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초등학교 교장 자살사건을 둘러싼 파문이 확산되는 가운데 일부 언론이 해당 여교사와 전교조에 대한 ‘마녀사냥’에 나서고 있어 무책임한 단정 보도를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특히 사건의 불똥이 상대적으로 불평등한 처우를 받고 있는 여교사들에게까지 튈 조짐을 보이고 있어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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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전교조사무실에서 열린 보성초등학교 서모교장 자살사건에 대한 입장 발표기자회견에서 전교조 송원재 대변인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민원기 기자>

서모 교장(48)은 지난 4일 오전 10시께 충남 예산군 신양면에 있는 어머니의 집 옆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은 ‘서 교장이 기간제 여교사에게 차 시중을 강요한 후 교권을 침해하고 전교조 비하 발언을 한 데 대한 사과요구를 전교조로부터 받아왔다’는 사실을 들어 전교조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와 관련, 전교조는 지난 9일 기자회견을 통해 “교사 업무 분장에 ‘접대’라는 단어가 버젓이 명시돼 있고 유독 여교사에게만 이를 강요하는 교육계 풍토를 바꿔야 한다”며 “서 교장의 죽음은 유감이지만 자살한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전교조 전체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9일자 사설 ‘全敎組, 출발의 다짐에 오늘을 비춰보라’를 통해 “전교조가 보여온 과잉의욕과 정치적이고 비교육적인 투쟁방식, 이념화 경향과 자신만이 옳다는 식의 독선과 아집, 기득권을 부정하는 대신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이기주의 등은 교육현장에 적잖은 부정적 유산을 누적해 오기도 했다”며 전교조가 마치 이번 사건을 초래한 범인인 양 매도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앙일보 역시 8일자 기사 ‘영결식장이 전교조 성토장으로’라는 제목의 기사로 ‘전교조 죽이기’에 나섰다. 중앙일보는 “전교조 측의 사과 요구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徐교장” 등의 표현을 통해 전교조와 여교사를 죄인으로 단죄하고 있다.

이처럼 일부 언론이 사건에 대한 진상이 밝혀지기도 전에 전교조와 여교사에 대해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은 여론을 호도할 가능성이 큰 만큼 자제돼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한겨레는 9일자 사설을 통해 “정확한 동기도 드러나지 않은 자살 사건을 일부 당사자쪽이 평소 자신의 ‘눈에 가시’ 격인 특정 교육단체의 책임으로 몽땅 뒤집어씌우는 움직임은 매우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라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부 언론 무책임한 ‘마녀사냥’

여교사도 피해자, ‘가해자’ 둔갑 어불성설

사건 당사자인 진모 교사는 “부당함을 알리려 용기를 내 말했을 뿐인데 오히려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다”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은 꿈을 이루기도 전에 나의 모든 희망이 무너졌다”고 토로했다.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여교사의 차 시중은 아직도 학교내에 존재하는 과거의 낡은 관행, 권위적인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비민주적인 학교운영체계를 드러낸 것이다”며 “정확한 진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특정 개인과 단체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일방적으로 이들을 매도하는 일부 단체와 언론의 태도는 더 큰 갈등을 부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북 전교조 소속의 한 교사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글을 통해 “돌아가신 교장선생님과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히고 “그러나 지금까지 전교조가 이룩한 노력마저 일거에 비교육적이고 야만스럽게 호도하는 건 너무한 처사”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상당수 여교사들 역시 이번 사건이 여교사들의 ‘정당한 권리 찾기’에 걸림돌로 작용하지는 않을까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한 네티즌은 “어떠한 명분도 한 사람의 죽음을 상쇄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해당 여교사가 사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현 상황이 주는 무게에 짓눌려 여교사가 교장에게 차 심부름까지 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논의는 사라져버린 것 같아 아쉽다”고 토로했다.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박모씨(28)는 “전교조에 가입하는 것조차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보수적인 교육환경에서 문제의 여교사가 교장에게 사과를 요구하기까지 얼마나 힘든 심적 고통을 겪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며 “이번 사건으로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여교사들의 처우 문제에 ‘빨간 불’이 켜지게 됐다”고 밝혔다.

전교조 김미영 전국보건위원장은 “해당 여교사도 피해자인 것은 명백한 사실인데 일부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를 통해 졸지에 살인자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며 “여교사에게 차 시중을 들게 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지는 안타까운 현실을 언제까지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김 위원장은 “분위기가 엉뚱한 쪽으로 흘러가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여교사들이 어디에 가서 하소연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나신아령 기자arshi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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