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15주년 맞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국내 첫 전업 공익변호사단체
“1년이나 버틸까” 시선 불구
폭력피해여성·장애인·이주민 등
약자·소수자 무료 변론부터
예비 법률가 공익법 교육,
단체-법조인 ‘다리놓기’도

올해 15주년을 맞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아랫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차혜령‧장서연‧박예안‧김수영‧조미연‧염형국‧김지림 변호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올해 설립 15주년을 맞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박예안(연구원)‧김수영‧조미연‧염형국‧김지림‧차혜령‧장서연 변호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올해 설립 15주년을 맞았다. ‘공익변호사’라는 개념 조차 낯설던 2004년 1월 세상에 나온 ‘공감’은 국내 최초, 유일한, 비영리 공익변호사 단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우리 사회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겠다고 나선 변호사들을 향한 시선은 다양했다. “1년이나 버틸 수 있을까”라며 반신반의한 사람도 있었고, “너무나 필요했다”며 환호도 쏟아졌다. 수임료 없이 기부와 후원 만으로 ‘생존’하는 것이 쉽지 않고,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전무후무한 일이라 ‘맨 땅에 헤딩’ 해야 할 때도 많았다. ‘공감’의 일에 공감 못하는 이들과 부딪칠 때도있었다. 그리고 15년이 흘렀다. 그 사이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위치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사무실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위치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사무실

 

‘법에도 꽃이 필 수 있을까’

서울 종로구 원서동 창덕궁 서쪽 바로 옆 북촌창우극장. 공감 사무실은 엘리베이터 없는 이 건물 3층에 위치해 있다.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들어선 사무실은 공원과 궁이 내려다보여 전망이 끝내준다. 하지만 132㎡(약 40평) 남짓의 공간은 9명의 변호사와 3명의 간사(실장), 자원활동가들이 함께 일하기에는 비좁았다. 대형 로펌 변호사 사무실보다는 어둡고 좁지만 이곳 변호사들의 얼굴은 모두 환했다.

공감 변호사 ‘1호’ 염형국 변호사와 검사 생활을 접고 공감 문을 두드린 장서연 변호사, 유명 로펌에서 일하다 자리를 옮긴 차혜령 변호사를 비롯해 황필규·윤지영·박영아·김수영·김지림·조미영 변호사와 안주영, 신옥미, 임기화 실장이 모두 공감 구성원이다. 

“법에서 꽃이 필 수 있을까, 법에도 눈물이 있다지만, 법처럼 굳은 땅에 어떻게 싹이 틀까. 바위 밑에서 민들레가 돋아나듯, 아마도 꽃 피우는 법이 따로 있기는 있을지 몰라.”(정희성, 「겨자꽃 핀 봄날에」)

공감의 ‘의뢰인’은 법이 여전히 멀고 어려운 우리 이웃이다. 잠금장치 없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성폭력 불안에 떠는 여성 이주노동자, 직장 내 성희롱을 고발했다가 집단 따돌림과 징계로 2차 피해를 입은 성희롱 피해자, 길게는 20년 넘게 노동 착취 당했던 ‘염전노예’ 피해자, 낙인과 멸시 속에 살아온 미군 기지촌 ‘위안부’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이다. 성소수자, 난민, 공익제보자, 비정규직 노동자, 노숙인, 철거민 등 세상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도 공감은 두 팔 벌려 환대한다.

2011년 하반기 우리 사회를 공분에 떨게 한 ‘도가니 사건’이 대표적이다. 2005년 장애인 특수학교 교직원이 수년간 장애 학생들을 성폭행하고 인권침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하지만 당시 법원은 솜방망이 처벌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듯 했다. 묻힐 뻔한 이 사건은 소설과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다시 장애 인권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지폈다. 결국 2011년 11월 이른바 ‘도가니법’으로 불리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 공감을 비롯한 여러 장애인단체가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7년만의 성과다. 공감의 활동은 장애인 시설에서의 인권 침해 문제는 ‘도가니’만의 문제는 아니다. 곳곳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고 있었다. 공감은 2004년부터 이러한 장애인 복지시설에서의 인권 침해를 고발하고 인권보장 방안 연구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갔고, 공감의 관심은 2019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밖에도 성차별적 광고를 하며 ‘매매혼’ 방식으로 이루지던 국제결혼 중개구조를 개선한 결혼중개업 관리법 제정(2005),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을 반영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정(2011), 아시아 최초로 시행된 난민법 제정(2012), 직장 내 성희롱 2차 피해자가 회사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 대법원 승소(2018), 형법상 낙태죄 헌법불합치(2019) 등을 이끌며 우리 사회 인권 사각지대를 드러내고 그 경계를 확장시키는 데 기여했다.

