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으로 읽는 그림책] 밝고 빛나는 내가 바라던 바로 그 모습
[페미니즘으로 읽는 그림책] 밝고 빛나는 내가 바라던 바로 그 모습
  • 윤정선
  • 승인 2019.05.12 09:00
  • 수정 2019-05-10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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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빨간 나무』 숀 탠 글·그림
우울하고 절망스러운 감정
세밀하게 그려내
유리병 속 웅크린 아이
가부장제 아래 오랜 세월
억압당한 여성 모습 겹쳐져
『빨간 나무』에 등장하는 아이가 유리병 속에 들어가 얼굴에 투구를 쓴 채 웅크린 그림은 마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이 그 누구하고도 (이해받지 못해서) 나누지 못하는 내면의 묵은 감정들을 존재 자체로 표현해낸 것만 같다. ©풀빛
『빨간 나무』에 등장하는 아이가 유리병 속에 들어가 얼굴에 투구를 쓴 채 웅크린 그림은 마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이 그 누구하고도 (이해받지 못해서) 나누지 못하는 내면의 묵은 감정들을 존재 자체로 표현해낸 것만 같다. ©풀빛

심리상담가 미리암 그린스팬(Miriam Greenspan)이 쓴 책 『감정공부』을 보면, 여성의 감정에 관한 아주 유의미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것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타인의 감정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교육받는 여성들이,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정반대로 행동할 것을 강요당한다는 논지다. 어렸을 때부터 ‘남성다움(?)’을 맹목적으로 따르며, 그 남성다움이 감정적이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스스로의 감정을 억압하고 감정표현에 인색한 남자들과는 다른 양상의 감정분열일 터.

그렇다. 아무리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즉각적으로 분노를 표현하지 않고, 참고 인내하며 얼굴에 미소를 띠는 여성의 이미지는, 가부장제의 사회에서 여성의 훌륭한 덕목으로 오랫동안 여겨져 왔다.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시하고 화를 드러내는 것은, ‘여성스러운(?)’ 여성과는 도통 어울리지 않은 성정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다. 또 그런 여성들을 가리켜 ‘나쁜 여자’라는 등식이 암묵적으로 통용되어 왔기에,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감정억압을 더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림책 『빨간 나무』에 나오는 아이도 감정을 억압한다. 아이가 유리병 속에 들어가 얼굴에 투구를 쓴 채 웅크린 그림은 마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이 그 누구하고도 (이해받지 못해서) 나누지 못하는 내면의 묵은 감정들을 존재 자체로 표현해낸 것만 같다.

“때로는 하루가 시작되어도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합니다”라는 절망스러운 고백으로 시작하는 그림책 『빨간 나무』는 점점 더 깊은 우울로 가라앉는 아이의 내면을 다채로운 상징으로 그려내고 있다. 절망은 거리를 지날 때 거대한 ‘괴물물고기’가 되어 아이를 덮쳐오지만, ‘귀머거리 기계’처럼 아이의 마음을 전혀 듣지 못한다.

때로는 기다리고 기다리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모든 일은 한꺼번에 터집니다”란 구절은 거대하게 터져버린 홍수에 작은 조각배에만 겨우 몸만 의지한 아이가 너무도 불안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의 우울이 깊어질수록, 세상은 거대한 괴물 물고기로, 엄청난 홍수로, 끝도 없이 이어진 귀머거리 기계로 표현되고, 그것은 곧 아이가 느끼는 절망의 크기와 비례한다.

『빨간 나무』 속 한 장면. ©풀빛
“밝고 빛나는 모습으로 내가 바라던 바로 그 모습으로” 울창하게 자란 빨간 나무는 바로 아이의 방에 있었다. ©풀빛

실제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절망은, 아이가 스스로를 더 작고 왜소하게 느끼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마치 갑자기 둑이 터져버리듯, 많은 여성들이 억울함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꾹꾹 마음속에 담아두기만 했다가 중년 이후에 화병이 들어서 터져버리는 경우를 흔히 보지 않는가?

그래서 바닥까지 가라앉는 감정은, 내 안의 근원적인 상처를 보라는 신호다. 그림책에서 아이가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헤매는 모습이 다시 길을 찾고 싶은 삶의 의지로 다가오는 이유다.

다시 그림책의 첫 장으로 돌아가면,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난 아이의 얼굴은 무표정하게 가라앉아 있다. 작은 방안을 수북하게 채운 죽어 말라비틀어진 검은 나뭇잎들처럼. 그런데 마지막 장면이 그야말로 반전이다. 그전까지 우울의 바닥에서 허우적대던 아이가 온통 환희에 찬 얼굴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밝고 빛나는 모습으로 내가 바라던 바로 그 모습으로” 울창하게 자란 빨간 나무는 바로 아이의 방에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림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빨간 나무가 아이를 집요하게 따라다녔단 사실이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침잠해 들어갈 때에도 아이를 늘 따라다녔던 작은, 빨간 잎이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그림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무의 빨간 잎은 숨은 그림자처럼 옆에서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무는 예로부터 영적인 존재로 신성시되어 왔다. 특히 여신은 ‘신성한 나무’로 비유되곤 했었다. 신화에 나오는 신이 대부분 남자 신들로 오랫동안 남성 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작용해왔지만, 인류 최초의 신은 분명히 여자였고, 그것을 기억하는 일은 여성 안에, 빨간 나무, 곧 여신이 존재한다는 말일 터. 원초적인 생명력을 지닌 채 자신을 긍정하는 빨간 나무의 여신은 여성들 내면에 근원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심리분석학자 클라리사 에스테스는 야생동물인 늑대와 여걸(女傑)이 둘 다 멸종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하며 야성을 잃어버린 여성은 마치 멸종 위기에 처한 늑대와도 같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야성적인 본능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본능은 세상에 길들여지는 것을 거부한 채 자신만의 삶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늑대와 닮았다. 하지만 가부장제 사회는 오랜 세월 동안 전통과 관습이란 명목으로 여성이 본래부터 간직한 자유롭고 강한 본능을 터부시 하며 억압해왔다.

그래서 우리는 끝없이 빨간 나무를 찾아내고 발견해야 한다. 그 어떤 고통 속에서도 여성들을 따라다니며 바라보기를 멈추지 않았던 빨간 나무를! 그것은 여성들 안에 본래 존재했지만, 가부장제의 오랜 억압으로 퇴색된 생명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여정일 것이다.

그림책 『빨간나무』 숀 탠 글·그림 ©풀빛
그림책 『빨간나무』 숀 탠 글·그림 ©풀빛

윤정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공연을 만들어 올리는 작가다. 독서치료사로서 10년 넘게 그림책 치유워크숍 활동을 해오고 있다. 페미니즘 관점에서 바라보는 문화예술 비평 작업도 활발하게 하고 있는데, 주요 저서로는 『조금 다르면 어때?』 『팝콘 먹는 페미니즘』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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