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 열풍 이면에는
한국 특유 '자격증' 문화
스펙 아닌 짐될까 걱정

ⓒ뉴시스·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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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Barista)는 이태리어다.

바 안에서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주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굳이 영어로 바꾸자면 바텐더에 해당한다. 물론 바텐더라고 했을 때, 바텐더의 영역은 술까지 확장하면서 바리스타와는 의미가 달라지지만 바 안에서 손님을 대응하는 일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 둘은 결국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다.

여하튼 이제 바리스타라고 하면 누구나 커피를 떠올리는 시대가 되었고, 나아가 한국에서 ‘바리스타’는 거의 열풍이라도 해도 좋을 만큼 나이를 불문하고 전 세대에 걸쳐 직업적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런 현상은 도대체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물론 최근 10년 사이 국내 원두커피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커피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확대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과연 이런 이유가 전부일까.

바리스타 열풍의 이면엔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 붐이 한몫하고 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부여하는 민간 기구가 넘치고 있고 자격증까지는 아니라도 동네 문화센터에서도 이제 커피 바리스타 교육은 흔히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세계에서 인스턴트커피 생산량이나 소비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한편으론 커피전문가들이 그 어느 나라보다 넘쳐난다. 도대체 지금 커피를 둘러싸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우선, 한국의 자격증 문화를 들 수 있다. 뭐든지 자격증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국가 공인자격증 여부는 상관없다. 민간 사설 기관에서 내주는 자격증이라도 일단 취득을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자격증 자체가 목표가 되는 전도현상이 일어난다. 중요한 건 자격증이 아니라 실제로 갖추고 있어야할 경험과 전문지식임에도 말이다. 물론 자신이 익힌 지식과 기술을 스스로 인정받는 어떤 장치로써 자격증 취득은 동기 부여가 될 수도 있지만 자격증 취득 자체를 목표로 삼는 경향이 많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비용도 발생한다. 우려스러운 일은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음에도 자격증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 받는 현상이다. 지리산 서당의 훈장이 한자자격증이 없다고 전문가 취급을 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는 셈이다. 이러한 문화가 사회 깊숙이 있다 보니 ‘커피’는 자격증 시장의 블루칩이 된 것이다.

또 하나의 원인은 한때 열풍처럼 불어 닥쳤던 커피전문점 창업 붐이었다. 자영업 비율이 높은 한국은 그만큼 경쟁 점포도 많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점포 임대료도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편이다. 어지간해서는 개인이 자영업으로 ‘자영’하기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커피전문점은 퇴직한 사람에게는 여전히 관심이 높은 창업 아이템이다. 퇴직 후 새로운 인생으로 출발하기에 커피는 적당히 품격도 있어보였고, 문화 상품으로서의 성격도 있고 무엇보다 노동력 투입 면에서 음식점 대비 수월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기에 커피전문점 시장에서 생존하려면 다른 커피집과 차별되는 뭔가가 필요했을 터이다. 커피자격증은 바로 이 지점과 맞아 떨어졌다. 다시 말해 커피자격증 시장의 성장은 고용시장 불안에 의한 조기 퇴직 등으로 생존 시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증가와 맞물려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커피전문점이 증가하고 커피 시장이 커지자 임대료가 급등하고 있는 현상이다. 경쟁 심화로 매출은 줄어들고 있는데 임대료는 높아지는 이중의 고통이 창업 전선에 뛰어든 이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주택 분양 시장 쪽에서 미분양이 늘어나자 부동산 시장의 돈줄은 상가 건물이나 점포로 몰렸고, 그 피해를 자영업자들이 받고 있다. 현실이 이런데 커피집 점주가 전문 바리스타의 고용을 유지할 수 있을까. 점주 자신들도 회사에서 겪었던 것처럼 이들도 먼저 직원을 정리할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본인이 창업을 하지 않는 한 커피 전문 자격증은 스펙이라기보다는 짐이 된다.

커피에 열정을 갖고 한국 최고의 커피 전문가가 되기 위해 커피를 공부하는 젊은이도 많은 게 사실이지만 오히려 이런 한국 상황에선 이들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이른바 금수저가 아니라면 아무리 실력 있는 바리스타라도 고용은 물론(몸값이 비싸니 아무도 고용하지 않는다) 창업은 꿈은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커피 전문가들이 많아지고 대중의 커피 관심이 높아지는 건 좋은 일이나 과연 커피 문화 저변 확대에 바리스타들이 얼마나 중심에 서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커피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유럽이나 미국, 일본 등은 우리네와 같은 ‘커피 자격증’ 인증 시험이 없다는 사실을 이쯤에서 되새겨 보면 어떨까.

* 별걸 다 하는 출판사 ‘우주소년’ 대표. 저서로는 『커피는 원래 쓰다』가 있으며 최근에는 세계문학커피를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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