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엄마의 아이키우기

오전 7시. 박희정(가명.38)씨는 초등학교 1학년인 딸 은정이(가명.8)와 아침부터 씨름이다.

“은정아 일어나!”, “은정아 벌써 7시야. 학교 가야지. 어서 일어나!!”

“엄마. 조금만… 조금만 더 잘게.”

“엄마가 아침 준비하는 동안 일어나서 세수해. 알았지.”

15분 후. 은정이는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고, 희정씨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진다.

“빨리 준비하지 않으면 늦어. 어서 일어나야지.”

약간 화가 난 듯한 엄마의 목소리에 은정이는 깜짝 놀라 부스스한 모습으로 화장실에 들어간다. 그것도 잠시. 식탁 앞에 앉은 은정이. 밥 한 수저 먹고 TV 보고, 밥 한 수저 먹고 TV 보고. 안 그래도 늦었는데 꼼지락거리는 은정이가 영 마땅치 않은 희정씨. 결국 폭발했다.

“네가 먹는 밥이지. 엄마 밥 대신 먹어주는 거야?”, “음식 귀한 줄 모르고...”, “자꾸 그러면 앞으로 밥 먹고 가지마.” 희정씨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화가 나 자신도 모르게 말을 막 한다. 오늘 아침도 희정씨는 은정이와 토닥토닥 실랑이를 벌인 끝에 학교를 보냈다.

“엄마 노릇도 못하면서…”

아이를 학교에 보낸 그는 잠시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어질러진 집안을 정리한 후 차분히 얘기를 시작했다. “아침 7시면 초등학교 1학년생이 일어나기에 좀 이른 시간이다. 그러나 보다시피 내가 몸이 불편해 서두르지 않으면 아이가 학교에 늦는다.” 아이와 벌이는 아침 실랑이가 미안한 듯 말을 꺼낸 희정씨는 소아마비 1급 장애여성이다. 그는 “남들은 30분이면 될 일이 난 한 시간 이상 걸린다”며 “그래도 다행인 것은 상반신이 자유로워 식사준비나 옷 입는 것, 목욕은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장애여성이 아이를 갖는 것에 비장애인들이 얼마나 무서운 편견을 갖고 있는지 설명했다. “내가 아이를 가졌다는 얘기를 하자 친정엄마가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큰일났다’는 거였다. 하긴 시집도 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가 결혼한다고 하니 가족들이 모두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는데, 아이라면 더욱 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오죽하면 그가 아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여성은 결혼 후 시어머니가 “관계가 가능하냐?”고 묻기까지 했다고 한다.

장애엄마 둔 아이 동정으로만 바라봐

아이 야단치면 엄마 자격없다 비난

“정말 답답한 일은 장애여성이 아닌 장애남성이라면 과연 이렇게까지 대접을 받을까 하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장애인 결혼상담소에 찾아오는 대부분은 장애남성이다. 장애가 심할 경우 가족들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데리고 와서 어떻게 해서든 결혼을 시키려 하는데 장애여성의 경우는 다르다. 일단 가족들이 결혼을 전제로 두지 않는다. 게다가 장애여성이 성에 대해 관심이라도 가지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니 장애여성에게 결혼은 선택도 되지 못할 때가 많다.”

이런 현실에서 아이까지 낳는다면 그것은 넘기 힘든 험난한 산이다. “아이를 낳으면 누가 아이를 키울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대부분 장애여성의 아이는 주변 가족들이 키워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에게 또 한번 죄인 아닌 죄인 취급을 받는다.”

박씨는 비장애여성도 아이를 기르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장애여성이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라고 얘기한다. 특히 장애엄마가 양육권을 주장한다면 그야말로 말도 되지 않는다는 반응들을 보인다고 얘기한다.

