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뛰고 남편은 박수치고

15km 도전하는 채영옥씨와 자원봉사하는 남편 김웅씨

~23-1.jpg

“아내가 뛰는 동안 저는 열심히 응원할 겁니다.”

제 3회 여성마라톤대회 15Km코스에 도전한 채영옥(46)씨 남편 김웅(49)씨의 힘찬 결의. 대회에서 직접 뛰지 않는 그가 채씨를 응원하는 방법은 단순히 “여보 잘해” 수준은 아니다. 그도 분명 마라톤에 참가한다. 채씨와 조금 다른 방법을 택했을 뿐.

“지난해 여성신문에서 주최한 아줌마마라톤대회를 신청했다가 집에 일이 생겨 뛰지 못했어요. 다행히도 올해는 뛸 수 있죠. 참가 신청을 하면서 남편에게 물었어요. 나는 여성마라톤대회에서 뛸게, 당신은 자원봉사 해줄래?” 채씨의 제안에 남편은 쉽게 “물론이지”하고 대답했다. 김씨도 뛰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5Km는 여성만 뛸 수 있어 도전할 수 없었고 평소에 하프 코스를 많이 달린지라 5Km는 좀 재미없을 거 같아서요.” 안 그래도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던 차에 자원봉사로 아내와 그날을 같이 보낼 수 있어 즐겁다는 김씨의 웃음이 포근하게 다가온다.

채씨 부부는 동네가 알아주는 잉꼬부부. 함께 꾸준히 운동하는 모습 때문이다. “마흔을 넘기면서 아내와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처음에는 동네에 있는 만석공원에서 한 3년 정도 베드민턴을 같이 했어요. 그러다 막내동서가 달리기를 권하길래 달리기를 시작했죠. 공원이 꽤 넓어서 뛰는 코스로 좋거든요.” 저녁 7시 경. 운동복을 입고 집에서 나오는 채씨 부부를 보면 동네사람들은 “저기 잉꼬부부 또 간다”며 놀림 반 부러움 반 석인 이야기를 자주 던진다고. 그래도 시간이 좀 흐르니 만석공원에서 함께 뛰는 부부가 조금씩 생겼다니 다 이들이 뿌린 씨앗이다.

이렇게 달리기를 시작한 채씨 부부는 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애정도 더 깊어졌다. 특히 남편 김씨는 달리기를 한 후로 ‘아주’ 가정적인 사람이 됐다. “일주일에 3~4일 이상은 함께 뛰기 때문에 술자리를 저절로 안 하게 됐어요. 부부모임을 하나 하고 있는데 나갈 때마다 마라톤을 하면 사랑이 깊어진다는 식의 자랑을 해요. 친구들이 ‘저 놈 이 모임에서 빼 버릴까’하며 부러워 할 정도로 마라톤 예찬론자가 됐죠.” 가끔 술자리를 덜 하는 자기한테 서운해하는 직원들도 있지만 그래도 건강과 가족사랑을 모두 가질 수 있는 마라톤을 멈출 수 없다고 김씨는 강조한다.

채씨 부부가 제일 먼저 참가한 대회는 2000년 이천에서 열린 도자기마라톤대회 5km코스. 이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자신감을 얻은 둘은 이후에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마라톤대회를 놓치지 않았다. 대회 검색은 주로 채씨의 몫. 여태까지 참가한 대회만 총 11개며 4월에도 두 대회에서 뛰었다. 특히 채씨는 제 4회 충주국제마라톤대회에서 여자 40대 이상에서 1등을 할 정도로 마라톤 기량이 뛰어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모든 대회를 언제나 함께 뛰었다는 것.

“대회에 나가면 언제나 같은 코스를 같이 뛰었어요. 항상 이야기하면서요. 남들이 우리를 추월하든 말든 거기에는 관심이 없죠. 함께 뛰는 그 시간을 즐기니까요.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시간도 돼구요. 그래서 힘든 줄 몰라요.” 채씨의 소박한 자랑이다. 그러면서도 “이번 대회에서 3등 정도는 하지 않을까요? 이왕 뛰는 거 잘 하면 좋겠죠.” 하며 솔직하게 털어놨다. 근본적인 욕심은 어쩔 수 없나보다. 달리기에 자신은 있지만 조금 걱정도 되는 채씨. “긴 거리에 익숙해진 사람이 단 거리를 뛸 땐 오히려 불리해요. 장거리에 맞는 몸으로 다져져 있어서 초반에는 천천히 뛰게 되거든요.”

채씨 부부는 남편인 김씨가 쉰이 넘기 전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는 게 목적이다. “지천명의 나이 전에는 풀코스를 뛰어야 하지 않겠어요? 쉰이 넘으면 좀 어렵지 않을까 해서요. 꼭 아내와 함께 풀코스를 뛰고 싶거든요.” 김씨의 말에서 그의 마라톤과 아내에 대한 짙은 애정이 엿보인다.

채씨 부부에게 마라톤은 부부가 함께 하는 취미 가운데 하나. “지금 중학교에 다니는 막내아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고향인 해남에 내려갈 생각이에요. 거기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생각이죠. 그 때를 대비해 아내와 같은 취미를 많이 가지려고 노력했어요.” 마라톤 말고도 난 키우기, 서예 등 이 부부가 함께 나누는 취미는 여러 가지다. 서로 취향이 비슷하다고 말은 하지만 그렇게 비슷해진 것도 서로 이해하고 노력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아내와 뛸 수 있는 건 가정이 화목하기 때문이죠.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이 많이 있다면 매일 이렇게 뛰는 것도 어려웠겠죠.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달렸으면 해요. 달리다보면 어느새 행복해진 가정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최고의 가족 나들이 코스죠”

지난해 이어 두번째 참가하는 윤하연씨 가족

@23-2.jpg

여성마라톤대회 시작을 알리는 순간부터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낸 가족이 있다. 바로 이 대회용 팜플렛과 여성마라톤대회 홈페이지(http://woman.4run.co.kr)에 표지모델 격으로 등장한 윤하연(37)씨 가족이다. 도대체 누구길래?

