도덕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인류가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며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이 오직 문화라고 하셨다. 최고의 문화는 민족 모두가 성인(聖人)이 되는 것,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입기보다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포에게 주는 것을 낙으로 삼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BTS가 여기까지 이루기를 나도 바란다. 도덕성을 잃고 범죄에 빠져버린 일부 연예인들과 달리, 끝내 자신의 이상을 지키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BTS여, 부디 존경할만한 어른까지 되어 달라. 그들은 솔직하고 성찰적이니 잘 해낼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어찌 이런 일을 20대의 청년 일곱 명에게만 떠넘기겠나. 김구 선생님은 우리 모두가 점잖은 사람, 선비 같은 사람이 되라고 부탁하셨다. 그래서 나도 어떻게든지 부끄럽지 않은 점잖은 사람이 되어보려 나름 노력하고 있다. 오늘도 저녁 뉴스에서 정치권 인물들이 차마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막말을 쏟아내는 것을 보면서, 욕이 튀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한 박자 쉰 다음, “저분은 말씀을 좀 점잖게 하셨으면 좋으련만”하고 반응하려고 노력한다.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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