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조너 원터 글/ 스테이시 이너스트 그림
여성에 대한 차별과 뚫고
당연히 여겨지는 불평등에
끊임없이 질문 던진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조너 원터 글/ 스테이시 이너스트 그림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조너 원터 글/ 스테이시 이너스트 그림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뚫고 미국의 두 번째 여성 연방 대법관이 된, (현재 실존하는) 여성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그가 태어난 1930년대는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하게 취급되는 것이 아주 당연하던 때였다. 사회에서 여성들은 꿈을 이룰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도 못하던 시절. 이런 악천후의 환경을 극복하고 대법관이 된 여성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삶은 평생에 걸친 의지의 산물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1930년대와 1940년대는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도 난무하던 시대였다. 어느 날 어린 루스가 부모님 차를 타고 펜실베이니아를 지나가는 길에서 만난, ‘개와 유대인 출입금지’라는 간판은 당시 미국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광경일 뿐. 유대인 여성으로서 이중의 차별과 혐오를 한 몸에 받고 있던 루스가 초등학교 때 써서 공동 우등상을 받은 작문 주제를 살펴보는 것은, 그래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라는 사람의 미래를 엿보는 단초가 충분히 되어준다. 바로 ‘자유를 헌법의 기본으로 세우게 한 중요사건’으로 손꼽히는 마그나 카르타와 권리장전을 글에서 다루었기 때문이다.

대법관이 되기 전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그는 ‘평등보호 권리를 법으로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며 연방 대법원에 무려 34개나 되는 법률 소송을 내기도 한다. 그 자리에서 여성차별은 미국시민 모두의 권리를 해치는 것이라는 주장을 했던 루스는 여성을 차별하는 것은 곧 남성에게도 피해라는 생각을 했다. 미국헌법이 보장하는 평등 권리를 침해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자신이 여자이기 때문에 여성의 권리에만 신경을 쓴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을 터. 루스는 남자가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에도 변호사로 나서서 여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남성의 권리를 지켜주었다.

미국의 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벨 훅스는 페미니즘이 단지 여성만이 아닌, 정의와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가치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남자 역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 것에도 주목했는데, 페미니스트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성이라고 무조건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처럼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여성과 남성, 그 누구도 성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벨 훅스의 주장은, 페미니즘이 남자에 반대하는 운동이 아니라 남성 중심적인, 성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이라는 사실에 대한 근거가 되어주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조너 원터 글/ 스테이시 이너스트 그림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조너 원터 글/ 스테이시 이너스트 그림

 

그림책에 나오는 루스가 겪는 차별 사례들 역시, 페미니즘이 남성 중심적인 성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이라는 사실을 여과 없이 증명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법학대학원에 진학하기 전까지 다니던 직장에서 단지 임신했다는 이유로 직급을 낮춰지고 월급이 깎인 사례부터 하버드 법학대학원에 입학했지만 여학생이라는 이유로 도서관도 출입할 수 없었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여성이란 이유로 받은 차별은, 헌법을 수호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일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림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통해 페미니즘이 자유와 정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운동이라는 걸, 다시금 명쾌하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18년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난 후, 불어오는 백래시(backlash, 반격)의 광풍 속에서, 페미니즘이 남자들을 혐오하는 여성들이 여성들만의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이라는 오래된 허구는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중요한 생각이 있을 때만 입을 열었던,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기보다는 타인의 말을 귀담아듣고 생각하기를 더 좋아했던 여성이었다는 점은, 페미니스트가 자기주장만 하는 센 언니들이라는 왜곡된 편견을 과감히 불식시킨다. 과슈와 잉크로 표현되어 사실적인 정교함과 따스함이 돋보이는 그림은 이런 그의 평소 성품과도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무엇보다도 루스가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자연스레 통용되었던 차별을, 반대한 것에 주목하고 싶다. 강의실에서 단 한 명뿐인 여학생이었던 루스를 웃음거리로 만들기 위해 교수가 일부러 루스에게 질문을 던지고, 여학생 아홉 명을 집으로 초대한 자리에서 대학원장이 남학생이 들어올 자리에 여학생이 들어왔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일상 속에서 그는 사회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에 대해 매번 질문을 던졌다.

이러한 루스의 모습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오랫동안 학습되어 내면화된 성차별주의, 곧 가부장제적인 사고와 행동을 우리 모두가 직시하는 것은 중요하다는 걸 일러준다.

너무나 오랫동안 학습되어온 여성에 대한 편견을 허물고 여성과 남성이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변화하기 위해선, 세상에서 당연히 여겨지는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란 걸, 그림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100년 전 여성들에게도 투표권을 달라고 거리에 뛰쳐나온 영국 여성 운동가들은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험한 여자들로 당시 사회에서 간주되었다. 그렇다. 여성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이, 그 시대에는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16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무려 1200만명도 넘는 아프리카 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노예로 끌려와 인간이 아닌 짐승 취급을 받은 것이 용인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페미니즘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운동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분명 시대를 한 발 앞서 가는 가치요, 힘 없는 소수자들도 차별받지 않는, 모두가 더불어 평화로울 수 있는 삶의 한 방법이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조너 원터 글/ 스테이시 이너스트 그림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조너 원터 글/ 스테이시 이너스트 그림

윤정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공연을 만들어 올리는 작가다. 독서치료사로서 10년 넘게 그림책 치유워크숍 활동을 해오고 있다. 페미니즘 관점에서 바라보는 문화예술 비평 작업도 활발하게 하고 있는데, 주요 저서로는 『조금 다르면 어때?』 『팝콘 먹는 페미니즘』(출간 예정)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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