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시누이에게도 ‘애기씨’
성불평등한 가족 호칭 바꿀
다각적 공론의 장 필요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12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문과대 앞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벌써 5월이다. 5월이라고 하면, 봄의 절정, 좋은 날씨, 만개한 꽃과 함께 단연 ‘가정의 달’이 떠오른다. 가족과 관련된 법정기념일이 거의 모두 5월에 몰려 있으니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불리기에 충분하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가족 호칭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가족 호칭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른 시기부터 있어온 듯하다. 옛날 신문을 뒤지다가 ‘네 살배기 『애기씨』’라는 제목의 독자 투고를 읽게 되었다. 7남매의 맏며느리로 시집 간 친구가 나들이를 와서, 네 살배기 시누이한테 ‘애기씨’ 소리가 차마 안 나오더라고 친구들에게 푸념을 한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투고자는 ‘하녀가 아닌 바에야 동생들에게 도련님이니 작은아씨라고 부르는 것보다 이름을 부르는 것이 더 가족적이고 친근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투고자가 친구 어머니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씀드리자, 친구 어머니는 ‘그 시고 떫은 소리를 말라. 우리도 다 그렇게 살아왔어’라고 반응한다. 하지만 투고자는 가족 관계에서 거리감이 있는 호칭 때문에 불화가 초래될 수 있다면 이런 좋지 않은 풍습을 계속 본받을 필요가 있겠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자신의 사고방식이 정말 시고 떫은 생각인지를 물으며 글을 맺는다.

놀랍게도 이 글은 1966년 2월 17일 자 동아일보 독자 투고란에 게재되어 있다. ‘도련님, 아가씨’를 비롯한 성 불평등한 가족 호칭의 문제는 그 뒤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2006년 말 한국여성민우회는 가족 내 평등한 호칭 문화를 도입하자는 취지로 ‘호락호락 캠페인’을 벌였고, 2012년 최고 시청률 45.3%를 기록했던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KBS2)’은 주인공의 입을 통해 불평등한 가족 호칭 문제를 제기하여 큰 공감을 얻기도 했다. 또, 가족 내 성차별 호칭을 없애 달라는 청원은 2017년 처음 만들어진 청와대 청원 게시판의 단골 청원 메뉴이기도 하다.

1966년에도 젊은 여성들은 개선의 목소리를 냈고,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같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무려 53년이 지난 오늘도 그 목소리는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첫째, 도대체 가족 호칭이 뭐라고 지속적으로 문제제기가 이어지는가? 둘째,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진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까지도 개선되지 않는가?

우선 첫 번째 의문, 즉 가족 호칭 문제가 뭐 그렇게 중요한가 하는 것부터 생각해 보자. 누군가와 말을 하려면 상대를 부르는 말, 즉 호칭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호칭이 불편하다면 상대와 말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 말하는 것이 꺼려지면 만나는 것 자체를 피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만약 가족 호칭이 불편해서 가족과의 말하기를 꺼리고 만남을 피하게 된다면 행복한 가족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호칭에 불편함을 느끼는 쪽이 결혼을 통해 가족의 새 구성원이 되는 사람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가족 호칭의 불편함 해소가 행복한 가족의 첫걸음이 되는 이유다.

다음은 두 번째 의문, 즉 왜 그렇게 오랫동안 가족 호칭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에 기초한다. 가족 호칭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릴 수 없는 이유다. 사회적 합의가 없이는 절대로 바뀔 수 없지만, 사회적 합의만 이루어지면 하루아침에도 바뀔 수 있는 것이 언어다. 결국, 가족 호칭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남아 있는 이유는 가족 호칭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의 공유가 사회적으로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가족부가 ‘성 비대칭적 가족호칭 개선’을 2019년 시행 과제의 하나로 설정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성 비대칭적인 가족 호칭 문제는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족 관계를 이루는 데 걸림이 되고 있으며, 가족 구성원들에게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여성가족부가 가족 호칭에 주목한 것은 핵심을 잘 짚은 일로 평가해야 한다. 여성가족부는 이번 과제를 통해 우리 사회가 가족 호칭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낼 수 있도록 다각적인 공론의 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