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주인공 드문 한국영화 풍토서
경찰·액션·코미디물 주연
“후배들이 롤모델이라고 해요”

44살에 첫 영화 주연을 맡은 라미란은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고 했다. ⓒCJ엔터테인먼트
생애 첫 영화 주연을 맡은 라미란은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고 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저는 계단처럼 한 단계씩 거친 케이스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후배들이 저를 보고 롤모델이라고 하더라고요.” 마흔 살이 넘은 여성 배우가 스크린에서 주연을 맡기란 쉽지 않다. 여성 주연 영화 자체가 드문 한국 영화계에서 중년에 접어든 여성 배우라면 특히 어렵다.

배우 라미란은 반대의 경우다. 전성기는 마흔 살부터였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쌍문동 치타’로 화끈하면서도 코믹한 캐릭터 라미란 역을 연기했다. ‘라미란표’ 코믹 연기를 사람들이 기억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이후 드라마와 영화, 예능프로그램까지 골고루 나선 그는 마침내 올해 스크린 첫 주연 자리에 올랐다. 9일 개봉하는 영화 ‘걸캅스’(감독 정다원)에서 전설의 형사 출신 미영으로 등장한다. 올해 그의 나이 마흔네 살이다.

그는 올해로 영화 경력 15년 차 배우다. 29살이던 2005년 ‘친절한 금자씨’(감독 박찬욱)에서 조연으로 데뷔했다. 서울예대 연극과 졸업 후 뮤지컬과 연극 무대를 돌았던 그는 20대 중반 영화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TV 드라마는 생각도 안 했어요. 영화는 하고 싶어서 프로필을 찍어서 에이전시에 보냈어요. 프로필이 돌고 돌아서 나중에 ‘친절한 금자씨’ 오디션 연락이 왔어요.”

영화 데뷔 후 올해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단역만 10여 차례 맡았다. “제가 젊은 시절부터 잘 나갔던 배우는 아닌데 오히려 그게 (후배들에게) 선례가 된 것 같아요. 더 조심스러워지고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걸캅스'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걸캅스'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그는 ‘걸캅스’에서 올케이자 형사인 지혜(이성경)와 디지털 성범죄 해결에 나선다. 영화에서 두 여성 형사가 콤비를 이뤄 주체적으로 사건을 해결해나간다는 점에서 페미니즘 요소도 포착된다. 라미란은 강하다. 액션을 마다하지 않는 ‘날아다닌’ 전설의 형사 출신이다. 극 중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특기생 출신으로 등장해 범인들과 격투를 벌인다. “(액션 신을) 하기 전에는 겁먹었어요. 좀 위험하다고도 생각했는데 해보니까 묘한 쾌감이 있더라고요. 제가 액션물이나 여자들만 나오는 버디물을 언제 또 해 보겠어요(웃음). 몸을 잘 쓸 수 있었다면 더 잘 할 수 있었을 거예요.”

작정하고 웃기려고 하지 않아도 웃음을 끄집어내는 라미란의 강점이 영화에 있다. 수사 도중 클럽 입구에서 제지당하자 “자기 호돌이라는 친구 알아?”라고 말한다. 범인을 쫒던 중에는 비범한 표정으로 전동휠을 타고 등장한다. “코믹 연기를 할 때는 연기라고 생각 안 해요. 오히려 ‘히어로 같은 모습을 보여 달라’는 주문을 받으면 캐릭터를 다시 구축해야 해요. 정형적인 연기를 안 하려고 저에게 최면을 걸어요.”

뒤늦은 전성기에 더 욕심을 부릴 수도 있을 법한데 라미란은 오히려 마음 한 편을 비운 것 같았다. “제가 예능프로그램과 드라마를 병행하면서 생각보다 제가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알게 모르게 그림자처럼 오래 연기하는 게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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