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떠난 세 여자, 에코 페미니스트를 만나다] 방콕에는 ‘쓰레기 없는 가게’가 있다
[길 떠난 세 여자, 에코 페미니스트를 만나다] 방콕에는 ‘쓰레기 없는 가게’가 있다
  • 최형미 여성학자
  • 승인 2019.05.22 08:27
  • 수정 2019-05-22 0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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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방콕의 ‘제로 모먼트’
비닐봉지 없는 식료품점
SNS 입소문 타면서
개업 2개월 만에 인기

"Good girls go to heaven, bad girls go everywhere."(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지 간다.) 여자들에게 여행은 독립을 선언하는 행위이며, 경계를 넘는 반란이다. 다큐 감독 유혜민, 환경운동가 고금숙 그리고 여성학연구자 최형미는 (재)숲과 나눔 지원을 받아 인도, 케냐 그리고 태국으로 함께 여행을 떠났다. 긴 여행에서 길러진 통찰과 의지의 근육은 우리를 더 먼 곳으로 이끌 것이다. 우리가 함께 만났던 여성운동가, 환경운동가들의 이야기는 순간순간의 힘이 되었다. 나이도 살아온 환경도 다른 세 여자가 여행에서 만난 에코 페미니즘과 지역 여성운동가들의 이야기를 격주로 전한다.

방콕 ‘제로모먼트’에서 식료품을 구경하는 엄마와 자녀. ©최형미
방콕 ‘제로모먼트’에서 식료품을 구경하는 엄마와 자녀. ©최형미

 

1970년대 에른스트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을 써서, 거대발전론에 빠지지 말고 소박한 삶을 누리며 행복하게 사는 경제학을 주장했다. 더 많은 소비가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믿으며 경제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자연과 약자들을 착취하는 것이 필요악이라고 주장하던 시대였다. 그는 끊임없이 갈증만나는 무한한 욕망의 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했고, 그것을 불교경제학이라고 불렀다.

방탄소년단(BTS)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라는 제목의 노래를 들으며 슈마허의 주장이 오버랩 된다. “뭐가 널 행복하게 할까? 세계의 평화 No way! 거대한 질서 No way! 그저 널 지킬 거야 난” 젊은 세대들은 또 다시 작은 것들에 관해 노래한다. 정치도 정책도 아닌 것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겠냐고? 그들은 규율과 강제가 아닌 기쁨과 즐거움이라는 고갈되지 않는 재생 에너지를 가지고 세상을 향해 외친다.

태국은 불교국가다. 1997년 아시아에 금융위기 태풍이 불었을 때 인도네시아에서는 정권이 바뀌었고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 체계로 들어갔다. 그러나 당시 태국 부미볼 국왕은 ‘자족 경제 철학’을 내세워 사람들을 설득했다. 작은 땅에 나무를 심고, 물을 가두고, 농사를 지으면 사람과 동물이 충분하게 살아갈 수 있다. 불교 경제학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방콕은 서울 같다. 지하철, 상점들, 커피숍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들. 도시를 가로질러 강이 흐르고, 뱃길이 강을 따라 시장이며 광장들 그리고 궁전들을 연결해주고 있었다. 밤이 되면 방콕은 새로운 모습이 된다. 황금으로 장식된 왕궁은 탐욕의 도시가 아니다. 영원한 것을 추구한 고대의 신비한 기운이 맴돈다. 어떻게 태국은 열강들의 탐욕에서 식민지가 되지 않고 살아남았을까? 이들의 역사가 궁금했다.

외국인들이 모여든다는 카오산 로드 호텔에서는 새벽까지 퀸과 비틀즈 그리고 레드벨벳의 노랫소리가 흘렀다. 같은 방을 쓰던 금숙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아이고 미안해요. 이런 곳을 예약해서” 하고 외치고 지쳐 또다시 잠이 들었다. 방콕은 플라스틱 해결이 불가능한 곳처럼 보였다. 거리의 모든 음식은 비닐봉지와 플라스틱 용기로 포장돼 있었다. 왔다가 떠나버리는 외국관광객들은 환경에 민감하지 않았고, 일회용이 위생과 편리를 대신했다. 태국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태국은 열강의 침공은 피했을지 모르나 플라스틱의 침공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자연, 소수자 그리고 전 우주를 함께 배려하며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는 불교 경제학의 전통은 어디 있을까?

“우주에서 유일하게 초콜릿이 있는 행성, 지구를 구해요.”(Save the Earth. It's the only planet with Chocolate.)

더 많이 소비하려고 더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함께 행복하기 위한 경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었다. 경제는 잘사는 사람이 더 많이 버는 시스템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는 철학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니 여자들이 있었다. 방콕에 쓰레기 없는 가게(zero waste shop) ‘제로 모먼트’가 있다. 무조건 택시를 타고 제로 모먼트로 향했다. 표정이 맑은 젊은 여주인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우주에서 유일하게 초콜릿이 있는 행성, 지구를 구해요”라는 문귀가 눈에 띈다. 서른 살의 주인장 미아오씨는 독일의 제로웨이스트숍을 방문하고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200여개의 식재료와 생활용품이 단정하게 진열되어 있었고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 90%가 자기 용기를 가져와 쌀, 잡곡, 설탕 오일, 땅콩, 마카다미아 등을 담아간다. “거리 음식으로 유명한 방콕에서 비닐봉지를 금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는 장사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할 수 없다. 그러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다.” 법과 규제가 아니라 개인이 변화를 이끌고 있었다.

그는 지역 농가와 직접 연결해서 유기농 식재료를 구매해 가격을 낮춰 사람들에게 공급한다. SNS로 그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개업한 지 불과 두 달밖에 되지 않은 가게에 사람들이 붐볐다. 아이와 함께 찾아와 환경이야기를 하며 꿀, 기름, 세제 그리고 천연비누를 사가는 여성도 있었다. 강요된 소비가 아니라 소비에 멋과 철학을 더한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유명브랜드만이 소비의 트랜드를 장악하게 할 수는 없다. “사회적 기업을 한다고 했는데 정부의 보조가 있다는 말인가?” 라고 묻자 “그런 건 없다. 나는 우리사회에 선하게 기여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관심했을 뿐이다”라고 응답했다. 그의 선한 마음에 농부, 자연이 들어온 것이다. 사람들은 미아오와 함께 때창을 부르듯 즐거운 에너지를 가지고 그곳에 모여들고 있었다. “세상의 평화 No way! 거대한 질서 No way! 그저 널 지킬 거야 난. 지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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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81 551 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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