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앞세워 ‘주머니 채우기’
‘명분’ 앞세워 ‘주머니 채우기’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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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향미>

한 교과서 집필위원장은 00학원의 교육방식이 공교육이 할 수 없는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며 그 우수성을 홍보하고 있다. 2002년 4월 현재 전국에 56개 지사를 가진 0학원의 그 해 4월 3일자 홍보지에는 현재 교과서 집필위원장인 교수와 인성교육 분야 교육부장관 자문위원을 역임한 교수의 다음과 같은 홍보 문안이 실려 있다.

…00처럼 공교육이 제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을 사교육이 채워줄 때 우리의 교육은 보다 충실해질 수 있습니다. 00처럼 대한민국 사교육의 모범이 되어 보다 많은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학교교육의 현실은 암기를 위한 암기 수준을 넘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는 교실에서는 지나치게 많은 학생들의 사고작용을 일일이 관찰하고 나아가 적절한 피드백(feedback)을 주는 장치가 전혀 마련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00이 실천하고 있는 소집단 토론학습은 이러한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면서 아동의 사고력을 신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합니다.

공교육 제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위의 두 교육 전문가의 주장은 ‘공교육은 모범적인 사교육의 도움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공교육에는 교사와 학생, 학생들간의 적절한 피드백 장치가 마련되고 있지 않으며 이 같은 문제는 사교육에서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여기서 교과서 집필에 중요하게 관여했거나 관여하고 있는 전문가들은 사실상 공교육의 교육적 기능 마비를 선언하면서 영리화된 사교육이라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철학교실, 언어교실, 수학교실, 교과교실, 이데아교실, 유아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이 학원의 토론 수학은 주 1회 7만원이며 000수학교실은 주 2회 13만 2천원(수강비 12만원, 교재비 7천원, 교구 활동비 5천원)이다.

사교육과 전문가의 결합, 그 의미는?

영리화된 사교육과 교육 전문가의 결합은 이제 사교육 관련 광고에서 쉽게 관찰된다. 국내외 우수 대학 출신의 박사, 교수들은 학원교사 교육을 직접 맡거나 자문교수단 식으로 사교육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교수의 연구소는 다음의 사례처럼 특정 학원의 교사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생명을 살리는 000교수 수학교육연구소’에서는 청출어람의 뜻을 되새기며 ‘생각하는 활동수학’ 프로그램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교사교육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논술과 같은 경우는 박사과정 중 대학강사들은 물론 문화평론가들도 논술학원 강사를 겸임하고 있으며 이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사교육과 한국의 최고 전문가들의 결합은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교과서 집필위원장이 수학도 토론 수업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것은 시대 변화에 따라 요청되고 있는 교육방식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수학이 토론식 수업이 돼야 한다면, 국어·사회와 같은 수업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의무교육이라는 공교육에서는 이것이 정녕 불가능한 것일까? 공교육에서 새로운 시대 변화가 요구하는 교육내용과 방식을 수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토론은 부재한 채 전문가들이 사교육의 손발이 돼주고 있는 현재의 방식으로 우리는 백년지대계의 교육 역량을 쌓아갈 수 있는 것일까? 공교육이 수용하지 못하는 교육내용과 교육이 없다면 의무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교사 키울 전문가는 어디에

그래서 모범적 사교육이라도 키워야 하는 것이라면, 이를 지속적으로 키우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초등학교에서는 노는 것을 희생하고 토론수학 학원을 다닌다고 하지만, 지금과 같이 외국보다 3∼4년 앞서는 진도로 토론수학을 한다는 게 도대체 몇 학년까지 가능한 일일까? 논술교육은 어떤가? 아이들이 다른 사교육 학원을 가느라 밤 10시가 돼서야 시작해서 밤 12시가 돼야 끝나는 논술학원을 다니면서 논술과 토론이 요구하는 사고력, 어휘력, 협동적 대화술을 키워 가는 건 가능한 일인가? 지속적인 토론 수업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런 요인들에 대해서는 왜 전문가들은 함구하고 있는 것일까? ‘서울초등토론교육연구회’는 3년 전 뜻 있는 교사 몇 명이 모여 만든 국내 최초의 토론교육 관련 교사모임이다.

이 연구회의 세미나에 참여한 교사들은 초등학교 3학년 한 반 아이 전체를 데리고 토론 수업을 월 2회 진행한다. 공교육에서도 희망이 엿보이는 장면이다. 우리의 토론교육은 미국·영국보다 100년, 일본보다 50년 늦었다는데, 왜 토론교육을 위한 노력이 교사들의 동아리 수준에서만 진행되고 정책 차원, 그리고 사범대학 교육과정 차원에서는 고려되고 있지 못하는 것일까? 이러한 고려에 대해 연구를 해주고 교육 현장에서 필요한 교육 역량을 길러주는 교과과정을 만들어 교사를 길러내 줄 전문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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