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W Report]
“나는 페미니스트”
외치는 20대 여성들
의제 발굴 등 활동 토대로
국제무대서 다양한 경험
가질 수 있는 기회 필요

일본 YWCA가 주최한 부대 행사 ‘Young Feminist Movement in Japan’. ©이재정
일본 YWCA가 주최한 부대 행사 ‘Young Feminist Movement in Japan’. ©이재정

한국이 일명 ‘버닝썬 사건’으로 들썩이던 그때, 한국의 여성운동가들 일부는 뉴욕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유엔 세계여성지위위원회(UN CSW)에 참여하기 위함이었다. 이른바 ‘정준영 사건’ 사건도 뉴욕에서 뒤늦게 접한 우리는 뉴욕 체류 기간 내내 아침이면 전날 한국에 보도된 기사들을 찾아보고, 잠들기 전 사건들에 대해 토로하며 일정을 보냈다. 하지만 남성 연예인들의 이러한 행각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지난해 #미투 운동 속에서 여성들이 온라인에서, 거리에서 외쳤던 발언들과도, 최근 검찰 과거사위원회로 다시금 대중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고 장자연 사건’, ‘김학의 사건’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UN CSW에 참여한 한국의 여성운동가들은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가진 한국의 성차별, 성폭력 문제에 대해 전 세계에 알렸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은 한국과 아시아 국가들의 여성운동 현황을 공유하고 소개하기 위해 뉴욕 유엔본부 인근 행사장에서 NGO 포럼이벤트를 개최했다. 필자는 “한국의 #미투 운동은 현재 진행형이다”를 주제로 한국의 #미투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한국의 #미투 운동이 갑작스레 등장한 것이 아니고 과거부터 여성들이 어떤 말하기와 운동을 이어왔는지, #미투 운동에 연대해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얼마나 가열차게 싸워왔는지에 대해 발표했다. 영어를 수월하게 하지 못하는 터라 준비된 영어 대본을 더듬더듬 읽는 수준이었지만,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미투 운동을 소개하는 중책을 맡은지라 긴장을 많이 했다. 그 노고를 이해한다는 듯 참여자들이 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줘 무사히 발표를 마칠 수 있었다.

막상 뉴욕으로 떠나기 전까지는 이 기회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실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발표를 마치고, 다른 행사에도 참여하면서 점차 실감하게 되었다. 좀 더 잘할 걸, 다음 번엔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지난 해 미투운동을 담당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미투운동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단체에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처럼 소중한 기회들이 새로운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에게 좀 더 많이 주어졌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3월 11일(현지 시간) 뉴욕 공립도서관 앞 아쿠아룸에서 유엔 여성지위위원회 부대 행사를 열고 아시아 지역의 미투 운동의 운동현황과 전략을 공유했다. ©이재정
한국여성단체연합은 3월 11일(현지 시간) 뉴욕 공립도서관 앞 아쿠아룸에서 유엔 여성지위위원회 부대 행사를 열고 아시아 지역의 미투 운동의 운동현황과 전략을 공유했다. ©이재정

UN CSW 기간에는 유엔 본부, 유엔 본부 인근에서 전세계 NGO가 준비한 다양한 주제의 이벤트가 열렸고, 여성연합 참가단은 각자 나뉘어 여러 이벤트에 참여했다. 참가하는 이벤트마다 내년도 베이징+25주년을 맞아 새로운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을 어떻게 운동의 주체로 성장시키고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세계 각국에서 페미니스트의 세대 재생산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 큰 문제라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일본 YWCA에서 주최한 ‘Young Feminist Movement in Japan’(일본의 영페미니스트 운동) 이벤트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일본 영페미니스트들은 지역별 YWCA를 중심으로 모여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는데, 7명 정도의 패널이 참여하여 ‘성산업’, ‘포르노 산업’, ‘CHIKAN(성희롱)’ 등 각 의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이들은 ‘This is our voice. What is your voice?’라는 코너를 통해 참여자들과 각자의 경험을 나누고, 자신들이 페미니스트가 된 이유에 대해 소개했다. 태어날 때부터 페미니스트였던 것 같다는 사람부터 일본 유학을 왔다가 일본 문화에 충격을 받고 일본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하게 되었다는 사람까지 다양한 개인들의 경험이 공유되었다. 참여자들도 새로운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이 많았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밝고 유쾌해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일본 영페미니스트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에서 싸우고 있을 ‘영영페미니스트’들이 생각났다. 한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세대, 지역을 아울러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의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나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새로운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한국 사회의 성평등 현안에 대한 인식조사’에서는 20대 여성 10명 중 4~5명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인식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들은 필자처럼 기존의 여성단체에 상근 활동을 하기도 하고, 직접 단체를 만들어 새로운 의제를 발굴해내기도 하며, 대학, 문화예술계 등 각자가 놓인 공간에서 페미니스트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나가고 있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운동을 이끌어가게 될 이들에게 좀 더 많은 기회와 자원이 주어져 일본의 영페미니스트들처럼 국제무대에서 각자의 의제와 고민을 발표하고, 전 세계 여성운동의 경험을 공유하고, 다양한 국가의 여성운동가들과 네트워킹하는 경험이 주어지길 기대한다. 베이징+25주년을 맞이하는 UN CSW가 기대하는 것도 이런 것이지 않을까.

이재정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
이재정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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