장애여성의 양육권은 인권이다

“남편과 이혼하고 얼마동안 친정에서 아이와 살았다. 오히려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이 더 힘들었다. 왜냐면 가족들은 전적으로 아이의 시각에서 나를 바라보지 엄마의 시각에서 아이를 바라보지 않는다.”그는 장애가 있는 여성의 몸에서 태어난 아이의 존재가 너무 대단(?)한 것이기에 모든 것이 아이 위주였고, 거기에서 장애엄마의 존재는 없었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혼내야 할 경우가 많다. 엄마로서 아이의 잘못에 대해 야단치고 혼내면 가족들은 오히려 나를 더욱 혼내는 웃지 못할 상황이 많았다. ‘네가 엄마 노릇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자격으로 아이를 야단치냐’고 얘기할 정도니 엄마로서의 내 권리는 묵살될 수밖에 없다.”

계속 말을 이어가던 그는 답답했던 그 상황이 생각나는지 작게 한숨을 내쉬곤 했다. 그는 “하지만 가족들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며 “우리 사회에 장애여성, 장애엄마에 대해 너무도 그릇된 가치관이 난무해 생긴 결과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결국 그는 엄마로서의 양육권을 지키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독립을 감행했다.

박씨는 독립한 후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하다고 한다. 이제야 제대로 엄마노릇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장애여성의 독립에 대해 가족들의 우려, 주변의 우려를 말끔히 씻고 딸 은정이는 씩씩하게 유치원을 다녔고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초등학교는 유치원 때와 또 달랐다. 당장 통학하는 데도 유치원은 유치원 차가 와서 데리고 가고 데려다 줘 엄마가 힘들지 않았지만 초등학교는 걸어서 다니기 때문에 아침부터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며칠 전에 있던 일이다. 아이가 노트를 놓고 가서 전동 휠체어를 타고 학교에 갔다. 막상 학교에 가니 제일 막막한 것이 3층에 있는 아이의 교실까지 갈 수가 없었다. 모두 계단이기 때문이다. 한참 고민하다가 운동장에 있는 아이들에게 부탁했다. 부탁한 아이가 제대로 갖다 줬는지 걱정이 돼 한참을 기다려 간신히 확인하고 왔다.”

그는 “지하철에만 리프트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 깊숙이 장애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며 “노트를 전해준 아이에게 고맙다고 친절하게 얘기했다”고 강조했다.

아이에게 친절하게 얘기하는 게 당연한데 왜 그 말을 강조할까.

그는 “내가 예민하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만 동네 아이들이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을 가질까봐 항상 신경 쓴다”고 했다.

장애인은 무섭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편견을 없애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친절한 그. 갑자기 한숨이 나왔다. 이렇게 신경을 쓸 정도로 비장애인인 우리들이 얼마나 심각한 편견을 갖고 있는지.

그는 “초등학교에 보내면서 고민이 생기는 게 사교육에 관한 것이다”며 사교육에 관해 운을 띄웠다. “장애여성은 학력이 낮다. 가정에서 특히 남성이 아닌 여성이 장애를 갖고 있으면 교육시키는 것을 포기한다. ‘저 몸에 배워서 뭐하나’라는 소리를 수없이 듣는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의 교육적인 분위기는 상당히 높아 솔직히 교육수준이 낮은 장애엄마들이 따라가기 벅차다. 사교육을 시켜야 하는 경제적 부담도 크다.”

그는 장애여성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보육과 의료적인 지원, 도우미 제도의 정착 등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장애여성이 느끼는 아이 키우기의 어려움을 조근조근 얘기하던 박씨는 마지막으로 이 말을 꼭 써달라고 부탁했다.

“장애여성의 양육권은 곧 장애여성의 인권이다. 열악하기 그지없는 장애여성의 인권문제가 선행되지 않고서 어떻게 장애여성의 양육권이 보장될 수 있는가. 비장애여성의 경우에도 여성에게는 양육의 도리만 있고 남성에게는 양육의 권리가 주어진다. 장애여성에게는 여성으로 겪어야 하는 어려움과 장애인이기에 겪는 이중적 고통이 따른다. 이제 엄마로서 나의 권리를 찾고 싶다”

동김성혜 기자dong@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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