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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원기 기자>

수양부모 임영민씨의 아이 사랑법

“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된 동준(가명·11세)이는 임영민 씨가 수양부모로 맡아 기르는 아이다. 작년 11월 처음 임씨의 집으로 온 후 열흘 동안 단 한마디 말도 안한 채 온 몸을 이리저리 흔드는 것으로 자신의 상처를 표현했던 동준이.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마치 짐승의 웅얼거림 같던 동준이가 보통의 아이들이 엄마에게 하는 양 큰소리로 엄마를 찾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신이 나서 얘기하게 된 것이다.

잘 나가던 사업을 그만두고 목자의 길을 가는 남편 정종택 씨를 좇아 목사 사모로 살아온 임씨는 그 동안 세 아이의 수양부모 노릇을 해주었다. 그 중에서도 동준이가 가장 가슴에 맺히는 아이라고 전한다.

동준이를 데려온 후 열다섯 번쯤은 통곡을 했을 거라 말하는 임씨는 요즘 조금씩 달라져 가는 동준이가 너무나도 대견스럽고 사랑스럽다. 엄마의 가출 후 5년 동안 친척집을 전전하다 협회로 보내진 동준이는 친부의 행방도 알 길이 없는 상태. 협회에서 위탁할 가정을 수소문하다 마지막에 임씨의 품으로 오게 된 것이다. 놀랍게도 동준이는 당시 열 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기가 막혔어요. 정신적인 충격이 얼마나 인간을 망가뜨리는지 눈으로 확인한 셈이죠. 무언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똥오줌을 싸요. 그리고는 처리하는 방법조차 몰라 몰래 숨겨놓곤 했어요. 이빨은 온통 썩은 채였고 회충약이 무언지 모르는 아이는 몸이 꼬챙이처럼 말라 있었어요.”

임씨는 상처받은 아이들의 공통점을 불쌍한 척해 동정심을 유발하고, 석 달이 지나야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거짓말을 잘한다는 것이라 말한다. 임씨가 동준이를 교육시키는 데도 6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마냥 불쌍하다고 방치해두면 안돼요. 잘 살펴보면 똑똑한 아이들이에요. 이 아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처리방법을 배우지 못해 못할 뿐이에요. 잘못이 있으면 바로 알려주고 해결방법을 반복해서 습득시켜야 해요.”

동준이는 음식 탐이 심해 냉장고의 음식을 다 동낼 지경이었다. 식사시간에도 수저 사용을 몰라 손으로 집어먹어 외식을 갈 수 없을 정도였다.

임씨는 약속을 어길 때마다 동준이가 정한 벌을 주었다. 하루는 또다시 약속을 어긴 날이었다. “난 엄마 노릇을 하려고 하는데 넌 왜 자식 노릇을 안하려 하니. 너 또 다른 곳으로 갈래?” 했더니 동준이가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잘못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임씨는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꼈다고 했다.

독후감에도 이곳에서 (수양)엄마, 아빠랑 오래 오래 살고 싶다고 쓴 동준이었기에 다른 집으로 간다는 말은 가장 치명적인 말이었다. 큰아버지네서 살자고 데려간 후 사라진 친부를 기억하고 있는, 동준이는 임씨가 다시 자신을 버릴까 두려워한다. 그런 동준이를 위해 임씨는 새학기 학용품과 새옷을 장만해주었다. 남편 정종택 씨는 용돈을 줘 스스로 물건 사는 방법을 알게 하고, 웃으면 우는 얼굴이 돼버리는 아이에게 거울을 보며 하루 50번 웃는 연습을 시켰다.

임씨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동준이의 글씨다. 처음 아이의 글씨는 힘이 없어 흐릿하고 맞춤법이 엉망인 상태였다. 4학년이 된 아이가 구구단을 몰라 수학 점수를 16점 받아왔다. 누가 앉혀놓고 가르친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겨울방학 동안 임씨는 책을 읽히고 성경책의 잠언을 베껴 쓰도록 했다. 아이의 글씨는 지금 학교 담임선생님이 칭찬할 정도로 반듯한 글씨가 됐다.

동준이의 꿈은 요리사가 되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요리사가 최고로 멋지게 보이는 동준이다. 처음 왔을 때 집에서 키우는 백구를 마구 발로 차던 동준이는 이제 개똥을 직접 치우고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사랑해줄 줄 알게 됐다.

“지난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사랑 못 받고, 사랑을 주는 방법도 모르고, 사랑을 줄 대상도 없는 사람은 그 분노를 어떤 방법으로든 폭발하게 돼 있어요. 몸이 망가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신의 파괴죠.”

임씨는 이 아이들을 하늘이 내려준 천사라고 표현한다. 오랜 시간 깊이 파인 상처가 메워지도록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 그 기다림의 법칙을 터득하게 해준 아이들이 너무나도 고맙다는 임씨다.

동준이의 책상 앞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너는 언제나 어느 곳에서도 사랑받을 만한 존재란다’

윤혜숙 객원기자 heasoo21@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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