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의 울림을 통한 만남, 그리고 소통

8일 오후 예술의전당에는 2003 세계여성음악제 개막공연을 위해 전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여성음악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주목을 끄는 이들은 지휘자 아포 수(Apo Hsu)와 니콜 페이먼트(Nicole Paiement), 재미 거문고 주자 김진희, 퓰리처 상을 수상한 슈라밋 란(Shulanmit Ran)과 엘렌 타프 쯔윌리크(Ellen Taaffe Zwilich), 한국여성작곡인의 대모 이영자 교수, 한국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씨 등이다. 세계여성음악인의 이름을 대표하는 이들 중에 아포 수와 김진희씨를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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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출신 여성지휘자, 아포 수

전 세계를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있을 만큼 귀한 존재가 여성지휘자. 그 중에서도 대만 출신으로 현재 미국 미주리 스프링필드 심포니에서 상임지휘자와 음악감독으로 재직하고 있는 아포 수(Apo Hsu)다. 이번 음악제에서는 조안 타워(Joan Tower)가 작곡한 <비범한 여성을 위한 팡파르 제 1번(Fanfare for the Uncommon Women No.1)>을 시작으로 90여분 동안 아포 수가 이끄는 힘있고 간결하면서도 상상력이 넘치는 음악의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 원래 전공은 뭔가?

“국립대만대학에서 피아노 전공으로 졸업했고 도미 후 할츠 음악대학에서 콘트라베이스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찰스 브룩(Charles Bruck)에게 지휘를 사사해서 아티스트 디플로마를 취득했다.”

-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흔히들 남성의 영역이라고 인식하는데…

“그렇다. 정말 남성의 영역이다. 지휘자로서 처음 공부를 시작하던 2, 30년 전에는 더욱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도전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전문직인 의사나 변호사도 많아지고 있지만, 지휘자는 여성들이 도전하는 맨 마지막 영역인 것 같다. 여성 지휘자를 양성하는 분위기가 성숙돼 있지 못하다.”

- 음악인으로서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은?

“앞으로도 계속 여러 장르를 접목시켜 새로운 뭔가를 하고 싶고 세계적인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싶다. 그런 이유에서 이번 음악제가 나에겐 즐겁고 좋다.”

- 자신을 모델로 삼고 있는 후배 여성음악인들에게 특별히 전하고 싶은 말은?

“음악에 대한 기본지식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가능한 모든 종류의 리허설에 참여해라. 그만큼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궁금한 것은 그냥 넘어가지 말고 꼭 질문해서 해답을 찾아라.”

전자거문고 연주자, 김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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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는 한국의 거문고를 가지고 서양 오케스트라와 멋진 조화를 이루게 한다. 새로운 테크닉과 시도로 언제나 새로운 무대를 보여준다.”

이번 음악제의 개막공연에서 <거문고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Eternal Rock>를 지휘했던 지휘자 아포 수가 작곡과 연주를 맡았던 김진희씨에게 보낸 찬사다. 세계여성음악인연맹(IAWM: International Alliance for Women in Music)에서 아시아지부 이사를 맡고 있는 그녀는 22년만에 찾은 한국에서 동서양의 접목을 시도했다.

김진희씨는 지난 1989년 처음으로 전자거문고를 만들어 자연적인 전통의 소리를 기계적인 음으로 바꾸기도 했다. 전자 거문고는 거문고 여러 개가 한꺼번에 쏟아 붓는 듯한 힘을 가지고 있다.

- 서양과 비교해 봤을 때 과거 우리나라 여성음악인들의 활동은 어땠나?

“서양에서 여성음악은 정치운동으로 발전됐다. 최근 20C 접어들면서 개혁자라고 불릴만한 여성지휘자도 5, 6명이 탄생했다. 하지만 우리 쪽에서는 정치적인 운동이 될 수 없었다. 여성과 남성을 불문하고 전통음악에서는 작곡가의 실명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서양에서 말하는 ‘내 음악’이란 개념 없이 익명으로 혹은 함께 작곡을 했기 때문에 작품에 대해 논하기가 어려웠다.”

- 새롭고 독창적인 시도를 많이 하고 있는데…

“서양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나와 함께 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열심히 참여한다. 국악에서 소리의 굴림을 표현하는 ‘시김새’는 서양에서 정확하게 딱딱 끊어지는 연주기법이 아니라 동양에서만 존재하는 시간관념까지 포함하고 있다. 시김새를 오케스트라에 접목시키고 싶다. 또한 거문고도 재즈 기법을 도입해서 즉흥적인 연주를 하고 있다.”

- 이번 공연에서 선보인 <거문고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Eternal Rock>이 인상적이었다.

“Eternal Rock은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행성들을 의미하는데, 과학자들에 따르면 전환기에 이르러 뭉쳤던 행성들이 중력에서 벗어나 빠르게 각각 떨어져 나간다고 한다. 오케스트라와 거문고는 이들처럼 각각 떨어져 나가는 현대인의 사는 방법을 표현한다. 또한 악기에 시김새를 넣어서 결국은 떠돌아다녀야 하는 행성의 소리만 들을 수 있게 한다. 제목처럼 영원한 바위라는 이 곡은 이번 한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또 다른 무대에서 계속해서 이어진다.”

- 전통악기를 많이 이용하는 것 같다.

“서양악기에는 없는 장고, 박, 방울, 축을 이용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티벳, 아일랜드,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각국의 전통 민속악기를 이용해서 독창적인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다.”

현주 기자soon@womennews.co.kr

722호부터 조혜원기자와 감현주기자의 기사는 본인들의 뜻에 따라 성을 떼고 이름만 표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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