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 있는 그 곳에 사람이 산다] 우리 방앗간은 커피를 볶아요
[온기 있는 그 곳에 사람이 산다] 우리 방앗간은 커피를 볶아요
  • 권혁년 도시재생팀 기자
  • 승인 2019.05.25 08:55
  • 수정 2019-05-24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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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 있는 그 곳에 사람이 산다]
경기 시흥시 도일시장마을

깨볶는 방앗간서
화·금요일은 커피로스팅
지속가능한 마을 사업 위해
마을카페 운영

허름한 쓰레기장이 마을 쉼터로
마을회관은 다양한
문화예술 강좌 ‘아지트’
마을회관 ‘아지타트’에서 학생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도일시장마을
마을회관 ‘아지타트’에서 학생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도일시장마을
도일시장 야시장의 모습. 야시장은 매년 3월부터 11월까지 매주 금요일 저녁에 열린다. ⓒ도일시장마을
도일시장 야시장의 모습. 야시장은 매년 3월부터 11월까지 매주 금요일 저녁에 열린다. ⓒ도일시장마을

이상한 방앗간을 만났다. 커피 볶는 방앗간이다. 깨와 고춧가루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던 방앗간이었는데 어느 날 커피가 들어왔다.

이곳에서 커피를 볶는 사람은 도일시장마을 통장 김정식씨다. 그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두 번씩 방앗간에서 커피 로스팅을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커피 로스팅 기계가 아니다. 참깨나 들깨를 볶는 기구를 약간 변형해서 로스팅 기계로 만들었다. 변형된 로스팅 기계에는 커피를 볶을 때 나오는 찌꺼기를 걸러내는 것이 없다. 그래서 김 통장이 채를 이용해서 이것을 걸러 준다. 기존 로스팅 기계에 비하면 몇배의 품과 정성이 들어간다.

이렇게 만들어진 원두는 바로 마을 카페로 가져간다. 마을 카페는 커피를 로스팅한 ‘깨 볶는 부부’ 방앗간에서 20여 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19.8(6평)㎡ 남짓으로 만들어진 커피숍은 도일시장마을에서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한다. 25명의 조합원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내서 만든 조합이다. 마을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마을사람들의 사업을 응원하는 일부 대도시 주민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마을카페의 공식 이름은 ‘마을카페50’이다. 이곳은 마을 주민 5명이 돌아가면서 당번 형태로 카페를 운영한다.

마을카페의 마을에서 진행되는 각종 마을 사업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재원을 만들기 위한 장치다. 그리고 마을카페는 마을 사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넓은 공동 주방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카페 앞에는 녹색의 인조잔디가 깔려져 있고 파라솔과 의자를 놓고 카페 손님 뿐 아니라 마을 주민 누구나 와서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카페 앞에는 마을의 랜드마크가 있다. 바로 문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예술 작품이다. 5년 전 이곳은 마을의 대표 쓰레기장이었다. 마을 주민들이 내다 버린 쓰레기와 시장을 찾는 외지인들이 버린 쓰레기로 산을 이룰 정도로 수북하게 쌓여만 갔다.

김정식 통장을 주축으로 마을의 몇몇 활동가들이 고민을 했다. 쓰레기를 치우고 이곳에 마을 주민들을 위한 휴게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 뜻을 시흥시청에 알렸다. 시흥시청 관계자는 이런 내용을 경기문화재단 팀장에게 지원 요청을 했다. 재단에서는 홍남기 작가를 소개시켜 줬다.

홍남기 작가는 마을 사람들과 현장을 둘러보고 기역자의 거대한 벽면을 문으로 장식하는 ‘도일시장 사거리 아트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이 프로젝트는 ‘문 프로젝트’라는 별칭으로 불리면서 거의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참여를 했다.

“그 때는 마을 주민들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버려져 있던 문을 가지고 오셨어요. 어떻게 달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김정식 통장이 당시 상황을 회상한다.

3층짜리 건물 통 면에 버려진 헌 문짝이 색칠을 해서 새롭게 붙여졌다. 물론 건물 주인의 허락을 받았고 이에 대한 고마움으로 벽면에 방수처리를 완벽하게 해줬다. 그리고 벽에 문과 화장실 발판, 의자 등을 모아서 예술적으로 붙였다. 주민 모두의 힘으로 이룬 ‘문 프로젝트’였다.

마을카페50 뒤편으로 홍범기 작가와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만든 문 프로젝트의 모습이 보인다. ⓒ도일시장마을
마을카페50 뒤편으로 홍범기 작가와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만든 문 프로젝트의 모습이 보인다. ⓒ도일시장마을

 

마을 카페 뒤편엔 마을회관이 있다. 여느 시골 마을회관을 생각하고 들어갔다간 약간 당황한다. 어르신들을 위한 안마의자 고스톱을 칠 수 있는 탁자와 의자 등은 이곳에 없었다. 100㎡(30평) 정도의 공간에 커다란 회의 테이블과 공용 싱크대, 그리고 넓은 별도의 공간이 있다. 마을 회관의 이름도 멋이 있다. 지하본부라는 의미의 아지트와 예술(아트)을 결합해 ‘아지타트’라고 지었다.

