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페로탕 전시
'기념비에 대한 부정'
남성중심적 영웅서사
거부하는 작품들
6월8일까지

얀슨 스테그너의 'Lise' ⓒ페로탕
얀슨 스테그너의 'Lise' ⓒ페로탕

트레이닝복을 입은 몸매가 날씬한 여성이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언뜻 보면 모델 같기도 하고 운동선수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세히 보니 이 여성의 팔과 다리의 근육이 상당히 우람하다. 얼굴이 주먹 만한 것과 대조적이다. 몸통에 비해 팔다리 근육이 너무 우람해 비정상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여성은 몸매가 날씬해야만 한다는 일부 남성들의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그림이다. 여성도 우람할 수 있고 강한 존재라는 인식을 심는다.

서울시 종로구 갤러리 페로탕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 ‘기념비에 대한 부정’은 남성 중심적 시각을 뒤집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실리아 헴튼, 루비 스카이 스타일러 등 12명의 작품 22점을 전시한다. ‘기념비에 대한 부정’은 미국 소설가 어슐러 K. 르귄이 주장한 ‘소설의 쇼핑백 이론’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르 귄은 이 이론을 통해 역사에서 남성 기념비 중심적인 경향을 비판했다. 남성중심적인 사회 구조로 인류가 서로를 억누르고 영웅적인 서사를 추구하도록 길들었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회 작가들은 역사적 묘사 방식에 반기를 든 르 귄의 의지를 회화, 흉상, 조각 등으로 담아냈다.

루비 스카이 스타일러의 'Seated Father and Child'. ⓒ페로탕
루비 스카이 스타일러의 'Seated Father and Child'. ⓒ페로탕
줄리 커티스의 'Cleave' ⓒ페로탕
줄리 커티스의 'Cleave' ⓒ페로탕

다소 도발적인 작품이 눈을 이끈다. 실리아 헴튼의 ‘ben’(벤)은 남성의 나체가 드러난 엉덩이와 등을 그렸다. 엉덩이 사이로는 남성의 성기가 보인다. 작가는 역사적으로 남성 화가들이 여성의 성기에 집착했던 것을 남성의 성기를 그려 비판한다. 미술 역사에서 남성의 뒷모습이 묘사된 경우는 많이 없다. 루비 스카이 스타일러의 ‘앉아 있는 아버지와 아이’는 나란히 앉아 있는 아이와 아버지를 표현했다. 아버지가 앉아있는 모양새가 익숙하다. 여성이 보통 앉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면서 동시에 아이에게 부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제시 매킨슨의 ‘slippery Darling’에 그려진 여성이 쏘는 강한 눈빛에서는 힘이 느껴진다. 마치 승전보를 울리는 듯한 자세를 취한 이 여성에게서는 정복자의 냄새가 난다. 줄리 커티스의 ‘cleave’에서는 두꺼운 줄로 묘사한 여성의 신체가 보인다. 하지만 줄이 아니라 머리카락이다. 작가는 성적 대상화되는 머리카락으로 신체를 옥죄는 코르셋을 묘사했다. 6월8일까지. 02-737-7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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