공감 변호사들의 바람은 “걱정 없이 찾아올 수 있는 친구 같은, 만만한 변호사”가 되는 것이 다. ‘법에도 눈물이 있고 꽃이 핀다’는 말은 공감을 거치며 시어에서 현실이 된다. 법정 뿐만 아니라 거리집회, 공청회 현장, 시민단체 사무실도 이들의 일터다.

올해 15주년을 맞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사진 왼쪽) 차혜령‧김지림‧박예안‧염형국‧조미연‧김수영‧장서연 변호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올해 15주년을 맞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사진 왼쪽부터) 차혜령‧김지림‧박예안(연구원)‧염형국‧조미연‧김수영‧장서연 변호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가난한 이들의 로펌

공감의 모태는 아름다운재단의 ‘공익변호사기금’이다. 2003년 사법연수원생이던 염형국 변호사가 당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로 있던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평소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싶었던 염형국 변호사는 박 시장의 말에 마음을 움직였고 전업 공익변호사라는 새 길 내기에 나섰다.

‘낮은 곳에서 임하는 용기로 소외된 희망을 되살리겠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로펌을 만들겠습니다.’ 재단 산하에 공익변호사그룹을 만들기로 하고, 염 변호사는 곧바로 사법연수원 홈페이지에 이 같은 문구의 구인공고를 냈다. 구인공고를 보고 사법연수원 동기인 김영수, 정정훈, 소라미 변호사가 합류했다. 책상 네 개를 두고 2004년 본격적으로 출발한 공감은 여성, 장애인, 이주민과 난민, 성소수자, 취약노동, 국제인권, 빈곤과 복지 영역에서 공익소송을 비롯해 법률자문, 입법운동 등 다양한 법률 활동을 벌인다. 공감의 지향이 ‘공익법 활동의 활성화’인 만큼 더 많은 법률가의 참여를 이끌기 위한 공익법 교육과 로펌에 공익 소송이나 법률 지원을 연결하는 공익 활동 중개 역할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중요한 인권 사안마다 현장을 뛰어다니며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공감의 행보는 이제는 2010년 법조언론인클럽이 선정한 ‘올해의 법조인상’, 2013년 대한변호사협회가 정한 ‘제1회 변호사공익대상’, 2019년 ‘제7회 변호사공익대상’을 받는 등 법조계가 주목하는 존재가 됐다.

15년이라는 세월은 공익변호사에 대한 인식을 많이 바꿔 놓았다. 공감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차혜령 변호사는 “유일한 공익변호사 단체였던 공감은 이제 어필, 희망을 만드는 법, 동행, 감동 등 다양해졌고, 대형 로펌들도 산하에 공익 재단을 만들고 있다”면서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면서 공익 활동에 관심을 갖는 법률가도 부쩍 늘었고 자신을 ‘공변’, 공익변호사로 설명하는 변호사가 100명이 넘어간다”고 설명했다.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기쁨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셈이다. 

올해는 창립 구성원이 모두 공감을 떠나는 첫 해다. 지난 2월 서울대 로스쿨 객원교수로 자리를 옮긴 소라미 변호사에 이어 올해는 염형국 변호사가 15년간 둥지를 틀었던 공감을 떠날 예정이다. 공익변호사로 일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늘면서 선배들이 이들을 위한 자리를 내주는 모습이다.

수임료를 받지 않고 100% 기부와 후원으로 이뤄지는 공감은 초년 변호사 월급이 200만원 초반으로 15년 전과 큰 차이가 없다. 공감 변호사들은 따로 영리 활동을 하지 않고 공익활동에만 전념하다보니 공감의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재정문제다. 매달 1~2만원씩 기부하는 개미 후원자가 1700여명으로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넉넉지는 않다. 처음에는 모금 활동에 나서는 일이 어색했지만 변호사들은 지속가능한 공감을 위해 모금에도 팔을 걷어 부친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에 공감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올해도 4월 25일 오후 7시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15주년 후원행사를 연다. 차 변호사는 “15주년을 맞은 올해는 창립 구성원이 모두 나가며 공감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 해이기도 하다”며 “앞으로도 공감은 새로운 길을 만드는 공익변호사 단체로서 새 길을 개척하는데 나서겠다”고 응원을 당부했다. 

후원 문의: 02-3675-7740, www.kpil.org (KEB 하나은행 162-910015-36804 (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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