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아이 장난감 대부분
엄마놀이, 외모 꾸미기에 초점
남아는 장난감 통해 과학기술 체험
장난감 성별 구분은 창의성 저해,
직업 선택 제약으로 이어져

한 대형마트의 여아 완구 코너. 역할놀이 장난감, 코스메틱 제품들이 눈에 띈다. ⓒ여성신문
한 대형마트의 여아 완구 코너. 역할놀이 장난감, 코스메틱 제품들이 눈에 띈다. ⓒ여성신문
한 대형마트의 남아 완구 코너에 다양한 장난감이 전시돼 있다. ⓒ여성신문
한 대형마트의 남아 완구 코너에 다양한 장난감이 전시돼 있다. ⓒ여성신문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청소놀이 장난감 박스에 적힌 ‘나도 엄마처럼 청소기 돌릴꺼야’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또 같은 장난감 회사의 설거지놀이 장난감에는 ‘쓱싹쓱싹~뽀득뽀득~엄마처럼 설거지해요!’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박스에는 여자아이가 청소를 하거나 설거지하는 사진이 담겨 있다.

소꿉놀이 장난감은 남아, 여아 모두 사용할 수 있음에도 여자아이를 광고모델로 내세워 여아용 엄마놀이 장난감으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으며, 장난감 매장에 키즈 코스메틱 코너까지 생겨날 정도로 여아용 화장품도 인기 품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대해 남자아이는 장난감으로 다양한 활동과 역할을 할 수 있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핵심이 될 STEM(과학·기술· 공학·수학) 분야도 체험할 수 있지만, 여자아이는 장난감을 통해 가사노동 전담자, 꾸미고 가꾸는 ‘젊은 여성’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서지영 활동가는 “여자아이는 ‘엄마’로만 자라지 않는데도 장난감 광고가 ‘**이의 엄마가 되어주세요’, ‘엄마 나도 세탁기 돌렸어요’, ‘빨래하고 다림질도 해야지’, ‘나도 엄마 할래요’ 등 문구들이 나온다”며 “여자아이 역할놀이의 대부분은 엄마놀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는 젠더프리한 장난감 광고들이 많이 나오는 데, 우리나라의 소꿉놀이 장난감 박스나 광고에 남아는 등장시키지 않고 여아들만 등장하는 것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여자아이도 미래의 의사, 경찰관, 소방관 등 직업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역할을 체험할 수 있는 장난감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많다.

이와 함께 여아건 남아건 장난감 색상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데도 장난감 색상이나 박스도 핑크는 여아용, 파랑은 남아용에 주로 적용한다는 비판이 많다.

이에 대해 역할놀이 장난감을 판매하는 대형 장난감 회사의 한 관계자는 “우리도 남성, 여성과 같이 성을 구분 짓는 것은 아니고 소꿉놀이 장난감은 여아, 남아 누구나 가지고 놀지만 여아들이 더 많이 찾다 보니 여아를 모델로 더 많이 등장시킨 것”이라며 “핑크색을 많이 적용한 것도 그 나이대 여아들이 가장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여아를 위한 코스메틱 장난감의 경우, 팔레트·립스틱·네일케어 등을 어릴 때부터 실제로 얼굴에 발라볼 수 있게 하면서 꾸미는 훈련을 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소피루비가 선보인 ‘메이크업 보석 시리즈’ 중 변신 요술봉, 루비 목걸이, 노래방 마이크는 심지어 화장품 회사와의 공동 작업으로 제작됐으며, ‘화장품 궁전 메이크업 세트’는 8종의 색조 화장품과 메이크업 키트로 구성돼 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이 같은 성차별 장난감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기 위해 지난 3일부터 장난감 액션인 ‘#장난감을_바꾸자’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구글 링크를 통해 ‘나는 *** 장난감을 원한다’에 해시태그와 함께 의견을 적어 올리는 캠페인이다. 이번에 모아진 요구안들을 정리해 변화를 촉구하는 제안서와 함께 20일경 대형 장난감 회사들에 전달할 계획이다.

특정 유형이나 색상의 장난감을 여아용, 남아용으로 나누는 것은 성별 고정관념을 키우고 직업 선택도 제약시키는 등 문제를 양산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김주혁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은 “장난감 종류나 색깔로 성별을 구분 짓게 되면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시키게 된다”며 “여자아이들이 소꿉놀이, 남자아이는 로봇이나 자동차를 가지고 놀게 되면 여자아이들은 로봇 과학자가 된다는 꿈을 꾸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소꿉놀이 장난감이 여아의 것이라면 남자들은 집안 일은 당연히 여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은 도와주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기 쉽다”며 “성역할 고정관념은 또 창의성을 떨어뜨리는 것으로도 나타나 소비자 항의나 개선 요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초등학생 딸을 가진 엄마 A씨는 “딸이 어렸을 때 인형에는 관심이 없고 기차, 차 등 장난감만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 다른 엄마가 남자가 되고 싶어하는 동성애 성향을 얘기해 불쾌했던 경험이 있다”며 “여자 아이가 차를 가지고 노는 것이 비정상적이라는 시선은 사회적으로 심어진 잘못된 편견”이라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아이들의 장난감에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지 말자는 운동이 전개돼 왔다. 2012년 영국에서는 ‘렛 토이스 비 토이스(Let toys be toys)’라는 시민단체가 생겨 장난감을 모니터링해 해당 업체들에 권고사항을 보내온 결과, 영국의 유통업체 존 루이스 등 15개 업체는 제품 홍보에 ‘소년’, ‘소녀’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또 캐나다 유통업체 캐네디언 타이어는 지난해 말 크리스마스 카탈로그에 성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사진을 실어 화제를 모았다. 파란색 티셔츠를 입은 여자아이가 장난감 공구세트를 가지고 놀고, 남자아이는 장난감 주방세트를 가지고 노는 모습이 담겼다. 캐롤린 맥퍼슨 캐네디언 타이어의 키즈펀 부회장은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는 우리가 의도한 것으로, 아이들이 전통적인 성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게 놀잇감을 제공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 같은 장난감 젠더프리 움직임에 대해 일부에서는 “여아, 남아 등의 장난감에 대한 선호도가 다르다 보니 성별 구분이 돼 있는 것이 오히려 장난감을 고르기 편하다”며 반대 의견도 내놓고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