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폭력 피해자 손해소 막는 ‘소멸시효’
아동 성폭력 피해자 손해소 막는 ‘소멸시효’
  • 이하나 기자
  • 승인 2019.05.20 11:08
  • 수정 2019-05-20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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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도가니 사건’ 이후
아동성범죄 공소시효는 폐지
손해배상 소멸시효는 그대로

10세 때 성폭력 피해 입고
16년 뒤 형사 승소한 김은희씨
민사에선 법이 발목 잡아

전문가들 “PTSD 진단 이후로
소멸시효 기간 조정 필요”
정부는 지난해 영화 ‘도가니’를 계기로 광주 인화학교 장애아동 성폭력 사건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법률조력인 제도를 포함한 장애인 성폭력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사진은 인화학교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2012년 이른바 ‘도가니 사건’을 아동 성폭력 사건의 공소시효는 사라졌으나, 소송을 시작해야 하는 시한, 즉 ‘소멸시효’는 그대로 남아 있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성폭력 피해를 인지하거나 피해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 아동 성폭력 피해자들은 피해배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광주 인화학교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13세 미만 어린이나 장애인이 성폭력 피해를 입으면 성인이 되서도 가해자의 죗값을 물을 수 있다. 2012년 이른바 ‘도가니 사건’으로 공소시효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범죄가 입증됐더라도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너무 늦게 내면 피해배상을 받을 길이 없다. 소송을 시작해야 하는 시한, 즉 ‘소멸시효’가 정해져 있어서다. 피해를 뒤늦게 알게되는 경우가 많은 아동 성폭력의 특성을 반영해 소멸시효를 새롭게 계산해야 한다는 요청이 많다.

성폭력 피해자는 성폭력 범죄로 인한 피해에 대해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민법 제766조에 따라 불법행위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거나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 이내에 행사하지 않으면 손해배상청구권은 사라진다. ‘도가니 사건’으로 불리는 광주 인화학원 성폭력 피해자들도 손해배상의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법원이 소송을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패소했다.

체육계 첫 미투(MeToo)를 외친 김은희씨도 피해보상을 받기 위해 민사소송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낙관적이지 않다. 10세 때 테니스코치로 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은 김씨는 16년 만인 2017년 가해자를 고소했다. 결국 지난해 7월 대법원에서 가해자는 징역 10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김씨는 정신적 피해를 배상하라며 민사소송을 냈다. 그러나 민법의 소멸시효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손해배상권과 소멸시효’를 주제로 한일포럼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소멸시효를 둘러싼 쟁점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불법행위를 안 날을 언제로 정해야 하는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를 언제로 볼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쏟아졌다.

김재희 변호사는 아동성폭력의 특수성을 언급하며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수 십년에 걸쳐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으면서, 전 생애에 걸쳐 후유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며 “특히 성 경험이 적은 어린 아이의 경우, 성폭력을 바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시간이 지나면서 정신적 피해가 더 커지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아동성폭력은 유년기 시절 성폭력 피해로 인해 향후 수 십년 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극심한 피해가 지속될 것을 예상할 수 없고, PTSD 진단을 받기 이전까지 그 손해 발생 자체도 불확실해 피해자 및 피해자의 법정대리인이 손해를 인식하거나 예상하기 어려운 점, 가해행위 시점과 상당한 기간을 두고 PTSD라는 원인이 과거 성 학대 행위로 기인했다는 것을 인지한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과거 성 학대로 인해 정신질환 진단 시기를 현실화된 손해를 구체적으로 알았다는 기산점으로 보고 소멸시효를 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은희씨도 이 자리에서 “성폭력 피해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현실과 법 조항의 괴리를 지적했다. 그는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피해자의 정당한 권리 행사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꽃뱀’ 프레임으로 사건을 호도한다”면서 피해자들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민사소송의 판결과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최근 법원 판례에서도 소멸시효 운용에 변화가 감지된다. 서종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1년 9월 대법원은 녹십자 홀딩스가 제조한 혈우병치료제인 혈액제제를 투여받은 후 HIV에 감염된 혈우병환자들의 보호를 위해 ‘입증책임완화’시키거나,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대한 탄력적 운용을 통해 녹십자홀딩스의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사회 인식도 정당한 권리를 지닌 피해자들을 움츠리게 만든다.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소장은 “배상을 청구하는 피해자를 ‘가짜 피해자’로 만드는 한국 사회를 비판하며 “피해자의 인권보다 공동체의 이익이 우선시 되며 민사 소송을 제기할 때 피해자들이 겪는 ‘꽃뱀 프레임’ 등 피해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성폭력 피해에 대한 이해를 담은 판결문의 필요성과 법 제도 개선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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