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일상생활 통해
외국어에 익숙한 사람들
문법보다 토론 중심 교육이
언어에 대한 흥미로 이어져

 

1988년 9월 새로운 내각을 발표했을 때, 청소년부 장관으로 취임한 마르곳 발스트렘 장관의 인터뷰를 TV로 보고 있었다. 스웨덴어로 진행된 인터뷰가 끝날 즈음 프랑스 특파원이 불어로 질문한 내용을 듣고 그가 바로 불어로 답변을 하는 것이 아닌가. 갓 유학을 온 나에게는 엄청 큰 충격으로 다가 왔다. 그런데 영국 BBC 방송 기자가 영어로 장관 취임을 축하하며 가장 중요한 현안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졌다.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바로 영어로 답변을 하는 것이 아닌가? 막힘 없는 달변이었다. 모국어도 아닌 제2외국어를 하나도 아닌 두 개를 어떻게 자유자재로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부러우면서도 안타까운 나의 현실에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저렇게 영어와 불어를 잘 할 수 있을까?

박사과정 공부를 하면서 함께 3년을 보낸 친구가 있었다. 나보다 박사과정에 1년 먼저 들어온 여성이었는데 영어는 물론 불어, 스페인어, 그리고 독일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유럽 각지에서 온 학생들과 자유자재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공부가 자신이 없어졌다. 영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고, 스웨덴어도 어눌한데 함께 수업 받는 학생이 언어의 귀재라니. 너무도 큰 차이에 충격을 받았다. 이 학생은 지금 유럽무역통상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세실리아 말름스트렘이다.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대학까지 나온 사람들이라 외국어를 잘 하려니 생각하며 애써 위로하려고 했다.

1990년 여름 기간을 이용해 코펜하겐대학에 있는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자격으로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그 때 대학 근처에 있는 유스호스텔에서 묶으며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데 어느 꼬마 아이가 영어로 말을 시킨다. 어디서 왔냐는 질문이다. 한국에서 왔다고 답하고는 몇 살 인지 물었다. 그랬더니 열 살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영어를 잘한다고 칭찬해 주고 어디서 여행을 왔느냐고 물으니 덴마크의 시골 마을에서 부모님과 여행왔다고 한다. 자기소개를 하고 부모님을 소개해 주는 그 여자아이를 보면서 그날 저녁은 또 한번의 언어좌절감에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기억이 난다.

가까운 노르웨이에 여행을 다녀 보면 시골 어디를 가도 영어에 막힘이 없다. 나보다 훨씬 영어를 잘 하는 시골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을 보면서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렇게 외국어를 잘할까 고민에 빠진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다양한 토론을 하면서 외국어를 몇 개 구사할 줄 아는지를 묻는 것이 일상화 되었다. 학생들은 대개 3~4개 외국어를 구사하고 2~3개는 유창하게 할 줄 아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외국어를 어디서 배웠는지를 물어보면 입을 맞춘듯 대개 3가지 정도의 답변이 돌아 온다.

첫째, 어릴 때부터 TV에서 영어자막 없이 만화영화를 본다. 처음에는 무슨 말이지 모르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은 빨리 언어를 습득하게 된다. 대개 어릴 때부터 보던 만화영화를 원어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새삼 놀라게 된다. 둘째, 부모와 함께 어려서부터 근처에 있는 영국, 프랑스, 독일, 그리고 스페인을 자주 다니면서 원어를 쉽게 접했다고 한다. 7월 한 달이 여름휴가인 북유럽 사람들은 한 번 여행을 하면 한 곳에 머물며 즐기기 때문에 현지 사람들과도 교제할 기회가 많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이렇게 배운 언어는 생활언어이기 때문에 쉽게 배운다고 한다. 그리고 여행에서 동기부여가 쉽게 된다고 한다. 셋째,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에서 교환학생을 다녀오거나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2~3개국은 이렇게 다녀오는 학생들이 실제 많다.

스웨덴에서 오래 지내면서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초등학교 때 배우는 외국어 수업시간에서 문법은 배우지 않고 재미있는 토론 중심으로 상대방과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 가끔 문법도 다루지만 틀리게 말하는 것에 개의치 않고 자기 의사표현을 자신감 있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자기 의사표현은 쉽게 한다고 하니 수업방식이 큰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세계에서 비영어권국가 중에서 스웨덴 사람들이 네덜란드와 함께 가장 영어를 잘하는 국민이라고 한다. 덴마크와 노르웨이 사람들도 별반 차이가 없다. 영어학원도 열심히 다니고 학교에서 영어수업을 받았어도 언어에 항상 주눅들어 있는 우리나라 학생들과 부모님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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