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SK텔레콤 TTS 유닛장 여지영 상무

월급·승진 등 여성 차별 절감
4년 경력 단절 후 새 분야 도전
공학 전공했지만 전략 업무 도전
SK텔레콤 입사
디자인씽킹으로
후배들 육성하고파

여지영 SKT TTS 유닛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지영 SKT TTS 유닛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직장 생활이라곤 대기업에서 1년, 연구소에서 1년 근무한 게 고작이었다. 딸을 낳고 육아를 하면서 4년을 전업주부로 지냈던 경력단절 여성이기도 했다. SK텔레콤에 지원했을 때 이렇다 할 경력이 없는 자신이 채용된 것도 기적 같았지만 일에 전념해 여성이 뚫기 힘들다는 유리 천장을 뚫고 2017년 말 SK텔레콤 상무로 발탁됐다.

TTS 유닛장을 맡고 있는 여지영(52) 상무의 스토리이다. 여 상무는 2016년부터 TTS 사업본부장에 발령받아 ‘티맵 택시’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1989년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후 1991년 카이스트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바로 삼성SDS에 입사했다.

“대학 다닐 때는 여자가 저 혼자여서 별다른 차별을 못 느꼈어요. 그런데 대기업에 취직하고 말로만 듣던 여성차별을 절감했어요.” 그는 면접에서 남자와 여자 간 급여 차이가 있는 지 질문했다. 면접관은 “차이가 없다”고 답변했는데 나중에 남자 직원과 급여를 비교해보니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또 여직원은 반드시 유니폼을 입어야 했고, 남직원은 ‘이민수씨’ 등으로 불리는 데 여직원은 ‘미스 김’ 등으로 불리는 점도 부당하다고 느꼈다. 승진도 대리까지 남성은 3년 정도 걸리는 데 여성은 7년이나 걸릴 정도로 차이가 컸다. ‘내가 혼자 이 문제를 바꿀 수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좌절해 1년 만에 회사를 그만 뒀다.

입사하던 해 결혼을 했고 진로를 고민하던 중 임신을 해 첫 딸을 낳았다. 그렇게 육아에 전념하다 보니 시간이 빨리 흘렀다. “4년 만에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카이스트 경영공학 박사과정에 들어갔는데 IMF가 오니 박사를 마친 남자 선배들마저 회사를 그만두더라구요. 박사학위가 무슨 소용인가 생각이 들어 박사논문을 중단하고 취업을 했어요.”

박사과정 중에 둘째 딸도 낳았다. 1999년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한국국방연구원에 입사했는데 다행히 친정 부모님들이 두 딸을 봐줘 안심하고 일할 수 있었다.

연구원으로 1년을 일하던 중 개발 분야보다는 전체적인 방향을 제시해주는 업무가 맞을 것 같아 SK텔레콤에 지원했다. “기업전략을 맡을 사람을 경력직으로 채용하는 데 저는 개발 업무를 했고 공학을 전공해 사실 아무 경력도 없었거든요. 면접관들이 ‘잘못 지원했는지, 기술원 쪽으로 넘겨줄지’ 물었을 정도니까요.”

그는 면접에서 “전략기획은 경영이나 경제 전공자들이 주로 하는 데 자신은 공학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자신을 뽑은 건 상사들의 모험”이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신규 사업 전략을 수립하는 일을 6~7년 정도 하다 HR(인적자원) 업무에도 자원해 일했다. 이후 인간 중심의 새로운 가치를 디자인하는 ‘디자인씽킹’에 빠져들었고 디자인씽킹을 제안해 팀장을 맡았다. “계속 한 길로 갔으면 낯선 길로 갈 때 용기가 안 났을 텐데 새로운 일을 계속 해왔기 때문에 겁이 나지 않았어요. 일단 ‘부딪혀 보자’ 하고. 그게 제가 일하는 데 원동력이 됐죠.”

