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는 IMF 후 더 이상 평생직장론이 통하지 않는 세태를 탓하면서 ‘받는 만큼 일한다’는 나름대로의 직장철학을 공공연하게 펴 보이고는 했다. 어느 시중은행의 노조 임원을 한 경력도 있는 H는 최근 본의 아닌 전업주부로 돌아가 선배로서 또 다른 직장철학으로 직장 충성론을 얘기하는데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H는 충성도 높은 어느 시중은행 고참 행원이었다. 고졸 출신의 그는 소위 명문대 나왔노라는 어린 남자행원들이 목에 넥타이만 매면 실제로 경험도 없이 그저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역겨워 나름대로 여성행원들의 복지향상과 처우개선을 위해 15년간 시중·외국 은행을 거쳐 선배로서 잘 처신했다. 굳이 지적한다면 H는 노조 임원으로서 다소 강성으로 은행의 임원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아 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한국여성의 역사가 그렇듯 여성행원의 처우개선 또한 쉽지 않아 H는 결국 1년 전 은행 구조조정 대상이 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은행을 나왔다. 그러나 은행 경력이 만만치 않은 H는 곧 모 무역회사의 부장으로 발탁됐다. 연봉제 체계 아래 1년을 일해오던 H는 올 2월, 재계약 시점에 인사담당 상무로부터 재계약 불가의 통보를 받았다. 소위 H가 공공연하게 말하던 ‘받는 만큼 일한다’는 직장철학이 더 이상 효력을 잃은 것. 이 철학은 IMF 이전, 기업의 속도가 80km일 때쯤 통하던 얘기다. 대충 일하고 쉬면서도 기업·개인이 평생 한솥밥을 먹고 평생직장인으로 살아갈 때의 일이다.

애사심은 나와 회사의 자산

제너럴 일렉트릭(GE)의 경영지침에서 명문화된 내용 가운데 ‘가장 먼저 구조조정 할 대상은 받는 만큼 일하는 직원’이라는 표현이 있다. 요즘 광고 문구에서 ‘제값보다 더하는 전구’가 눈길을 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이 힘든 시기에 주는 만큼 일하는 직원들은 사방 천지에 널려있다. 천지에 널린 사람들을 두고 굳이 당신을 채용하는 기업은 분명 귀하가 제값보다 더 하기를 기대한다고 생각하면 틀림없으리라.

언제나 자기가 시대의 인재인 듯 떠들던 친구들은 능력은 다소 앞지를지 모르나 사실 충성도에서 다른 임직원들보다 뒤지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충성도가 뒤지는 사람은 손님처럼 돼 결국 그들은 귀하지 않은 존재가 됨을 명심하자.

아무리 개인이 훌륭해도 자기가 있는 기업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항상 남의 떡을 바라보며 직원들을 선동하는 사람들이 전직을 거듭하다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는 것을 보게 되는 요즘이다. 직장은 나름대로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 분신인 것을 명심하라. 떠날 때 떠나되 일할 때는 일해야 한다. 애사심이 자신과 내 회사를 동시에 보호해 주는 또 다른 자산임을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어느 누가 회사를 비방하고 퇴근시간이 되면 총알 쏘듯 멋있게(?) 퇴근하고, 받는 만큼만 일한다는 사람에게 그 기업의 중책을 맡기겠는가. 기업이 CEO의 마음을 가진 임직원 두 명만 가지면 그 기업은 성공한다는 말이 있다. 기업은 더 이상 직원들의 호구나 적이 아닌 동반자다. 다시 한번 내가 일하는 회사를 뒤돌아보자.

홍승녀/ 캐리어탱고 대표 (www.careerTAN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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