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에이프릴의 딸

에이프릴(오른쪽)은 어린 나이에 임신한 발레리아를 지지하지만 그 속에는 또 다른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엣나인필름
에이프릴(오른쪽)은 어린 나이에 임신한 발레리아를 지지하지만 그 속에는 또 다른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엣나인필름

주변을 유유히 맴돌던 공기가 어느 순간 탁하게 바뀐다. 탁해진 공기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급속도로 격해진다. 9일 개봉하는 멕시코 영화 ‘에이프릴의 딸’(미셸 프랑코)은 엄마와 딸의 부드럽고 경쾌한 관계를 기대한 이에게는 충격을 안긴다.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은 한순간에 산산이 조각난다. 영화는 “네가 원하면 대로해 줄게”라며 딸에게 버팀목이 돼줄 것 같았던 엄마의 달라진 태도를 통해 신성의 영역으로 그려진 모성이라는 그림에 흠집을 낸다.

17세 소녀 발레리아(안나 발레리아 베세릴)는 남자친구 마테오(엔리케 아리존) 사이에서 아이를 밴다. 출산 이후의 계획이 딱히 없는 발레리아 앞에 따로 살던 엄마 에이프릴(엠마 수아레즈)이 나타난다. 에이프릴은 육아에 지치고 서툰 발레리아를 대신해 아이를 돌본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 에이프릴은 마테오에게 접근한다.

살아 온 인생의 한 조각이 불만스러우면 해소하기 위한 욕망이 뿜어지기 마련이다. 엄마라고 다르지 않다. 엄마라는 틀을 깨뜨리면 한 여성이라는 존재만이 남는다. 영화는 에이프릴을 통해 엄마와 한 여성의 경계를 미묘하게 잡아당기다 한 순간 깨뜨린다. 딸의 아이를 돌보는 에이프릴의 모습은 포근함을 주지만 딸 몰래 마테오를 만날 때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 순간 영화는 불편하다. 하지만 영화는 에이프릴이 걸어온 그늘진 사연을 통해 그녀의 도발적인 행동을 무작정 비난만 가하진 않는다.

스페인 배우 엠마 수아레스의 연기가 이 영화의 묘미를 살렸다. 삶의 애환이 담긴 얼굴을 머금고 강인한 목소리를 지녔지만 때로는 한없이 도발적인 미소를 짓는 그녀의 입체적인 모습 덕택에 영화는 더욱 파격적으로 완성됐다.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표정을 가졌지만 단단한 내면을 보여주는 안나 발레리아 베세릴의 모습도 영화의 여운을 길게 한다. 특별한 배경음이 없는 이 영화에서 두 배우의 활약 속에 몰입도와 긴장감은 점점 커진다.

미셸 프랑코 감독은 이 영화로 2017년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통산 칸영화제에서만 세 번의 수상경력이 있다. 청소년 관람불가. 1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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