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녀 감독전 출품한 김유리, 오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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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의 김유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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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트랙>의 오지혜 감독

“나이요? 학년으로 따지면 고등학교 3학년이죠. 같아요.”

올해 서울여성영화제 ‘청소녀 감독 작품전’에 출품한 <자전거>의 김유리(18, 광영여고 3년), <퍼포먼스 트랙>의 오지혜(18, 하자센터 작업장학교) 감독에게 제일 먼저 들은 답변이다. 제작과정이라든가 내용보다는 어쨌거나 역시 나이가 궁금했다. 이미 국내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했거나 좋은 평가를 받은 소녀 감독들의 작품 10편을 하나로 묶은 <청소녀 감독 작품전>은 연일 매진사례였다. 특히 학교와 가정에서 10대가 겪게 되는 답답하고 억눌린 상황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기발하게 그려낸 <자전거>와 동질적이면서도 이질적인 집단인 가족을 재치 발랄하게 나타낸 <퍼포먼스 트랙>에서는 기성감독 못지 않은 이들 소녀 감독들의 영화적 표현능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 주인공 소녀는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고 다른 주인공들은 얼굴이 나오지 않아요. 소녀는 학교에서 선생님의 언어폭력에 시달리고 집에서는 부모님과 소통할 수가 없어요. 이런 답답한 상황을 탈출할 방법은 단 하나, 그냥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거예요.” <자전거>에는 이 외에도 탁자나 책상, 올가미처럼 상징성을 가진 물체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소녀는 말을 할 수 없으니까 학교에서 선생님이 나무라면 계속 방귀를 뀌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요. 그리고 집에서는 아버지가 나무랄 때 바닥에 기어가는 개미를 손가락으로 조용히 뭉개는데 결국 뭉개고 있는 건 자신의 얼굴이잖아요. 끔찍하죠.” 그저 영화언어로 봐달라는 김유리 감독. 지금의 상업영화와는 차별되는 진정한 코미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오지혜 감독도 김 감독의 이러한 상상력에는 감탄한다고.

“가족과 떨어져 친척집에 얹혀 있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 때 일상적인 가족 간의 관계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보게 되더라구요. 문득 때가 되면 밥상을 차리고 가족들의 뒤처리나 하는 엄마의 심정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영화 중에 ‘엄마에게 일기장이 생기면 집을 나갈지 모르겠다’는 내레이션이 있거든요. 저는 엄마에게 일기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요. 또 없기 때문에 좋다고도 생각해요.” 하지만 오지혜 감독이 그리움을 안고 다시 집(경남 마산)에 내려가면 가족들은 어느새 자신에게 지겨운 존재가 된다. “제가 가족을 생각하는 입장이라는 것도 변하고 있고, 가족 또한 각자의 생각과 개성을 가진 존재니까요.” 각각 네 가지의 트랙을 가지고 영화를 구성한 것도 하나의 완결된 스토리로 가족을 묶는다는 게 힘들다는 생각에서이다. 사실 ‘아빠도 사창가에 가봤을까’라는 대사 때문에 속시원하게 가족에게 자신의 영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단다. 언젠가 아버지와 자신이 각각 일대일의 동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때는 물어볼 수 있겠지.

7, 8분짜리 6mm아마추어 감독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준비된 이들. 하자센터에서는 ‘글쎄(김유리)’와 ‘지뢰(오지혜)’라 불리는 이들은 줄곧 하자센터 작업장학교에서 영상제작 교육을 받았고 여성영화제 이전에도 외부로부터 제작비를 지원 받아 영화를 찍었을 정도니까. 하지만 아직도 영화 제작은 어려운 일이다. “감독이 물론 기획에서부터 시나리오, 편집까지 전 과정을 두루 거쳐야 하지만요. 특히 지금은 배우를 캐스팅하고 연기 지도하는 게 가장 어려워요. 아무래도 프로가 아닌, 아는 사람들 위주로 배우를 캐스팅하니까 뭔가를 요구하는 것도 힘들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냥 넘어가고 말예요. 마음에 맞는 전문적인 스태프들과 꼭 영화를 찍어보고 싶어요.” 솔직하면서도 간절한 바람이다.

의문을 가져야 하는데 가지지 못하고 있다며 진정한 스토리텔러가 돼 영화를 만들겠다는 김유리 감독, 20년 이후에 다시 여성영화제에서 <청소녀 감독 작품전>을 보고 싶다는 오지혜 감독, 누가 뭐래도 제 5회 여성영화제가 남긴 최고의 성과는 바로 이들일 것이다.

현주 기자soo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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