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만화경] 공정무역이 일상인 세상
[커피 만화경] 공정무역이 일상인 세상
  • 박우현
  • 승인 2019.05.10 08:44
  • 수정 2019-05-10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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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민이 공정무역 확대에 동의하는 서명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한 시민이 공정무역 확대에 동의하는 서명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출판사 대표이자 커피 전문가인 박우현 씨가 커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우연한 기회에 공정무역 커피 개발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커피의 매력에 푹 빠진 후, 커피와 사회문화 접점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공정무역은 빈곤한 나라들을 도와주되, 돈이나 식량으로 원조를 하기 보다는 거래를 통해 그들 나라가 경제적 자립이 가능하도록 하게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을 살펴보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있다. 커피나무가 자라지 않는 유럽에 커피가 전파되자 유럽인은 커피의 본산인 이슬람 문명권에서 커피를 수입해와야만 했다. 처음에 커피는 대부분 아라비아 반도의 끝에 달린 예멘의 모카항을 통해 거래되었는데 당시 예멘은 커피를 통해 막대한 부를 모았다. 그러다 유럽에 대항해시대가 도래하자 유럽 여러 나라들은 저마다 식민지 건설에 열을 올렸다. 그러한 과정에서 커피 산지를 얻게 되는데 최초의 성공은 네덜란드가 식민지로 삼은 인도네시아였다.(사실은 예멘에서 커피 씨앗을 몰래 빼돌려 심은 것이다.)

유럽이 아라비아에서 커피를 수입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커피를 수급할 수 있게 되자 이슬람 세력의 커피 무역 독점권이 무너진다.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의 커피 식민지 성공을 보고 남미와 아프리카까지 이제 유럽인의 커피 전쟁이 시작된다. 문제는 유럽의 식민지에서 커피 농사를 지을 노동자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노예를 늘리는 것. 원주민을 착취해도 부족하자 이제 아프리카 사람을 강제로 잡아다 남미대륙으로 보내는데 이때부터 이미 커피의 불평등한 수급 구조가 만들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식민 국가들은 차례로 정치적 독립을 했지만 자원 수탈 구조는 개선되지 않았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미국과 소련의 양강 구도로 재편되면서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는 무한 경쟁을 심화시켰고, 이는 가난한 나라를 더욱 가난하게 만들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유럽은 미국의 독주에 제동을 걸고 싶어 했다. 공정무역이 유럽에서 시작된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정무역은 말 그대로 공정한 '거래'가 핵심이지만 여기서 보다 중요한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연결(connected)되어 있다는 자각이다. 단순히 서로 공정하게 거래하면 완성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공정한 거래는 당연한 일이지 가치를 평가받을 일이 아니다. 따라서 연결에 대한 각성이야말로 공정무역의 진정한 가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전 지구적 연결 의식은 서로 멀리 떨어진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연대감을 높인다. 이는 결국 공정무역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튼튼한 기초가 된다. 최근의 공정무역은 이미 빈곤 문제 해소를 넘어 생태 경제학, 사회학적 문제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한국에 공정무역이 처음 소개될 때 그 개념이 생소해 자선의 측면을 강조했다. 이른바 착한 소비. 처음엔 사회의 이목을 끄는데 성공했지만 공정무역의 가치가 사회 전반으로 퍼지지 못했던 한계가 따르기도 했다. 왜냐하면 선행이니까. 사람에게 선행이 일상이 되긴 어렵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공정무역 커피 소비가 생산자와 나 자신의 삶을 지속가능하게 해주는 어떤 선택일 수 있다는 생태적 입장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커피는 신맛, 단맛, 쓴맛이 공존한다. 커피는 기본적으로 열매에서 나온 것이기에 과일의 산미와 단맛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피의 쓴맛이 없었다면 커피는 지금처럼 전 인류를 사로잡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먹는 밥도 그 무미함 때문에 질리지 않고 수천 년을 먹을 수 있었던 것처럼 커피가 만약 시거나 달기만 했다면 커피체리가 아니라 그냥 체리 정도의 취급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커피의 재배 역사를 보면 막상 커피 산지에서 노동을 하는 농부들은 그 인생이 그다지 달콤하진 않았던 거 같다. 온 가족이 힘든 커피 농사에 매달리지만 그들의 삶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공정무역이 커피 농부에게 새로운 희망과 인생의 달콤함을 돌려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날이 온다면 우리들도 행복해질 것이다. 알고 보면 세상을 바꾸는 일은 의외로 쉬울지 모른다. 단지 커피 한 잔으로.

* 별걸 다 하는 출판사 ‘우주소년’ 대표. 저서로는 『커피는 원래 쓰다』가 있으며 최근에는 세계문학커피를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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