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친구야?” 재희와 내가 친구인 것을 처음 안 사람은 십중팔구 놀란다. 언뜻 보면 우리는 너무 다르다. 그는 미인이기도 하거니와 옷차림새가 워낙 화려하고 특이해서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눈에 확 뜨인다. 모자는 필수고 저런 건 어디서 구했을까 싶은 신기한 옷, 반짝이는 손톱에, 용케 걷네 싶은 구두까지 수시로 바뀌는 그의 패션에 무난함이란 없다. 나이 들어 구두만 다소 낮아졌을 뿐 멋 내는 건 여전하다. 반면에 나는 예나 지금이나 약간의 히피 취향을 빼곤 오늘이 어제 같은 무난한 것만 걸치고 다닌다. 교수가 점잖지 못하게 운동화 신고 다닌다고 ‘운동권’이라고 한 동료도 있었다. 운동화도 규범에 벗어나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는 패션 취향 때문에 오해도 심심찮게 받았다. “페미니스트 맞아?” “시민운동가가 왜 저러는 거야?”하고 은근히 의심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의 진심을 아는 나는 그런 오해가 속상했는데, 그는 꿋꿋하게 개성을 지켰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의 패션을 취미생활이자 예술활동으로 인정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래, 페미니스트도 다양해야지, 모두 똑같으면 재미없잖아. 빨주노초파남보가 다 있는 게 좋지!

처음 몇 년간 또래 한국 친구가 없어 유학생활이 외로웠던 내게 재희는 3년 만에 나타난 동갑내기였고, 처음 만난 날 우리는 친구가 될 것을 직감했다. 그는 여러모로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게 좋았다. 온화한 성품 안 어딘가에 엉뚱한 재치와 관습을 거부하는 힘이 있었다. 요리는 적성이 없고 개발할 생각도 없다고 했는데, 1970년대에 그렇게 대놓고 요리하지 않겠다는 한국 여자는 본 적이 없어서 상당히 통쾌했다. 과연 결혼할 때도 부엌을 책임지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는데, 그래도 좋다는 사람과 결혼해서 수십 년째 잘살고 있다. 먹고 사는 것을 남의 서비스에만 의존할 수는 없으므로, 살다 보니 아주 안 하지는 못하더라만. 그런 한편, 그는 너그러운 마음과 부드러운 리더십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논리가 비상해서, 여럿이 모여 토론을 하면 흐름을 파악하고 타협을 도출하여 결론을 잘 이끌어낸다. 다양한 면모를 알고 보면 멋진 친구요, 매력 있는 페미니스트다.

세월과 함께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살며 여러 고비를 넘었고, 그때마다 친구가 옆에 있는 것이 힘이 되었다. 내가 병으로 고생하는 동안, 그는 몇 시간씩 걸려가며 꾸준히 나를 보러 왔다. 그런 날엔 오늘은 무슨 이슈를 가지고 오려나, 또 어떤 설치미술을 한 모습으로 나타나려나 하고 아침부터 기다린다.

얼마 전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라는 재미난 제목의 책이 나왔다. 결혼하고 아이 낳아 키우면서 일상에서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젊은 여성들이 모여서 낸 책이다. 가부장제의 가치관에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제목을 그렇게 역설적으로 달았을까.

패션이나 결혼여부는 말할 것도 없고,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갈등을 만들어내는 이념, 종교, 인종, 계급의 차이도 넘어서 연대할 수 있는, 연대해야 하는 것이 페미니즘 아닌가? 여성운동은 그런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왔고 훌륭하게 진전했다. 요즘 일부 미디어는 여성들이 겪으며 사는 폭력적 현실은 묵과하고,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적 언사만 옳다구나 부풀려 보도하면서 대중적 비난을 유도하려 한다. 윗세대와도 갈라놓으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그런 편 가르기 시도를 비판한다. 서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때로는 다름에 신선하게 감탄하면서, 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접점과 연대를 이어갈 수 있다. 페미니즘은 무지개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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