이곳에서는 어린이 미술교실, 장년층 꽃꽂이교실, 독서지도사교실, 한지공예, 어린이 인형극교실, 풍선 아트, 핸드 드립커피 교실 등 다양한 강좌가 열린다. 주민들이 원하는 강좌를 신청하면 마을에서 협의를 하고 강좌를 개설해 주는 형태다. 마을회관엔 비밀스러운 자랑거리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제비집이다. 서너 개가 있다. 이 마을은 아직도 강남 갔던 제비가 봄이 되면 돌아온다. 그래서 마을 로고도 제비를 활용해서 만들었다.

깨 볶는 부부 방앗간을 운영하는 장지연씨는 “지난해 마을회관에서 아주 큰 행사가 열렸어요. 김정식 통장 결혼식을 했어요. 마을 잔치로 온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음식을 장만하고 놀면서 결혼식을 마을 잔치로 만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올해 50살인 김정식 통장이 늦장가를 간 것이다. 마을의 단합과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단면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도일시장마을이 처음부터 잘 된 것은 아니다. 이곳은 1953년 6.25 전쟁 직후 시장에서 가장 큰 군자시장으로 출발을 했다. 이후 1970년대까지는 호황을 누렸다. 바다와 농촌이 만나는 곳에 있었고 우시장까지 생겨서 그야말로 사람이 구름처럼 모였다. 3,8일 장이 섰는데 장날엔 씨름대회도 열려서 구경꾼과 상인,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영등포, 수원, 인천 등지에서도 많은 상인들이 찾는 시장이었다.

80년대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우시장이 없어졌다. 마트가 생겨서 농산물과 수산물이 시장 대신 마트로 갔다. 그러면서 도일시장은 시장의 형태가 거의 사라졌다. 군자동과 안산시 신길동 사람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시장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고 한다. 봄철에 고추, 오이, 가지, 상추 등 묘목을 파는 시장으로서만 역할을 했다.

마을 사람들과 상인들은 마을 발전을 위해 재개발을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엔 고령의 집 주인들이 많고 마을을 모두 밀어내고 아파트를 짓기에는 많은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도시재생 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마을 주민들이 똘똘 뭉쳐서 하나씩 일을 하기로 했다.

문 프로젝트 완료 후 주민들이 함께 모여 마을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도일시장마을
문 프로젝트 완료 후 주민들이 함께 모여 마을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도일시장마을

 

맨 처음 한 일은 도시가스 설치다. 마을에 도시가스가 없어 불편했던 도일시장마을에 김정식 통장이 직접 나서서 마을 주민들의 동의를 얻고 서명을 받아서 도시가스를 설치했다.

깨 볶는 부부 방앗간의 심태규 사장은 “이곳에서 방앗간을 27년째 하고 있는데 사실 김정식 통장과 마을 사람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10년도 못하고 그만 뒀을 거예요. 하지만 마을이 점차 사람 사는 동네로 바뀌고 정도 들다보니 이제는 다른 곳에 이사할 생각을 아예 접었어요”라고 말했다.

이 집은 현재 대학을 졸업한 아들 심대보씨가 방앗간 가업을 잇겠다며 일을 배우고 있다.

방앗간을 찾아간 날도 아들은 열심히 가게 안을 청소하고 있었다. 부부의 얼굴엔 미소가 흘렸다.

최근 도일시장엔 새로운 볼거리가 생겼다. 금요일 저녁마다 열리는 야시장이다. 지난해 전통시장으로 등록을 하고 상인들 사이에 자신감이 붙어 이제는 야시장까지 진출을 한 것이다.

도일시장 상인회 윤병엽 부회장은 “시장 상인들이 처음에는 많이 주춤거렸어요. 우리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많았고요. 전주 남부시장 등 우수 사례도 많이 보러 다니고 의지도 굳게 다지면서 시장 활성화에 대한 의욕도 활활 타올랐어요”

마을회관을 비롯해 마을 곳곳에 있는 제비집 중 하나로, 아직까지 제비가 이 마을을 찾는다. ⓒ도일시장마을
마을회관을 비롯해 마을 곳곳에 있는 제비집 중 하나로, 아직까지 제비가 이 마을을 찾는다. ⓒ도일시장마을

 

여기에 며칠 전에 기쁜 소식도 날아들었다. 전국 시장을 대상으로 한 공모사업에서 도일시장이 뽑힌 것이다. 도일시장은 최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데 주차 시설이 너무나 부족했다. 시장 상인회와 마을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주차타워를 짓겠다는 내용으로 공모사업에 응모했다. 주민들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공모에 덜컥 붙었다.

국비와 도비, 시비 등을 합해서 50억원이라는 큰 돈이 도일시장에게 주어졌다. 이 예산으로 현재 30대 정도 주차를 할 수 있는 공간에 100대 이상을 넉넉하게 넣을 수 있는 주차타워를 지을 예정이다.

도일시장 마을을 품고 있는 군자동 장용호 동장은 “행정복지센터 바로 앞이 도일시장마을이다. 주민들의 노력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너무나 감사하고 고맙다. 이 사례를 시흥시 전체에 전파하고 이런 마을들이 많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동장의 역할이다”고 말했다.

신혼의 단꿈(?)에 빠져있는 김정식 통장에게는 최근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마을의 아이들을 위해서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싶어요. 현재 마을회관 아래층에 부지는 확보돼 있는데 이곳에 책을 넣는 것과 마을에서 어떻게 운영할 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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