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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5월 11일. 본지가 주최하는 ‘제3회 여성마라톤대회’ 참가자들은 바로 그날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열기를 기대해도 좋다. 이 날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 감독, 33)씨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황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아이들과 함께 5km 코스를 달릴 예정이다.

“요샌 일요일이 없어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지 않으면 TV 중계를 하는 날의 연속이죠.” 마라톤 계절이 되면서 황 감독은 주말이 평일보다 더 바쁘기만 하다. 올림픽 영웅인 황 감독을 사람들이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뷰 중에도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를 들어야 했을 정도. 이렇게 바쁜 일정에 치이면서도 여성마라톤대회에 참가하게 된 동기는 무얼까.

“마라톤을 보급하는 데 작은 힘이 되고 싶었어요. 특히 요즘에는 마라톤이 가족 나들이의 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죠. 여성마라톤대회 역시 가족들이 함께 하는 행사라서 참가하면 좋을 것 같았어요.”

여성마라톤대회에서 가장 긴 코스는 15km.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지금 15km 완주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황 감독은 어떤 조언을 던져줄 수 있을까. “15km는 욕심만 내지 않으면 몸에 큰 무리 없이 뛸 수 있는 거리죠. 뛰다가 힘들면 걷고 하면서 달렸으면 해요. 걱정된 나머지 무리하게 마라톤 연습을 하는 분도 있을 거 같은데요, 미리 욕심내면 경기하는 날에 아프기 쉬워요. 건강을 위해 달린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요?”

마라톤은 나와 싸우는 전쟁

마라톤을 하다가 다가오는 힘겨운 순간을 그는 어떻게 넘기는지 궁금하다. “고비가 오기 전에 이미 승부는 나게 마련이에요. 평소 훈련이 중요하죠.” 정신적인 것 이상으로 달리기 전에 달릴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황 감독의 조언이다.

“준비된 자만이 완주의 기쁨을 누릴 수 있어요. 섣부르게 도전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마라톤을 하고 나서 몸이 좋아져야지 더 아파서야 되겠어요. 적절하고 안전한 달리기를 해야 활력소가 되고 삶도 윤택해질 수 있어요. 즐거운 달리기가 돼야죠.”

황 감독의 마라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선수 생활을 끝낸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단순히 선수들을 훈련하는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학문으로도 그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고려대에서 ‘체육사’로 석사논문을 썼으며 지금은 같은 대학에서 스포츠사회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마라톤은 나와 싸우는 하나의 전쟁이죠. 대표선수 시절에는 국가 명예를 높여야 한다는 사명감도 강했구요. 그게 선수시절의 제 마라톤 인생이었어요.” 어느 대표선수인들 그와 같지 않았으랴. 그러나 그의 이름 뒤에 붙는 호칭이 ‘선수’에서 ‘감독’으로 변했듯 그의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사람들이 마라톤이 뭔지 제대로 알게 되고 그로 인해 마라톤이 널리 퍼져 건강과 즐거움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는 길을 걸어가는 게 앞으로 제가 가야할 마라톤 인생이죠. 국민과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꾸준하게 공부를 진행할 수 있는 힘도 이런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달리기 여정을 따라

황 감독의 사회에 대한 애정은 구체적인 실천으로 드러난다. 5년 전 현정화·전의경 등 다섯 명의 전직 스포츠선수들과 함께 장애인을 위한 모임인 ‘함께하는 사람들’을 만든 것. 함께하는 사람들은 장애인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활동을 하고 있다. 14∼ 15일에는 등반대장으로 장애인들과 금강산도 간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에요. 스포츠를 통해 사랑을 실천하고 국민들에게 받은 사랑도 돌려주고 싶었어요.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면 주저 없이 하는 편이죠. 단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는 일만 해요.”

그가 태어난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초곡리에는 황영조 기념공원이 세워졌으며 바르셀로나에도 그의 조형물이 서 있다. 그러나 황 감독은 우쭐하거나 특별히 자랑스럽지도 않다. “아직 제가 젊잖아요. 설계하고 만들어갈 인생이 많아서인지 나를 기억해주는 그런 공간들이 내 일로 와 닿지가 않아요.”

겉보기에는 금메달을 따던 그 때와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데 황 감독은 “매일 달리는데도 몸이 예전 같지 않죠. 점점 늘어나는 뱃살이 느껴진다니까요”하며 소박하게 웃는다.

“못 뛰는 사람이 힘들 게 뛰는 건 마라톤의 본 뜻에 어긋나요. 힘을 잡는 마라톤이 돼야지 힘을 쓰는 마라톤이 돼서는 안되죠.” 사람들이 그저 달린다는 그 자체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황 감독이다. 어떻게든 완주해야지 하는 오기로 힘들게 달리고는 무릎 관절이 아파 고생하고 뛴 후 생활에도 지장을 받는 사람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더 그렇다. 이른바 마라톤을 한 후 ‘환자’가 돼서는 절대 안 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우리 나라는 빠르게 산업사회를 맞이하면서 공원처럼 뛸 공간을 마련하는 과정이 부족했어요. 그러나 잘 둘러보면 뛸 곳은 나와요. 학교 운동장부터 시작할 수도 있죠. 특히 한강 고수부지는 세계적으로 그만한 곳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달리기에 좋은 장소예요.”

혜원 기자nanca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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