여지영 SKT TTS 유닛장
여지영 SKT TTS 유닛장

TTS 사업을 맡아보라는 지시가 그에게 내려왔다. 그는 회사 차원에서 서비스를 없애야할지 고민 중이던 티맵 택시 사업 활성화한다는 목표를 세웠고 정상궤도에 올려놨다. 현장 경험이 그 바탕이 됐다.

“디자인씽킹은 사용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중요해요. 그래서 직접 택시기사가 돼 봐야겠다는 결론을 얻었죠.” 처음에는 직원들 4~5명이서 택시기사로 나가 며칠 씩 일했다. 일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해서는 하나 같이 “정말 많이 배웠다”고 했다. 그래서 여 상무도 직접 택시기사가 돼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겁이 많이 났어요. 돈을 받고 일하는 데 고객들의 시간을 허비할 수 없으니까요. 미터기도 눌러야 하고 콜 호출이 들어오면 승낙해야 하고, 내비게이션 주소도 입력해야 하니까 잘못 하다 사고도 날 수 있겠더라구요.”

1평반 좁은 공간에서 10~12시간 일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지 절감했다. 하루 12만5000~13만5000원의 사납금을 채우는 것도 긴장의 연속이었다. “새벽 5시50분에서 오후 5시30분까지 11시간 정도를 일했는데 이틀 간 사납금을 내고 남은 돈은 겨우 몇 만원이었어요.”

현장 경험은 서비스 개발의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명동성당에서 승객이 콜하면 방향이 순방향인 지 역방향인 지 알기 힘들었다. 그래서 앱에서 방향을 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또 핸들에 ‘콜잡이’를 부착해 고객 호출이 떴을 때 누르면 수락되는 장치도 개발해 기사들에게 보급했다.

그는 대학생과 직장인 딸 둘을 둔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안전 귀가가 항상 걱정이 됐다. 그래서 개발한 게 ‘안심귀가 라이브’ 서비스이다. “아이가 택시를 탔는지 확인하고, 오는 경로까지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서비스를 공유하면 가족 등이 링크를 통해 잘 오고 있는 지 확인할 수 있어요. 티맵 택시 고객이 주로 30~40대였는데 서비스 이후 20대 여성 고객들이 많이 늘었죠.”

현재 티맵 택시의 가입 택시기사수가 18만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카카오 카풀에 대한 택시기사들의 반발로 반사이익도 얻었다. 또 T멤버십 티맵 택시 10% 할인 서비스를 대대적으로 진행해 서비스 가입자수는 230만명을 넘었으며, 월 이용자수는 100~140만명에 달한다. 시장 점유율 15~20% 정도이다.

그는 시장 1위인 카카오 택시에 도전장을 던진 만큼 기술적인 차별화를 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AI(인공지능) 서비스를 제공하면 과거 이력을 학습해 지도에서 그 시간대에 어느 길로 가야 수요가 많은 지 보여줘요.”

대기업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막중하다. 최근 사회적 기업인 고요한 택시와 공동으로 청각장애인들이 택시를 운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청각장애인의 취업률이 37%에 그치며, 100만원 미만 수입이 67%나 차지할 정도로 소득도 작다. 하지만 택시기사의 평균 월급은 210만원 정도로 청각장애인이 택시 운전을 한다면 소득이 더 높아지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티맵 택시 사업이 잘 돼서 내 가족들이 자랑스럽게 쓰는 서비스가 됐으면 좋겠다”며 “장기적으로는 디자인 씽킹과 관련해 후배들을 육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을 즐기며 해오기는 했지만 그도 흔들리고, 좌절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후배들이 자신을 잡아줬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일이 힘들어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사람들과 관계가 취약할 때 그만두죠. 이제는 제가 후배들에게 힘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 자신은 승승장구했지만 동료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장 승진에서 밀려 회사를 떠나는 것을 볼 때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여직원들이 임원을 다는 것이 힘들다고 하지만 부장을 다는 게 더 힘들더라구요. 부장 승진에서 1~2년씩 밀리고 나면 40대 초반의 나이에 결국 그만두더라구요. 최근에는 육아휴직 중인 여직원이 승진하는 일도 있어 이전보다 환경이 나아진 것 같아 다행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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