“지난해 아줌마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이후 별다른 생각 없이 지냈어요. 그러다 우리 가족 사진이 나온 걸 보고 좀 놀랬죠. 특별한 것도 없는데….” 윤씨는 못내 쑥스럽다는 듯이 말한다. 그러나 아빠의 무등을 탄 딸과 엄마의 손을 잡고 있는 아들, 그리고 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담긴 장면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왜 이 가족이 표지모델이 됐는지 금방 알게 된다. 궁금한 사람은 당장이라도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자.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 마라톤대회를 적극 권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대회를 앞두면 평상시에도 운동을 하면서 조금씩 자기 몸을 관리하게 된다는 거였죠. 대회가 끝나도 자기 반성을 할 수 있어 무조건 좋다면서요. 그래서 가족이 함께 갈 수 있는 대회를 찾다가 아줌마마라톤대회를 알게됐어요.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참가한 마라톤 대회였죠.” 윤씨가 말하는 여성마라톤대회의 전신인 아줌마마라톤대회에 참가했던 이유다.

작년 대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얼까? “아빠 무등 타고 달린 거요.” 딸 가은(6)이의 똑 부러진 대답에 이어 아들 주현(9)이는 “힘들 때마다 자원봉사자들이 박수치는 모습이 재밌었어요. 그 사람들 덕분에 힘도 많이 얻었구요”하며 그 날을 되새겼다. 어른들 대답도 안 들을 수 없다. “마라톤대회라기보다는 하나의 축제 같았어요. 재미있는 행사도 많아서 즐거웠어요.”윤씨의 회상도 역시 ‘재미’. 남편 이광표(38)씨도 비슷하다.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하나의 레크레이션 장이었어요. 끝나고 나서 가족이 공통된 만족을 느낄 수 있어 좋았구요. 거기다 건강에도 도움이 되니 얻을 게 많았죠.” 야외로 놀러나가면 뻔한 스케줄을 따라가게 되지만 마라톤 대회는 다양한 것들을 느낄 수 있어 가족 나들이 시간으로 만점이라는 이씨의 평가.

윤씨 부부는 지난해 함께 살고 있는 어머니·아버지를 대회 장소에 모시고 가지 못했다. 괜히 힘드시지는 않을까 걱정이 돼서였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3km 정도면 어르신들한테도 무리 없을 거 같아요. 더군다나 걷기니까요. 그래서 올해는 부모님도 모시고 갈 생각이에요.” 이씨의 말이 끝나자 무릎 관절이 아파 뛰는 건 어렵다는 어머니 홍사행(64)씨도 걷기라면 할 만하다며 같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즐거워했다.

지난해 2대가 함께 나와 행복한 모습을 맘껏 연출했던 윤씨 가족. 올해는 3대가 얼마나 행복한 장면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설마 내년 대회 홍보 팜플렛에도 3대가 참가한 이 가족이 표지모델이 되는 건 아닐까.

“엄마 파이팅! 응원 해요”

마라톤 처음 뛰는 허미옥씨와 자원봉사하는 아들 김한진

~23-3.jpg

“일반 마라톤대회는 남녀가 같이 뛰잖아요. 어려워 보여서 신청하기가 겁이 났죠. 어떻게든 마라톤 대회에 꼭 참가하고 싶던 차에 여성마라톤대회를 알게 돼 얼른 신청했어요.”

허미옥(34)씨가 이 대회에 참가하게 된 이유는 ‘여성마라톤대회’ 이름 그대로 여성이 중심이 되는 대회였기 때문. 마라톤을 하고 싶었던 허씨의 소원을 여성마라톤대회가 풀어준 셈이다. 그는 15km 코스에 도전한다.

허씨 덕분에 그의 아들 한진(11)이도 난생 처음으로 마라톤대회에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게 됐다. 바로 자원봉사로 이 대회에서 한 몫 하기로 한 것.

“제가 자원봉사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한진이에게 물어봤어요. 처음에는 별로인 것 같더니 나중엔 해보겠다고 하더군요.” 혹시라도 엄마가 강요(?)했을지도 모르니 한진이에게 직접 물어봤다. “운동은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엄마랑 함께 뛰지 못해 아쉽지만 자원봉사 일도 해볼 만 하다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귀찮을 거 같다는 생각도 조금은 들지만 사람들이 잘 달릴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일이 기억에 남는 경험이 될 거 같아요.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겠어요.” 출발은 엄마의 권유 때문이었지만 한진이 나름대로 다부진 기대감을 갖고있다.

허씨는 대회가 다가올수록 조금씩 걱정이 된다. 마라톤대회가 처음이거니와 최근에 달리기를 꾸준히 하지 않았기 때문.

“서울 노량진에 살 때는 근처 공원에서 새벽과 밤에 한 시간 이상 뛰고는 했어요. 새벽에 어스름이 떠오르는 여명과 저녁에 노을과 함께 떠 있는 새털구름을 볼 때가 가장 행복했죠. 그 당시에는 일을 안 했기 때문에 뛰는 시간이 자유로웠죠. 그런데 안양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