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jpg

◀사진 왼쪽 위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주영, 옥민영, 최익진, 김민혜씨.

너무 편한 남자세상…남자처럼 살자꾸나

인터뷰/ <양성이 함께 부르는 노래책> 펴낸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 4인방

“술자리·엠티·과 모임에서 다 같이 노래를 부를 때 우리 모두는 불편함 없이 즐겁게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가요? 집회 뒤풀이·한총련 출범식·노동자 대회에 가서 우리 모두는 힘차게, 높은 결의로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가요? ‘우리 모두’는 누구인가요?”

<양성이 함께 부르는 노래책>.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을 인류학과 4학년인 옥민영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최근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4인방(김민혜, 김주영, 옥민영, 최익진)은 지난해 말부터 몇 개월 간 준비한 이 노래책을 지난 3월 8일 중앙대학교에서 열린 3·8 여성대회 문화제에서 소개했다.

“함께 노래하다 보면 여학생들이 많이 힘들어했어요. 제가 남자여서 그런지 처음에는 왜 힘들어하는 지 잘 몰랐죠.” “노래를 하다보면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잖아요. 그런데 여학생들 목소리가 어느 샌가 작아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부분이 자주 문제제기가 됐죠.” 남자로서 이 작업에 참가한 사회학과 2학년인 최익진씨와 같은 과 3학년 김주영씨의 경험담.

이 사업을 처음 시작한 사회학과 4학년 김민혜씨도 “여성들은 아무리 아등바등 노력해도 크고 우렁찬 남학생들의 목소리에 가려져 한두 소절이 지나면 그들의 키에 맞추게 돼요. 따라서 여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시원하고 즐겁게 노래를 불러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양성이 함께 부르는 노래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편곡을 도맡아 한 익진씨의 말을 들어봤다. “우선 이미 나와있는 민중가요들을 여성이 편하게 소리낼 수 있으면서 남성과 함께 불러도 무리가 없도록 음 높이를 조절했어요. 하나의 곡을 놓고 남성과 여성이 여러 번 불러보면서요.” ‘함께 부른다’는 민중가요의 원래 의미를 최대한 살려보려는 과정이었다. 이들은 공통되게 “우리가 평소에 쓰는 악보가 남성 중심”이라고 말한다.

익진씨는 “이 책의 악보들은 원래의 오선지에서 한참 내려가 있어요. 기존의 오선지에 들어가는 음역이 남성의 음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며 그 이유를 밝혔다. 이 노래책을 보면 여성주의가 담긴 노래도 여러 곡 만날 수 있다. 가부장제 철폐가·가장 멋진 해방을!·남자처럼·마초 나라·유노동 유임금을 여성들에게·생리휴가 등이 그것들. “민중가요에 나오는 남성중심 가사, 성별 분업화된 여성상이 마음에 걸렸어요. ‘노동형제’라는 말도 자주 나오는데 보통 형제는 남성과 남성의 관계를 대표하는 말로 쓰이죠. 청년이란 단어도 양성 모두를 가리키지만 무의식적으로 남성 청년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됐구요.”

음 높이부터 여성에게 맞춰야

민혜씨가 지적하는 민중가요 안의 가부장성. 그 뿐만이 아니다. 계급·민족 갈등은 남성들이 공유하는 군대문화로 자주 표현됐으며 모성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노래도 많다. 약자를 ‘순결한 처녀’로 표현, 강자는 남성이라는 인식을 절로 심어주는 가사에 이르기까지 민혜씨를 자극하는 노래들은 한 둘이 아니다.

민혜씨는 “노래를 만들고 불렀던 사람들 중에 남성이 많았고, 사회운동 주도 세력도 남성들이었기에 민중가요 안에 가부장 문화가 많이 남아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이런 부분을 나름대로 뜯어고친 페미니스트 가수들의 노래나 원래 있는 노래에 새로운 가사를 붙인 노래들을 실었다”고 설명했다.

@14-2.jpg

▶<자료·‘양성이 함께 부르는 노래책’>

이 노래책은 사회과학대에 6학년째 다니고 있는 한 선배가 개인 돈 100만원으로 500여권을 찍어냈다. 어쩔 수 없이 한 권당 5천원에 팔고 있는 이유다. 이 책은 사회대 학생회 홈페이지(http://so.jinbo.net, 02-880-6274)나 서울대학교 근처에 있는 서점 ‘그날이 오면’에서 살 수 있다. 일단 사람들의 반응은 좋으며 책도 꾸준히 팔리고 있단다. “제가 아는 한 남학생은 이 책으로 여자친구와 노래를 불렀는데 너무 편하고 좋았다고 하더군요.” 민영씨의 자랑이다.

아직은 ‘아주 작은’ 노력이다. 그러나 “문화를 변화시키는 첫 걸음이라고 생각한다”는 주영씨의 말이 이 책이 갖는 뜻을 대신 말해준다. “여성주의 노래책이 아닌, 제대로 된 노래책”이라는 한 네티즌의 평가도.

혜원 기자

cialis coupon cialis coupon cialis coupon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