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사라진 성역
젠더 프리 캐스팅에 앞서 인종 구별 않는 ‘레이스 프리 캐스팅’도

어린이 뮤지컬 ‘로빈슨 크루소’. ⓒ문화공작소 상상마루
어린이 뮤지컬 ‘로빈슨 크루소’ 공연 모습. (왼쪽부터) 아빠 역 민경찬, 로빈슨 크루소 역 이현지, 프라이데이 역 김유진, 구렙 역 신광희 ⓒ문화공작소 상상마루

지난 4월 13일 막을 올린 뮤지컬 ‘로빈슨 크루소’는 로빈슨 역에 여성 배우를 캐스팅했다. 배역에 성별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여성 배우로서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이처럼 배역 성별을 특정하지 않는 것을 ‘젠더 프리 캐스팅’이라고 한다. 기획 단계부터 배역에 젠더를 정해놓지 않거나, 젠더가 고정된 배역이라도 성별을 불문하고 캐스팅하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셰익스피어스 글로브 시어터의 미셸 테리 예술감독이 2018년 연극 ‘햄릿’, ‘뜻대로 하세요’를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연출해 주목받았다. 국내에서는 더 앞섰다. 2015년 상업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헤롯 왕 역할에 배우 김영주가 출연하면서 젠더 프리 캐스팅이 첫 조명을 받았다.

이처럼 성인극에서는 이전부터 젠더 프리 캐스팅을 시도하고 있으나 어린이극에서 이런 변화는 뮤지컬 '로빈슨 크루소'가 처음이다.

극 중 로빈슨 크루소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이현지씨는 “이번 공연에서는 로빈슨에게 성별을 따로 지정하지 않았다. 모험을 좋아하는 아이라는 것만 정해져 있는 상황이다”라고 했다. 그는 “작품에 남자 역할이 많은 경향이 있다. 나도 작품에 참여하기 위해 오디션에 지원하면 보통 여자 배우보다는 남자 배우가 더 많이 캐스팅됐다. 그럴 때 여자 배우들의 기회가 더 적다는 것을 체감했는데 이처럼 젠더 프리 캐스팅이 이뤄진다면 여배우들에게 기회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뮤지컬 ‘로빈슨 크루소’의 제작자인 상상마루 엄동열 대표는 “성장기인 어린이들에게 주인공은 특정 성별이 독차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고정관념을 없애기 위해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배우들이 무대에서 남자 배우, 여자 배우를 떠나 자신의 배역과 기량을 갖춘 전문 배우로 관객들에게 존중과 이해받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젠더 프리 캐스팅에 앞서 레이스 프리 캐스팅이 먼저 이뤄졌다. 인물의 실제 인종에 관계없이 백인 배우만을 캐스팅하는 ‘화이트 워싱’이 있었다면, 레이스 프리 캐스팅은 반대로 배역의 인종에 관계없이 캐스팅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오셀로’의 여주인공 데스데모나는 극 중 백인으로 설정돼 있지만 흑인 여배우가 이 역할을 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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