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숙/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 회원

지난 3월 11일 국가인권위원회는 현행 호주제가 위헌이며 인권침해제도라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몇 차례에 걸쳐 UN에서도 우리나라의 호주제가 양성평등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삭제할 것을 권고하였던 점을 비추어 볼 때, 인권위의 결정은 한편 당연하면서도 수십 년째 지리한 공방 가운에 국가의 한 단체가 공식적으로 호주제의 인권침해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몹시 반가웠다.

그러나 아직도 호주제 폐지에 대해 반대하거나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러한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가정 내 남녀평등은 있을 수 없고 전통문화이기 때문에 유지시켜야 한다는 유림층과 또 하나는 이와 좀 다르게 호주제도는 단순한 문서에 불과하기 때문에 여기에 어떤 평등이나 인권의 문제와 결부시켜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자와 같이 양성평등의 이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다면 더 이상의 어떠한 설명이나 주장도 무의미하므로 후자에 대한 이야기만 하려고 한다.

현행 호주제도가 무엇인가? 호주의 정의는 ‘가의 계통을 잇는 자’라고 되어 있으며 ‘자식은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고 아버지의 가에 입적한다’고 돼 있다.

또한 민법상 가족은 ‘하나의 호적에 입적된 자’를 뜻한다. 명백히 법 규정으로도 한 가정의 계통을 잇는 사람이 호주라고 정하고 그것에 대해 아들우선으로 정했으며, 부가입적의 원칙에 따라 결혼한 여성은 시가의 가족임이 틀림없는데 여기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단순한 문서라고 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호주에게 실질적 권한이 없다느니, 예외적인 무슨 조항이 있다느니 하는 말들은 본질을 벗어난 의미 없는 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이와 반대로 만일 결혼한 남성이 처가에 입적하고 그의 가족으로 속하도록 1차적 규정을 했다면(설사 예외적인 어떤 조항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 법은 명백히 성차별적이고 부당한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 이제는 제발 호주제의 개정을 통해 얻은 몇몇 사항을 들먹이며 호주제도가 여성차별적이지 않다느니, 문서에 불과하므로 폐지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말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역시 실제론 가부장적 가족체제를 유지하고 싶은 사고방식에서 단지 겉으로 차마 양성평등 자체를 부인하지 못해 만들어낸 좀 세련된(?) 표현에 불과하다는 건 알 수 있지만 말이다.

다시 한 번, 국가인권위원회의 호주제 위헌 의견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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