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 안혜연 소장
산업 분야 여성인력 여전히 적어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 여성 진출 활성화돼야
여성 만을 대상으로 한 IT 등 교육 프로그램 필요

안혜연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 신임 소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안혜연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 신임 소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과학 관련 협회에서는 으레 학계나 연구계 출신이 협회장이나 소장을 맡아왔다. 하지만 이번에 신임소장이 된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이하 WISET) 안혜연(61) 소장은 보안 기업에서 30여년 경력을 가진 베테랑 산업계 출신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안 소장은 “관계자들 사이에서 ‘누구지’ 하는 반응이었다”며 웃었다.

그는 3년 임기의 제3대 소장으로 취임했는데, WISET의 1대 소장은 학계, 2대 소장은 연구계 출신이었다.

안 소장은 이화여자대학교 수학과에서 전산을 전공했으며, 같은 학교 전산 전공 석사 학위를, 이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에서 컴퓨터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후배들에 대한 사명감으로 WISET 초창기부터 강의, 교육, 멘토링 등을 해왔기 때문에 WISET과 인연이 깊다. WISET은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 사업을 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의 공공기관이다.

“10여년 전부터 협회 등에서 과학기술 연구소에 석·박사급 여성인력을 유입시키는 일에 힘을 기울여와 여성인력들이 상당수 진출해 있습니다. 하지만 산업 분야의 여성인력은 여전히 적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기술 기반의 여성인력들이 턱 없이 부족합니다. 미래를 이끌어갈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에 여성들의 진출이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그는 산업계 쪽 여성인력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자신이 소장에 임명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신산업 분야 여성인재 3000명 배출 등 내용을 담은 ‘제4차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지원 기본계획’을 발표한 만큼 앞으로 이와 연계해 정책을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과학기술 분야에도 좋은 인재들은 있지만 대기업에 가고 중소기업에는 잘 오지 않거든요. 그래서 중소기업들은 인력란에 시달리고 여성 인력이 특히 너무 적어요. 과학기술도 여성들이 충분히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적극 알려나가야 합니다.”

그는 여학생들이 전산, 공학 등을 전공하고도 대학원은 다른 전공을 선택하는 경우를 종종 봐왔고, 몇몇 학생들은 “개발이 재미가 없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여학생들은 이공계 중 화학·생명 분야에 편중돼 있고 전기·전자·소프트웨어 쪽은 많지 않아요. 바이오 전망도 밝기는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전기·전자·소프트웨어 분야의 인재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그는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서 여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IT 등 프로그램이 많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이런 프로그램들이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IBM이나 아마존에도 여성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하면 왜 여성에게만 특혜를 주냐고 하거든요.”

그는 캘리포니아공대(칼텍)가 공대 중 톱1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데 여학생수가 남학생수보다 많다는 점에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또 어느 학교를 가도 ‘우먼스 나잇’ 행사가 있다는 점 등을 볼 때 결국 “여성을 키워야 나라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출산·육아로 인한 여성들의 경력단절 문제도 극복해야 할 숙제이다. 특히 밤샘근무가 많아 개발 쪽 여성 인력들은 경력단절 이후 복귀를 아예 단념하는 경우도 많다. “개발 일이 아이를 키우며 병행하기 힘들면 컨설턴트를 할 수도 있어요. 다만, 이공계 여성인력이 컴백하려고 할 때 그에 맞게 재교육할 수 있도록 정부 등에서 지원하는 게 너무 중요해요.”

WISET은 이를 위해 삼성 HR 전문기업 멀티캠퍼스와 지난 9일 업무 제휴를 맺고 경력 단절 이공계 여성에게 e-러닝 무상 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 그는 또 여성들의 재택근무가 가능한 환경도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택근무가 본격화된다면 여성 경력단절 문제도 극복할 수 있어요. 미국에는 재택근무하는 회사도 많고, 한 회사는 전 세계 직원이 1000명 정도 되는데 사무실이 어느 나라에도 없고 온라인으로 연결돼 일을 해요.”

WISET은 또 여학생들이 이공계로 진출하도록 격려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중·고등학생들도 직업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선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자가 무슨 과학을 해’ 이런 편견이 남아 있거든요. 유아나 초등학교 여학생들도 과학 콘텐츠를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는 네트워크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우연한 기회에 보안에 발을 내딛게 됐다. 미국 현지 리쿠르팅을 통해 삼성SDS에 입사했는데 그에게 전공과 무관한 보안 업무가 맡겨졌다. 그는 5년 여 동안을 부장으로 근무한 후 대기업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중소기업으로 이직을 했다. “기술 개발에만 국한되지 않고 기술 지원도 하고 영업, 마케팅까지 다 해보고 싶었어요. 그 후로 시큐어소프트에서 5~6년, 파수닷컴에서 12년을 부사장으로 일했어요.”

그도 딸, 아들 두 아이를 가진 엄마였는데, 아이를 데리고 회식 자리에 참석할 정도로 일이든 회식이든 열심이었다. 회사에서 일하고 집에 가면 엄마 역할을 해야 하니 체력을 기르는 데도 항상 신경을 썼다. “사실 일이 힘들면 사표를 써야지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퇴근 후 아이들을 돌보다보면 다 잊어버리고 아침에 ‘다시 잘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의 학교에는 1년에 한번 찾아가는 게 고작이었다. 그때 마다 “자주 못 오고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 문제가 있으면 불러달라”고 항상 선생님께 부탁했다.

“저는 아이들에게도 자기 환경에 알아서 적응하고 문제가 있으며 스스로 해결하며 살도록 가르쳤어요. 제가 둘째를 낳았을 때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했거든요. 데려다주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1학년 딸이 혼자서 학교를 다녔어요.” 그는 자신이 1년 뒤에 죽을지, 5년 뒤에 죽을지 사람일은 모르는 건데 아이들이 언젠가는 혼자 결정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해왔기 때문에 아이 혼자서 답을 찾도록 유도했다. 아이들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기회들을 알려주는 조언자 역할만 해왔다. 그 결과, 지금은 주변에서 “아이들을 잘 키운 모범답안”이라는 평가를 많이 듣는다.

“요즘 아이들은 엄마가 많은 것을 다 해결해주잖아요. 그래서인지 대학교 2~3학년 학생들에게 졸업 후 뭘 할지 물으면 ‘모르겠어요’라고 답을 많이 해요. 아이들의 삶이 그들의 라이프이지 엄마들의 라이프가 아니거든요. 그렇게 생각하고 키운다면 아이들은 충분히 스스로 잘 자라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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